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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Jun 23. 2021

이강일공(二强 一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침 일찍부터 카톡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잠이 덜 깬 나는 침대 머리맡을 뒤적여 한쪽 눈을 찡그린 채 핸드폰을 확인했다

"오빠 이번 주 일요일에 저희 가게에 놀러 오세요

화장품 가게 오픈해요~"

친구 와이프가  가게를 오픈한다고 개업식에 참석해달라는 문자였다

친구 와이프는 친구와 결혼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 남편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내는 편 사이였다


오후에 친구에게서 따로 연락이 와

본 개업식은 그 주 수요일에 한다고 했고

친한 친구 셋만 따로 일요일 저녁에 만나 소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알았다고 친구에게 말하고 개업식날에 맞춰

축하 화분 하나는 먼저 보냈다


동네에 오픈을 한터라 격식을 갖춰 옷을 입는다거나 선물을 따로 준비할 필요도 없었다

워낙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서 낳고 자란 친한 친구라 츄리닝 차림으로 편하게 찾아간 자리였다

예의상 가게를 한번 휘휘 둘러보고 잘해보라는

덕담 아닌 덕담 한마다를 남기고 우리는 가게 앞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5월의 날씨치고는 가게 문을 다 열어 놓았어도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 7월쯤의 날씨 같았

우리는 더운 음식이 당기지 않아 간단한 냉채족발에 소주 한잔을 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무슨 갑자기 화장품 가게냐?"

"몰라 나도.. 와이프가 열심히 해 본다니 지켜보는 수밖에"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할 얘기가 많은 듯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소주 3병을 비운 상태였다


친구 중 한 명이 꺼내기 어려운 말을 꺼낸다

"너네 정신과 가본 적 있냐?"

"뜬금없이 무슨 정신과?.. 왜?.. 넌 가봤어?"


술기운이 약간 올라온 친구 한 명이

며칠 전 있었던 일이라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지난 주말 아내와 딸을 데리고 홍천 쪽으로 바람을 쐬러 가던 중 터널 안에서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곤란하여 정신을 잃을뻔한걸 와이프가 핸들을 잡고 가까스로 터널을 빠져나와

비상등을 켜고 차를 길가 우측에 주차하고 한참을 있었다며 이러다 죽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친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고 얼마 전부터

증상이 심해져 자주 마시던 술도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을 하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옆에 있던 친구가 웃으며

"짜식들..내 후배 구만..난 약 먹고 있어"

"뭐?..너도 혹시?"


그거 약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며 자기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 친구는 먼저 이야기를 꺼낸 친구와는 상황이 달랐고

이야기를 쭉 들어보니 강박증상으로 보였다

약을 먹은 지는 한 달 정도 되었다며 약을 먹으니

증상도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먼저 친구는 공황장애로 보였고 두 번째 친구는

강박증으로 보였다

두 녀석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속으로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누구에게도 말을 한적 없는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짜식들아 약 먹은 지 10년이 넘었어"

"정말?"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동안 남모르게 고통받던 이야기들을 속시원이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하였다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말들

같은 배를 탄 동지처럼 우리는 동병상련을 느끼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한 친구가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다들 렇구나..나도 티브이에서만 보고 듣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해봤다"


안 겪어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거라며

정신과라는 게 선입견이 있어서 그렇지

생각과 마음이 아픔 병일 수 있으니 꼭 병원 가서 상담하고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마음 한구석에 무겁게 짓 누르고 있던

무언가를 밖으로 빼낸 기분이었다

그날 이유로 셋이 모임을 하나 만들자고 한 친구가 웃으며 말하였다

이강일중( 二强 一恐) 2명의 강박증과 한 명의 공황장애

모임 이름 치고는 아무고 눈치 채지 못할 이름이었다


그날은 웃으며 얘기했지만

지금도 강박증에 고생하고 있는 나는 웃지만은 못할 얘기였다


그래도 같은 고통을 겪어본 동지를 만나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약을 먹지 않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이

나에게도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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