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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Jul 07. 2021

마돈나(Madonna)

여름방학의 추억

88 올림픽이 끝난 그 해 겨울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33년 전의 일이네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긴 하지만 그해 88년도엔 호돌이가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연합고사가 코앞인 중3학생들까지 모조리 동원되어 비인기 종목의 경기장을 채우는 일도 다반사였으니까요

요즘 같았으면 시험을 앞둔 중3 학생들을 그런 곳에 동원한다고 엄마들이 데모라도 하고 난리

였겠지만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보신 분이라면 그 시대 분위기에서 나라의 큰 행사에 옳은 말을 할 사람이 많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몇 번의 단체 동원으로 올림픽 관람을 하고

나라 전체가 손에 손잡고 하나가 되어 올림픽을 성대하게 치렀습니다

올림픽은 성대하게 잘 치렀지만 우리에게는 아직 연합고사의 일부인 체력장 관문이 남아

있었습니다

요즘이야 고등학교를 진학하는데 예전처럼 시험을 치러 학교를 가지는 않지만

그때는 고등학교 인문계를 가려면 시험을 치러 커트라인을 넘어야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200점 만점에 체력장이 20점을 차지하였고

보통의 경우 130점~145점 정도의 그 해의 커트라인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체력장도 연합고사도 무사히 끝낼 수 있었습니다

시험이 끝난 학교 분위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업 일수를 채우려 학교는 나가지만 오전 수업이 끝나면 다들 어디론가 사라지고 6교시까지 남아있는 중3 학생은 없어 보였습니다



<첫 만남>

1988년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

까까머리에 교복을 입은 중3 남학생 서너 명이 으슥한 골목길을 따라 어디론가 향한다

연합고사가 끝난 직후라 교복 윗도리는 학교 정문을 나서면서 가방에 쑤셔 넣은 지 오래다

어떻게 해서든 학생티를 안 내보려고 껄렁껄렁한 걸음을 걸어보아도 똑같은 교복 회색 바지에 파카를 입은 모습은 누가 봐도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보였다


재래시장이었던 모래내 시장길을 따라 명지대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면 삼류극장 보다도 못한 영화 3편을 동시 상영하는 자그마한 소극장이 있었다

동네 양아치들이 우 굴대는 모래내 극장을 내가 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곳 모래내 극장에선 영화가 한편 끝나고 20분간의 쉬는 타임에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틀어주었다

연예가중계 에서나 가끔 보던 마돈나를 대형 스크린을 통해 만난다는 생각에 중학생 신분 따윈 잊은 지 오래다

요즘에야 버튼 하나만 누르면 50년 전 귀한 자료들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그 당시 뮤직비디오를 대형 스크린으로 본다는 건 열대과일 망고를 맛본 친구들 수만큼이나 진귀한 일이었다


실크로 보이는 흰 장갑을 팔꿈치까지 끌어올리고 머리엔 면사포를 두른 체 코르셋을 입은 마돈나가 material girl을 열창한다

물질적인 여자.. 자기가 자기 입으로 나는 물욕이 많은 여자라고 떠들지만 내 눈엔 그저 이뻐 보일 뿐이다

우리나라 가수 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조금은 뇌쇄적인 몸짓으로 보는 이들을 스크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날 이후 난 마돈나의 팬 임을 자처하며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마돈나의 노래를 들으며

사춘기의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CD 플레이어>

형의 대학 입학으로 오랜만에 우리 집에도 평화가 찾아왔다

대학 입학 선물로 형과 내가 그렇게도 바라던 오디오세트를 엄마를 졸라 얻어냈다

그 당시 100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들여 산 인켈의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엄마와 형 나와 셋이 모래내시장에 있는 10평 남짓한 작은 인켈 대리점엘 간 생각이 난다

매장에 진열된 실물이 없어 우린 팜 블렛을 보고 고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사시게 되면 어디다 놓으실 거예요?"

"애들 방에 놓을 건데 왜요?"


대리점 사장님이 책자로 보는 것보다 실물이 크다는 얘기를 자꾸 하는 것으로 보아

오디오 크기가 상당히 커 방에 놓을 자리가 있냐는 말을 하고 싶은 듯 보였다

"왜요? 놓을 자리 없을까 봐요?"


이왕 사주기로 한 거 엄마도 이때쯤엔 어깨가 한참 올라간 터였다

"놓을 자리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격이나 잘해줘요"

엄마는 100만 원에 맞춰달라고 대리점 사장을 계속해서 쪼아 댔지만 사장님의 난감한 얼굴빛은 숨기기 어려워 보였다

결국 엄마의 승리로 100만 원에 커다란 헤드폰과 경음악 cd 한 장을 얻어 내고서야 흥정은 끝을 맺을 수 있었다

 

어른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대형 스피커가 양 옆으로 자리 잡고 있었고

턴테이블과 더블데크 본체까지 완벽한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건 cd플레이였다

cd 플레이어가 있긴 하였지만 값비싼 cd를 구매하기는 쉽지 않을 때라 지지직 비 내리는 소리가 나는 LP판을 더 많이 들었던듯하다

그래도 늘어진 테이프의 음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음질이었다


그때부터 레코드판의 매력에 빠져 용돈이 생길 때마다 LP를 사러 청계천으로 신촌으로 돌아다니던 생각이 난다

내 기억으론 그 당시 신촌의 목마 레코드에서

CD 1장의 가격이 12,000원 정도 하였고

LP 한 장의 가격은 4500원 정도 하였다

하지만 LP를 사기엔 고등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론 비싼 가격이었고 그런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알았는지 신촌 뒷골목 어디쯤에 있던 간판 없는 허름한 가게에선 해적판 LP를 2500원 정도면 살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정품 cd의 음질을 확인해보진 못한 상태였다



<막노동>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동네에 살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내가 살던 동네에선 보지 못했던 신기한 물건들도 많이 접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기한 물건은 바로 도시락 만한 크기의 휴대용 cd플레이어였다

찰칵 소리를 내며 위로 올라온 뚜껑을 억지로 열면 아직 완전히 멈추지 않은 cd가 쇳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꼭 멈추기만을 기다리는 세탁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과도 흡사해 보여

웃음이 나오곤 했다


친구의 휴대용 cd플레이어가 부럽긴 했지만 그 역시 cd가 없는 관계로 누가 빌려 준다고 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1990년 여름

푹푹 찌는 무더위에 아직도 여름방학은 일주일이나 남았다

방학과 동시에 친구들과 수영장에 갈 계획들을 몇 개 짜 놓았지만 나에겐 또 다른 계획 하나가 있었다


친구 2명과 함께 여름방학이 시작하면 막노동 알바를 하기로 약속하였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 신축 공사를 한다는 정보를 얻고 방학을 하면 그곳에서 2~3일 정도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막노동 잡부 구하기가 힘들어

언제고 우리 같은 어린 학생들도 일을 할 수 있었다

막노동 잡부 일당이 8만 원 정도였는데

어리다는 이유로 6만 원 밖에 받지 못하였지만

그 당시 롯데리아 알바 시급이 4500 정도였으니까 6만 원의 일당은 부당하긴 하여도

그걸 감수하고서라도 단시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꿀알바 임에는 틀림없었다


방학과 동시에 공사현장으로 찾아가 소장으로 보이는 아저씨에게 안전수칙 설명을 듣고 내일부터 나오라는 말을 바로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맡은 일은 허물어진 건물 잔해들을 2층에서 1층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파스 값이 더 든다는 말을 실감하며 하루를 버텨보았지만 그중 한 친구는 도저히 못하겠다며 떨어져 나가고 남은 두 명에서 늘어난 일을 모두 마무리 짓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틀 동안의 일을 이어 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이틀 동안의 막노동은 값비싼 경험과 함께

12만 원이란 거금을 손해 쥐는 쾌감을 맛보게 해 주었다



<처음 들어본 cd의 음질>

그렇게 12만 원의 큰돈을 손에 쥐고 내가 달려간 곳은 신촌의 레코드 가게였다

친구들과 수영장을 간다는 계획 말고 또 다른 나의 계획은 마돈나의 cd를 사는 것이었다

마돈나의 best 앨범이 몇 달 전 발매되었지만 수중에 돈이 없던 관계로 오늘 만을 기다리다

드디어 베스트 앨범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총 17곡이 들어가 있는 best 더블 앨범이었다

2만 원의 거금을 주고산 나의 첫 번째 cd 앨범

처음 겉 비닐을 뜯고 cd뒷면에 얼굴을 비춰보던

나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놓칠세라 가운데 작은 구멍에 손가락을 넣고 조심조심 cd플레이어에 cd를 올려놓는다

1번 트랙이 액정에 표시되며 신디사이저의 선율과 함께 전자음이 울려 퍼지던 첫 번째 곡 Holiday

아직도 그때의 그 깨끗했던 cd의 음질을 잊지 못한다

Like A Virgin 이 수록되어있던 그 앨범은

내 마음속에 첫 번째 best앨범으로 지금도  자리 잡고 있다



<마돈나>

1958년생 환갑이 훌쩍 넘은 64세의 나이다 우리나라 동년배 연예인으로는 가수 설운도와 조형기 씨가 있다

115개의 앨범과 1147곡의 노래 그 이외에도 마돈나는 29편의 영화에도 출연을 하였다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영화로는 <딕 트레이시>

<진실 혹은 대담><그들만의 리그>

<에비타><007 어나더 데이>에도 출연을 하였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스웹트 어웨이>이다


naver

배가 난파되어 어느 이름 모를 섬에 갇히게 되면서 상류층의 시중을 들던 하인과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줄거리의 그런 영화이다




마돈나 영화하면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명작 중엔 영화 ost로도 더 유명한 <에비타>가 있다

Don't Cry For Me Argentina!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아르젠티나!


정말 감명 깊게 본 영화이다





<여름방학의 추억>

어느새 마돈나도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가 되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사춘기 소년도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걸 보면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간다는 걸 느낀다


한 번은 친구가 나에게 "넌 참 옛날 일들을 잘 기억하는 거 같아"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행복했던 나의 유년시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 말은 반대로 지금의 나의 힘든 시기를 애써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대목이다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현실과 환상 사이 그 어딘가에서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그렇게도 발버둥 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그 사이 남의 불행 속에서 카타르시스적인 행복감을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환상으로 만들어낸 산타클로스에 희열과 행복감을 찾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도 지나간 나의 과거의 일부분 일지 모르지만 그걸 가끔 끄집어내어 추억에 잠기는 순간 나는 그 속에서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건

어찌 보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돈 안 드는 긍정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추억해 보는 마돈나 얘기에 오늘은 내가 할 말이 많은가 보다



며칠 전 책 살 일이 있어 교보 문 고엘 들렸다

골라놓았던 책 한 권을 사 들고 오랜만에 cd 파는 매장엘 들려보았다

딱히 살 것이 있어 들른 건 아니었지만

가지런히 진열돼있는 cd들을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옛날 앨범이 있는 쪽으로 다가가 가나다 순으로 진열되어 있는 cd를 훑어보았다

마이클 잭슨의 cd는 여러 장이 있었지만 마돈나의 cd는 보이지 않았다

옆에 놓여있던 컴퓨터를 이용해 자료를 찾아보아도 마돈나 cd는 자료 없음으로 나오는 걸 보고 적잖게 놀랐다

"하긴 요즘 누가 cd를 듣는다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매장을 나왔지만

항상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31년 전의 목마 레코드 가게의 진열대와 오버랩되는 순간이었다




지난봄 집안을 정리하다 버리지 못한 그 best CD 앨범이 창고에 있는 걸 발견했다

와이프는 버리라고 했지만 한참을 겉표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고 다시 창고 한구석에 넣어 두었다


31년 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처음으로 막노동 알바를 하고 받은 돈으로 산 마돈나의 앨범

나에겐 단순한 2만 원짜리 미국 여가수의 흔한 앨범이 아니었다 나와 청소년기를 함께한 친구이자 소중한 추억일 것이다


나에겐 이맘때쯤 무더운 여름이 오면 가끔씩 그때 그 여름방학의 아름다웠던 추억이 생각이 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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