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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지 Nov 04. 2023

인크레더블 인디아 동료가 좋은 이유

어떤 상황에서도, 노 프로블럼.

여러 국적의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도움을 주고, 끈끈한 정을 느끼게 하는 동료들은 놀랍게도 인도 사람들이다. 보통 인도 사람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단어가 인크레더블일 텐데 (내가 좋아하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 류시화 시인의 지구별 여행기를 본 사람들은 왜 인크레더블인지 느낌을 알 것이다), 3남매 중 맏이로서 조용히 미쳐있는 K 장녀인 나의 똘끼가 인도 사람들과 비슷한 스피릿이 있어서일까? 한 인도 동료가 나의 가슴 깊은 곳부터 올라오는 영감을 주어서 꼭 남겨두고 싶었다.


그와의 인연은 1년 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촨촬, 나도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업무가 낯선 상황에서 내 보고서의 데이터를 담당하고 있는 Agency 직원인 그도 새로 입사했다 보니 우리 둘 다 엄청 해맸고, 제대로 된 데이터가 나에게 오지 않으니, 나 또한 해야 하는 일들을 업무 기한 내에 수행하지 못한 경험들이 몇 번 있었다. 처음 회사에 이직하고 나서 얼마 안 된 기간이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촨촬한테 너무 화가 났다. 무엇보다 답답한 점은 시키는 일에 대해서, 하기로 해놓고 계속 뭉갠다는 것이었다. 몇 번 개인적으로 피드백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그의 매니저가 자기들 Agency의 서비스 레벨이 높아졌다는 보고서를 우리 팀 사람들 모아두고 회의할 때, 내가 열받아서 한 마디 했다. 너희의 서비스 레벨 지표가 어떤 기준으로 높아졌다고 말하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고객인 내가 받는 서비스의 질은 현저히 낮아졌는데 그 기준이 뭐야? 나는 금까지 받아야 할 보고서를 제 때, 그리고 정확히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리고 한동안의 정적. Agency 매니저는 따로 팔로업 하겠다고 하고 미팅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었다.


 사실 보통 이런 공개적 망신의 대상이 되면, 보통 그 대상의 철천지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체면을 굉장히 중시하는 아시아 사람들의 특성상) 근데, 나 또한 한 똘끼 하는 사람이다 보니, 철전지 원수가 되더라도, 칼을 빼야 할 때는 칼을 빼는 사람인 것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 뒤로 나는 촨촬의 최애 동료가 된다.


그 회의 이후로, 그는 조심스럽게 1:1 미팅을 신청했고, 우리는 몇 번의 심도 있는 회의를 통해 서로에게 서로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터놓았다. (아.. 나는 이래서 연애를 잘하는 사람이 회사 생활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게, 갈등이 있을 때 이렇게 자기의 밑바닥을 보이면서 같이 해결해 나가자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모든 인간관계의 근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가 일을 뭉갠 이유는, 그 또한 처음 시작하는 업무인데 전임자로부터 어떠한 기본적인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상황이었고,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은 없고, 자기를 계속 혼내기만 했다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감동한 포인트는, 내가 그를 공개적 망신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에게 화를 내거나 앙심을 품은 것이 아니고, 그 자신의 약함을 나에게 드러내면서 나의 화를 다 흡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자기가 열심히 익힌 데이터 뽑는 법이나 파워피벗 기술들을 차근차근 다 알려줬고, 나 또한 나름대로 현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고급 엑셀 기술들을 오빠두 유튜브 보면서 열심히 익혀 모델링 만들고 나서야 (파워피벗, 겟 피벗, 데이터 연결, 대시보드 만들기 등) 그에게 솔직하게 고백했다. 촨촬. 예전에 사람들이 헤매는 너한테 화를 내고 (나포함) 컴플레인했던 진짜 이유가 뭔지 알아? 그건 너가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람들도 잘 모르고 충분한 내공이 없기 때문이야. 모름지기 일을 시킬 때는, 그 일을 받은 당사자가 잘 못하더라도, 자기들이 커버할 수 있는 상태 에서 시켜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너한테 화풀이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나의 무능력함을 너에게 화풀이했어서 미안해.   


그를 통해 느껴진 인도 사람들은, Reselience라고 하는 회복탄력성이 자체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그니까 보통 아시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체면 따위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느낌) 인도라는 나라 자체가 인구 규모만 봐도 엄청나고, 다양한 문화와 빈부 격차가 존재하는 나라이다 보니, 정말이지 어떤 상황에서도 머리 몇 번 좌우로 흔들면서 No problem 하고 Move on 하는 그 정신. 그 정신을 나는 촨촬에게서 보았다. 그 뒤로 나는 내 자리의 후임자를 추천한다면 그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에게 비즈니스 분석할 때 어떤 매트릭스를 사용하면 좋은지, 예산을 짤 때 고려해야 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비즈니스 파트너링을 잘하려면 어떤 것들을 염두해야 하는지 등등 찐 실무를 가르치면서 일을 시키고 있다.


그러니까 모든 갈등의 이면에는, 그것을 어떻게 다루냐에 따라 기회도 함께 숨어있다는 것. 우리에게 닥치는 컨트롤할 수 없는 타인의 비난이나 갑작스러운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그걸 어떻게 내가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지만은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오롯한 내 영역이자 내 신념이라는 것도 다시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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