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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nguxxi Mar 24. 2021

사랑하는 김용성 씨

밥벌이의 외로움

김용성 씨, 나는 아빠에게 역할이 아닌 이름을 돌려주고 싶어 아빠의 이름 석 자로 아빠를 부르고 싶다. 아빠는 아빠이기 전에 마징가 Z를 만드는 꿈이 큰 소년이었으니까.


엄마가 가족 카톡 방에 아빠 어린 시절 사진을 올렸다. 지금도 피팅룸 거울 앞에서 취하는 아빠의 포즈가 그 어린아이에게서도 보였으니 그 포즈는 아빠 안에서 아주 오랫동안 함께 했을 터였다. 웃음은 아주 잠깐이었고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때의 아빠는 어떤 생각을 했고, 무엇을 좋아했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매해 나는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신입사원 때는 그저 힘든 내 모습밖에 보이지 않았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나는 나보다 위 직급의 사람들, 혹은 팀 리더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본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아니 어쩌면 매일 쥐꼬리만해진 자존감을 억지로 데리고 출근길에 올라야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닥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는데 우리 아빤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한국 사회에서 남자는 맘껏 울지도 못하는데. 몇 십 년을 어떤 마음으로 사셨을까.


나의 전 직업은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직업적 특성상,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자료를 발간하는데, 발간 바로 직전에 팀장님과 센터장님의 허락과 승인을 받아야 한다. RA(Research Associate)에서 애널리스트가 되는 첫 자료의 마지막 승인 단계에서 팀장님과 나는 서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 달랐다. 애널리스트가 되는 첫 자료였기 때문에 나만의 엣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나도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고된 논쟁은 장장 3달간 이어져 결국 한 해를 넘겨 자료가 발간됐다. 길고 긴 논쟁 기간 동안 팀장님이 너무 싫고 미워서 퇴사 욕구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고 모두가 내 눈치를 보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짜증 났다. 화를 가득 머금고 여느 때처럼 야근을 하던 어느 날, "일하는 척하지 말고 집에 빨리 들어가." 팀장님 특유의 화법으로 걱정의 말을 건네시고는 홱 돌아서 가시는데 그때 팀장님의 뒷모습에 갑자기 나는 스산한 기분이 들었고, 이런 기분이 낯설어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그때 내가 한 뼘 더 성장했다는 사실을 나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그 이후로 나는 치열한 회사라는 공간에서 팀 리더, 대개는 가장, 그들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김용성 씨가 떠오르고, 김용성 씨가 고생했을 시간들이 피부에 닿아서 따갑고 아팠다.


초등학교 때 가끔 아빠가 술에 거하게 취해서 집에 오실 땐 독한 술 냄새에 잠에서 깨곤 했다. 엄마의 잔소리를 듣고 있는 아빠가 혹시 민망할까 봐 나는 자는 척, 실눈을 뜨고 엄마한테 혼나는 아빠를 보고선 그때 아빠의 모습이 너무 슬퍼서 이불 속에서 몇 번 숨죽여 울었던 기억도 있다. 그땐 그저 아빠가 엄마 말을 안 듣고, 철이 없다고 생각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 아빠에게서 힘든 모습이 보일 때나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감정이 느껴질 때 그걸 알면서도 그 감정이 어려워서 모르는 척 그냥 지나치다가, 아빠가 술에 취한 모습을 보면 아빠의 힘듦을 직접 마주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아빠보다 아빠의 손에 들린 양념치킨을 더 기다리고 반가워했던 내가 아빠의 슬픔이라는 걸 처음으로 어렴풋이 느꼈을 때의 그 먹먹함에 대한 처참한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게 나에게 남아있다.


얼마 전 아빠한테 꿈이 뭐였냐고 물었다. 하루가 걸려 답변이 왔다. 마징가 Z를 만드는 것. 아빠는 비록 어렸을 적 꿈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나와 내 동생을 아주 훌륭하게 키워내셨다. 우린 아빠의 고단함 덕분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다.


중요하지만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족을 위한 밥벌이의 고단함, 나는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채 결국엔 잊힐 우리 아빠의 고단함을 붙잡아두고 싶어 언젠가는 꼭 글로 남길 생각이었다. 밥벌이의 무게에 대한 외로움과 고단함을 몰랐을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다시 보니, 그 천진난만한 아빠의 어릴 적 모습이 아직도 슬프다. 


아직 현역인 김용성 씨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외로움과 고단함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거다.

"사랑하는 아빠, 고생 많으셨어요. 나는 아빠를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세상의 모든 김용성 씨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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