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로 합쳐지고 갈리는 우리

인연은 흘러가는 대로

by 김승우

20년이 된 친구가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고민이라는 한 팬의 사연에 김태리 배우님이 바로 인연을 끊기보다는 잠깐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라고,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만났을 때는 추억거리를 나누며 친구와의 관계가 또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 글을 봤다. 그녀의 말에는 다양한 댓글들이 달렸는데 내 마음에 가장 편하게 다가왔던 글은,

'유지될 관계라면 잠시 연락이 끊어지더라도 나중에 인연이 닿을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그냥 끊어진 상태로 추억으로만 남겠지요. 이어가려고 막 애를 쓰면 쓸수록 더 힘들어지기만 하더이다.'

맞다. 일반적으로 내가 힘이 들어 거리를 둔 사람에게서 먼저 연락이 오는 경우는 대개 내가 필요해서이며, 나한테 얻을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스럽게 끊기는 것 같다.

학창 시절 하하 호호 잘도 어울렸던 친구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새 가정을 꾸리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삶에 대한 방식과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여기에 보이지는 않으나 느껴지는 격차와 묘한 질투심 등이 섞이면 열심히 노력을 기울여도 예전의 하하 호호 사이로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 경우도 점점 잦아진다.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을 때였다. 나를 포함한 두 명(친구를 A라 칭하자)은 이제 막 신입사원이 되어 돈을 벌고 있었고, 나머지 한명은 아니 였다.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친구(B라 칭하자)는 일상생활하기도 빠듯하다는 걸 대화에서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A가 원하는 대로 밥값은 정확히 3등분 했고, 밥을 먹고 카페를 갔는데 A는 본인 커피만 계산하고 자리에 앉는 게 아닌가. B가 살짝 망설이는게 보였던 나는 뭐 먹을 거냐고 조용히 물어보고 같이 계산을 한 기억이 있다.

그 이후에 또 셋이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고, A는 본인이 결제를 할 테니 나눠서 달라 했다. 그리고 각자 맞는 방법으로 A에게 돈을 줬다. 근데 A가 계산할 땐 그날 무슨 이벤트가 있었는지 할인이 적용되어 결론적으로 A가 많이 남는 상황이었는데 계산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인사하고는 바로 집으로 갔다.

이 글을 적으면서 내가 A를 불편해했던 이유에 대해서 좀 더 명확해졌음을 느꼈다. 그 이후에도 작은 이익이라도 본인만 챙기려는 모습과 사건은 몇 차례 더 있었지만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계산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친구 사이, 그것도 오래된 친구 사이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방식이 너무 까다로운 건 아닌지, 내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아닌지 오랜 기간 생각했다. 조그만 일들이 계속 쌓이다 보니 A를 만날 때마다 솔직히 불편했고, 자연스럽게 나는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지금은 아주 간간이, 근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연락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반면 신기하게도 6개월~1년에 한번 카톡으로 연락할까 말까, 혹은 1년에 한 번을 볼까 말까 하는데도 10년 이상 연락이 지속되어 온 관계도 있다. 캐나다로 유학을 갔었어도, 잦은 해외 생활로 핸드폰 번호가 계속 바뀌어도, 정말 신기하게 연락이 될 사람들은 된다. 그들과는 한번 연락할 때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그동안 못다 한 말들을 쏟아낸다. 그리고 매번 느낀다, 오랜 기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를 밝혀주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연락을 하지 못해 먼저 선뜻 말을 걸지 못했는데 결혼한다는 사실을 알고 먼저 연락해 준 옛 지인들, 그들을 나는 절대 잊지 못한다. 2019년 9월 7일 결혼식 당일 태풍 링링이를 무릅쓰고 찾아와준 이들. KTX 운행이 중단될 수도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멀리서도 나를 축하해 주러 온 그들에게 나는 감사하다는 표현이 한참 부족함을 안다.

관계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전보다는 맺고 끊음에 익숙해졌으며 내 마음을 돌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떤 일이든 받아들이는 여유도 생겼다.

지금 나와 친한 지인들이 앞으로는 또 어떤 일로 더욱 가까워질 지도, 또 멀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미숙한 나는 나에게서 멀어진다는 사실이 겁이 나지만 세상 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또 말만 이렇게 잘한다). 흘러가는 대로 두어, 미숙한 나는 생채기를 한참 동안 품겠지만, 그래서 또 깊은 속앓이를 하겠지만 또 다른 인연이 내 품에 들어올 테니 그 인연을 품기 위해 계속 돌아보고 성찰하며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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