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람 때문에 살아
오늘도 눈물과 스트레스를 맞교환했다. 한껏 울었더니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 기분이다. 이번주는 김경주 시인의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글 가장 마지막 부분 참조)', 내가 힘들 때 자주 떠올리는 그 시가 일주일 내내 내 머릿속에 맴돌 정도로 사람에게 치인 버거운 한 주였다. 그리고 금요일 터지고야 말았다. 오랜만에 만난 캐나다 유학시절 동생과 한껏 떠들고 웃고 들어와서는 남편을 보자마자 눈물 뚝뚝... 순간 조울증인가, 우울증인가 싶기도 하고 웃었다가 갑자기 서럽게 우는 내가 놀라워 내가 참 많이 힘들구나 싶었다.
직장인 본캐로서 나는, 내가 세 번이나 보낸 메일에 답장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나보다 직급 높은 타부서 사람에게 본인의 급한 일을 빨리 처리해 달라는 목적으로 근 3일 동안 핸드폰 문자, 카톡, 회사 전화, 개인 전화로 시달렸다. 화장실 간 사이 우리 부서 막내 직원이 나를 찾는 전화를 몇 번이나 받았던지, 나를 기동대라고 생각하나 싶었다. 이틀째 되는 날에는 본인 팀의 임원이 빨리 처리해달라고 했다고, 협박 아닌 협박으로 나를 쪼았다. 아... 언제까지 나는 웃고 네네 해야 하는 걸까.
나의 부캐는 대표님, 일 건수가 늘어나면서 올해 조금 더 키워보려고 하는 와중에 지인분이 의뢰를 했다. 평소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어도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고 만났던지라 내심 나를 믿고 의뢰를 해줬다는 생각에 기분도 좋았다. 오랜만에 뵙고, 계약서를 발송하고 나서, 아차 싶었다. 계약서 일자랑 금액이 틀렸으니 너무 민망하고 죄송스러웠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려고 하던 찰나, 내 예상대로 그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틀리면 클라이언트로서는 신뢰하기가 어려워."
(속마음: 신뢰하기가 어렵다는 말, 나를 대표로 처음 알았으면 저 말을 했을까?)
"아, 네 제가 잘못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면 안 돼, 영문 계약서는 30장도 넘는데 어떡하려고."
(속마음: 내가 영문 계약서 30장을 보는 건 내 일 인 거고...계약서 일자랑 금액 틀린 거에 대해서만 말하면 되는데 왜 갑분 영문 계약서?)
"아 네 제가 오늘 하루 종일 계약서를 봐서요. 근데 이것도 변명이고 제가 잘못한 거죠."
"계약서를 금요일부터 시작하는 건 처음 보네."
(속마음: 그냥, 월요일부터 시작하자고 말씀 주시면 안될까?)
"아, 네 원하시는 대로 할게요. 저희는 계약일을 주말부터 시작했던 건들도 있어서요."
"잘 부탁할게. 어렵게 부탁하는 거라서ㅠㅠ"
(속마음: ㅠㅠ가 포인트다, 여태 조언과 훈계, 이제 와서...)
"네"
대표로 만났으면 나에게 이런 말들을 했을까. 그래서 지인 영업이 어렵다는 건가 보다. 평소에 내가 워낙 살갑게 대했기도 하고, 기분이 언짢아도 넘어가는 것들이 있었으며 종종 선을 넘는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저 대화들을 보면 나는 그분의 아래 직원이 된 기분이다. 그동안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해 정확히 의사 표현을 못 하고 다 참아온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주변에 사업하시는 많은 분들이 지인에게는 일을 주거나 받거나 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성인이 되고, 시간이 점점 갈수록 식사 자리나 술자리에서는 꿈, 행복에 대한 주제는 인생 한탄에 대한 이야기에게 자리를 점점 내어주게 된다. 그래도 가끔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있고 그런 시간이 좋은 나는 흥분하며 꿈 얘기를 쉴 새 없이 한다. 그럴 때마다 특정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원하는 걸 하고, 회사를 그만두면 남편 월급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 좀 더 나이가 들면 고정비가 커서 무조건 일을 해야 한다."
내 남편 연봉을 아시는지, 내가 얼마를 버는지 아시는지, 우리의 목표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다 아시고 저런 얘기를 하는 건지? 왜 본인의 생각을 기준으로 모든 걸 판단하려고 하는 건지? 본인 기준, 생각으로 제발 남에게 함부로 말해선 안되고, 이에 대한 언짢음은 표현함이 옳다. 아직 불편한 기분 표현을 잘 못하는 나는 계속 노력 중이다.
살다보면 인맥이라고 생각했던 이가 인맥이 아닐 수도, 아니 아니어야만 할 수도 있다. 나 또한 내가 생각하는 인맥에게 민폐일 수 있으니 매사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결국은 다 사람 사는 일.
남편은 울고 있는 날 토닥거려 일으키고, 12시가 넘었는데도 기어코 날 붙잡고 차에 태워 와룡공원으로 향한다. 좀 더 강인한 사람이 되기 위해 난 오늘도 아픈 수업을 겪어내고, 평생 내 편과 공원을 걷는다.
슬픔은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할까?
김경주
물고기는 물을
흘러가게 하고
구름은 하늘을
흘러가게 하고
꽃은
바람을 흘러가게 한다
하지만
슬픔은
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
그 일을 오래 슬퍼하다 보니
물고기는 침을 흘리며
구름으로 흘러가고
햇볕은 살이 부서져
바람에 기대어 떠다니고
꽃은 하늘이
자신을 버리게 내버려 두었다
슬픔이 내 몸에서 하는 일은
슬픔을 지나가게 하는 일이라는 생각
자신을 지나가기 위해
슬픔은 내 몸을 잠시 빌려 산다
어린 물고기 몇 내 몸을 지나가고
구름과 하늘과 꽃이 몸을 지나갈 때마다
무언가 슬폈던 이유다
슬픔은 내 몸속에서 가장 많이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