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해지는 동거동락(同居同樂)
어쩌다 보니 허브, 어쩌다 보니 동거
얼마 전 허브를 들여왔다. 스위트바질하고 애플민트는 종로 꽃 시장에서, 로즈마리는 어머님으로부터 받아왔다. 피자 위에 올라간 스위트바질의 향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많은 허브들 사이에서 단연 스위트바질을 1순위로 뽑고 있었는데, 바질 타령을 하는 내게 허브 어머님들(a.k.a. 나의 허브 마니아 친구들)은 바질은 그 어떤 허브들보다도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하는 아이임을 강조했다.
허브들을 들여온 일요일 저녁, 심사숙고해서 고른 클래식한 블랙&화이트톤 화분에 옮겨 담고 빈 공간에 구석구석 상토를 채워주며 말을 건넸다.
‘우리 함께 잘 살아보자. 느려도 좋으니 각자의 속도에 맞춰 자라자'
물로 건배를 하며 웰컴파티까지 잘 마무리했다. 다음 날 퇴근길 아이들을 볼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집에 와서는 잘 자라고 있나, 혹시 목이 마르진 않을까 하고 살피려 하는데... 아뿔싸, 스위트바질 이 녀석의 잎에 슬픈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게 아닌가… 그 녀석의 앞에 서서 한참을 혼자 발만 동동 굴렸다. 허브 어머님들한테 보란 듯이 잘 키워서 자랑하려 했던 나는, 그들의 말을 인정하고 내가 완전히 패배했음을 깨닫는 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일단, 물을 잘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그 슬픈 구멍들은 또 다른 잎으로 건너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다. 숱한 검색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흙 속에 뭔가가 있어 바질의 잎으로 배를 채우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흙을 갈아주기로 했다. 구멍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전체적으로 힘이 없이 주저앉아 버려서 멀리서 봐도 확실히 문제가 있음이 보였다. 들여올 때만 해도 건강하고, 싱싱한 초록빛이었던 잎들이 짓무르고 어둡게 변해버렸다. 이건 물을 많이 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또 허브 어머님들을 통해 알았다.
바질은 참 밀당을 잘 한다. 참 야속하다. 너무나 밉상인데 자꾸 바라보게 만드는, 온 신경을 기울이게 만드는 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짠한 마음이 들면서 참 나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없이 주저앉아 있으면서도 향을 내어 심란한 마음을 흔드는 걸 보면 이 녀석 참 애쓰고 있다. 온갖 벌레, 지나친 수분, 빛 같은 주변의 소음 속에서 참으로 어려운 스트레스를 견뎌내고 있다. 뭐든지 적당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마음만 급해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는 요즘의 딱 내 모습이다.
'너도 참 외롭겠다'
혹자가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직업 100개를 가져보고, 세상을 정말 재미나게 사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철없기 그지없는 목표라 한들, 내게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내가 정한 나만의 인생 문구다. 다년간 답답한 조직문화에 갑갑함을 느끼며 퇴사만 다섯 번째. 목표를 이루려면 불가피하게 현재의 위치를 잠시 떠나있기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만, 이런 나를 주변에서는 가만히 두지 않았다. 부적응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그런 꼬리표를 허락한 나는 스스로를 힐난하고 비난하기를 여러 번, 정신과 신세도 져보고, 지하철에서도 쓰러져보고, 거기에 멈추지 않는 손의 땀까지, 나를 공격하는 내 정신이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였음을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고, 스스로에게‘프로이직러’라는 멋있는 닉네임을 부여해 주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감사하게도, 부캐(부가캐릭터)의 유행, MZ에 대한 한층 깊어진 이해 등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도 나의 회복 속도에 큰 몫을 했다. 나는 어느 유명 작가가 얘기한 '능력이 좋아야지, 이직도 할 수 있어요'의 가장 큰 수혜자다.
그런데 이제는 너무나 하고 싶은 게 많은 내가 나를 괴롭힌다. 언젠가부터는 직업을 100개 가진다는 인생 목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가 지향하는 나의 모습조차 타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지. 혹시 직업 100개를 가지고, 세상을 재미나게 사는 것이 또 남들에게 있어 보인다는 생각은 아닐지, 혹시 우월감이 느껴져서, 아니면 여전히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해서인 건 아닌지.
이런 시점에 허브가 나에게 온 건 참 다행이다. 바질은 내게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또 자만해서 함부로 속도를 올리지 말고 잠깐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라고, 나를 자기 옆에 붙잡아두고 있다. 100가지의 직업, 혹은 여태 해보지 못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과정에서 ‘나’라는 자아가 빠지면,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목표일까.
빤히 바라보던 바질이 내게 말한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그러니 각자의 속도에 맞춰 가자고, 웰컴파티 때 내가 말한 건데 벌써 잊었냐고 나무라는 걸 듣고 정신이 바짝 든다. 옆에서 흘깃흘깃 날 쳐다보고 있던 애플민트와 로즈마리는 바람결을 따라 각자의 향을 진하게 내뿜으며 나를 위로한다.
소신을 지켜나가는 과정에서는 정말 많은 장애물을 만난다. 노력한다 한들 그 장애물 앞에서는 좀처럼 힘을 내는 것이 어렵다. 장애물들은 크기에 불문하고 보통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데, 따라서 삶의 모토인 '강강약약(强强弱弱)'은 나와 점점 멀어진다. 온갖 신경이 외부로 향해 있는 나는 한 가지 고민을 며칠, 몇 달을 하고서 결정을 내렸다가도, 장애물과 대면하는 날이면 가차 없이 무너진다. 외부의 것들, 대개는 부정적인 것들이 나를 가득 채우게 뒀다가, 빠져나가는 데 한참을 기다리고를 몇 년을 했는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걸 보니 이건 평생의 숙제임이 틀림없다.
한없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 들 때마다 죽음을 기준으로 삶을 재정비하는 시간을 갖는다. 무한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일상에서 잠깐이라도 당장 내일 삶이 멈출 수 있음을 깨닫게 되면 우선순위는 순식간에 뒤바뀐다. 그럼 그제서야 알게 된다. 세상엔 그렇게 심각한 일도, 그렇게 대단한 일도 없다는 것을.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매일 밤 발을 쭉 뻗고 깊은 잠을 자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꼭 이런 충격이 와야지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지 보인다.
'마음을 단단하게 키우자'
그럼에도 가끔은 세상에 지고, 또 나에게 지는 날들이 있겠지만, 그래서 헤매더라도 괜찮으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돌아가더라도 나는 분명 다시 길을 찾을 거니까.
바질도 그렇게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애플민트와 로즈마리도 그렇게 각자의 무게를 견뎌내고 있을 것이다.
“아직 아픈 바질이 내일은 조금 힘내주길,
애플민트와 로즈마리도 여태 잘해온 것처럼 각자의 속도에 맞춰 성장해 주길,
나도 더 단단해지길”
나지막이 내뱉는 나의 바람이 그들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는 와중에 서늘한 밤바람에 스치는 진한 허브 향이 내게 잠시 머문다.
오늘은 발을 쭉 뻗고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