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 폭설로 끝나버린 가을

퇴사하던 날

by heize



올해 가을 날씨는 참 이례적이었다.

폭염에 폭설에, 수능은 온화하기까지 했다.


좋아하는 외투를 한 번씩 돌려 입기도 빠듯해 언제나 아쉬웠던 가을은,

언제 오나 싶게 왔다 이상하리만큼 지리멸렬이 머물다 갔다.


올해만큼 생경한 가을이 또 있었을까.






지난 6개월의 시간은 내게 10년 보다 길었다. 한없이 비참했음은 물론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 어쩌면 더 노련했겠다 싶을 만큼, 손에 익지도 조직에 녹아들기도 여의치 않았던 시간. 그렇게 자책과 원망, 절망과 안도가 뒤섞였던 6개월은 결국 어렵사리 끝이 났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어렵고, 쉬어가는 것은 더욱 두려운 법이지만, 그 어느 때보다 나의 결정은 단호했고 미련이나 후회는 없었다.


결의에 찬 나는 바닥나버린 자존감을 메꾸고 내 사람들과의 시간을 가치 있게 써보기로 다.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허비해 남편의 안타까움을 사던 나에겐, 꽤나 새로운 길임엔 분명하다.






늦게 찾아와 오래 머물다 간 올해의 가을처럼, 지난 나의 6개월은 온난화만큼 뜨거웠고 이상기후만큼이나 종잡을 수 없었다. 퇴사하던 날의 첫눈은 기록적인 폭설이 되어 내렸고, 출근 걱정 없이 온전히 들뜬 마음으로 쌓인 눈을 마주했었다. 얼마만의 감정인지 모른다.



가을을 좋아하는 11월생의 새삼스러운 겨울맞이가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