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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예영하는 오드리 Oct 24. 2022

영화가 말을 걸어오다 1

영화<로마_알폰소 쿠아론_2018>

1) 영화<로마_알폰소 쿠아론_2018> 

해체된 가정에서 새로운 연대를 통해 피보다 진한 사랑을 발견하다 


영화<로마>는 제목만으로 우리를 현혹시키고 만다. 아마도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과 청량한 바다로 설레이게 하는 이탈리아 풍경을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흑백의 어두침침한 침묵의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가 알던 이탈리아의 로마가 아닌 멕시코 시티의 로마 거리였음을 깨닫고는 적지 않은 실망을 할는지 모른다. 처음엔 흑백의 사회 비판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몰입하기 어렵다가 점점 영화는 클레오라는 한 멕시코 가정부 여성의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그녀가 마주한 비참한 현실 앞에서 숨이 턱하니 멈추게 된다. 한 개인이 멕시코의 시대적 폭력과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를 한 호흡으로 보게 되는 기가 막힌 영화임을 알게 될 것이다.


특히 영화<로마>는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영화로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클레오같은 보모에게서 자라나다가 아빠가 떠나버린 장면들이 이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 있는 이유가 자연스레 납득이 간다. 쿠아론의 보모 로드리게즈가 어릴 적에 쿠아론을 데리고 극장에 자주 데려갔고, 그 때 <Marooned>라는 영화를 본 기억과 영감이 그의 대표작인 영화<그래비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어릴 적에 함께 한 선한 어른이 한 소년에게 인생을 바꿔놓을 정도로 지대했다고 생각하니 쿠아론 감독이 그녀를 그리워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헌사하는 영화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영화는 1971년 멕시코시티, 로마 도시의 백인 중산층인 아이 4명를 둔 소피아의 가정과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는 멕시코 원주민 가정부 클레오의 인생을 다룬다.     

첫 장면은 클레오가 거품 청소하고 있는 물이 고인 바닥에 비행기가 지나가는 이미지를 긴 롱테이크 기법으로 보여준다. 과연 이 영화가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게 모든 소음을 제거한 채 오로지 물이 흘러가는 소리와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만이 우리를 집중시키고 있다.     

클레오는 아침이면 아이들을 깨우고,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도시락까지 싸서 학교에 보내면서 집안일을 도맡아 척척 해낸다. 이어 영화는 그녀가 흰 빨래물을 옥상에서 널고 있고 아이들은 술래잡기 하듯 뛰어노는 장면을 평화롭게 보여준다. 클레오는 빨래를 끝내고 형들과 놀다가 떠밀린 막내 페페와 평상에 시체처럼 누워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라고 말한다. 바쁘고 고단한 삶이지만 막내 페페와 교감하면서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그녀의 따뜻한 심성이 자연스레 읽힌다.     

모처럼 출장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아빠는 큰 차에 비해 비좁은 집 차고에 여러번에 걸쳐 힘들게 주차하는 장면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이 가정에 억지로 끼어들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강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결국 그는 이 가정을 떠나게 되는 걸까?   
  

클레오는 휴일이면 소피아 집안에서 같이 가정부일을 하고 있는 여자친구를 통해 알게 된 페르민과 만나 무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종종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만, 그에게 임신한 사실을 알리자 연락없이 사라져버린다. 이 때 소피아는 그녀의 남편은 이번에 퀘백으로 출장을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걱정에 힘들어하면서 괜히 클레오에게 개똥을 치우지 않았다고 짜증을 낸다. 이들이 맞닥드린 시련들은 1970년대 여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한 사회상을 보여준다.      

소피아 가족들은 리처드 외삼촌의 별장으로 연말휴가를 보내러 간다. 거기서 백인 상류층 가족들이 호화스럽게 호수근처에서 야유회를 즐기면서 총쏘는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멕시코를 백인들이 식민화하면서 원주민들이 터전을 잃고 그들의 가정부나 하인들로 추락한 삶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아이들의 할머니와 곧 출산이 임박한 클레오는 아기 침대를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멕시코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는 민주화 운동 시위자들과 폭력으로 진압하는 정부군들을 목격한다. 정부군을 옹호하는 무력 조직원들이 클레오가 있던 가구점에 들어와 시위자를 죽이고, 클레오는 그 무력 조직원들 사이에서 페르민을 발견한다. 그와 정면으로 마주친 클레오는 너무 놀라 양수가 터지게 되고, 병원에 너무 늦게 도착해 죽은 아이를 껴안은 채 눈물만 흘리고 만다. 이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이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소피아는 떠난 남편이 자신의 짐을 찾으러 집에 오는 동안, 큰 마음을 먹고 네 아이들과 클레오를 데리고 가족 여행을 떠난다. 아이를 잃고 정신이 반쯤 나간 클레오는 가기를 꺼려했지만 보채는 아이들에게 밀려 함께 간다.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사실을 담담하면서도 단호하게 알린다. 그녀는 아버지가 이 가정을 떠났고,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또다른 직업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충격에 휩싸인 채 침울해하고, 한 아이는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이제 곧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펼쳐진다. 여행 마지막 날 소피아가 타이어 점검하러 간 사이 수영을 못하는 클레오는 두 아이가 깊은 물결 속에 휩쓸려가는 바닷물에 뛰어들어 거친 파도 속 아이들을 기필코 구해낸다. 그간 침묵에 빠져있던 클레오가 울먹이며 그간 하지 못했던 말을 봇물터지듯 외친다. 그녀는 ‘자신이 아기가 태어나길 원치 않았다’는 말을 꺼내고, 그간 죄책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소피아에게 터트린다. 소피아는 아이들과 함께 클레오를 사랑한다는 말로 서로를 끌어안고 다같이 눈물을 흘린다.     


이 장면에서 정치적 혼란 속 남자들에게 상처입은 이들이 서로 연대하면서 가족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주면서 우리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이 가정에서 자라난 쿠아론 감독이 기어이 힘들었던 어린 시절의 낱낱이 꺼내면서 추억하고 싶었던 건 바로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하면서 가슴깊이 공감하면서 위로해줄 수 있었던 가족같은 여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앞으로 이 가정의 활기찬 희망을 보게 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 안에서는 침울한 상태였던 아이들은 새로 바뀐 자신들의 방을 보고 기뻐하면서 앞으로 달라진 생활을 기대한다. 클레오도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와 첫 장면처럼 빨래를 들고 옥상 계단으로 올라가고 카메라는 그녀의 시선에서 떠가는 비행기를 비추면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영화<로마>는 혼란스런 정치,사회 속에서 비참한 현실을 마주한 사람들이 회피하지 않고 같은 아픈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연대하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살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족보다 더 진한 사랑으로 키워준 보모에게 바치는 이 감동적인 영화를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영화#로마#알폰스쿠아론#자전적#가족보다더진한연대#절망속희망#함께라서다행#인생은지금부터#관계에힘든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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