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유혹
모든 것의 시작은 한 트럼프 카드로부터 시작되었다.
11월 7일, 그러니까 그날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한 룸메이트의 생일, 그리고 친구의 선물로 우리 방에 입성한 그 트럼프 카드.
그때부터 우리는 중독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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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판만 더?”
서로를 쳐다보는 눈빛들이 양심과 욕망에 휩싸인 흔들리는 동공들이었으나 유희의 욕망이 이겼다. 다시 카드는 돌아가고, 긴장감이 맴돌았다.
“자, 언니부터 시작!”
“아.. 나 진짜 못해먹겠어. 심장 쫄려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룸메이트 언니는 카드 두 장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세븐 둘”
잠시의 정적,
“패스, 자 이제 나. 세븐 둘”
이제 네 명의 동공이 빠르게 흔들린다.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뭐라고 집중한 넷은 잔뜩 긴장해있다.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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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카드 게임은 자신의 손에 있는 카드를 모두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으로 카드를 뒤집어 내려놓을 수 있는데 뒤집어 내려놓은 카드가 자신이 말한 카드인지 아닌지 상대방은 의심할 수 있고 빨리 내려놓기 위해 자신은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의심이 맞았다면 쌓여있는 카드 뭉치는 거짓말을 한 사람에게 돌아가고 카드를 내려놓을 수 있는 순서는 의심을 한 상대방이 가져가는 게임이다. 의심이 틀렸다면 전자의 상황과 정반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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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뒤집어지고 거짓말을 한 나는 카드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게임의 가장 필승법은 사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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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트럼프 카드가 기숙사 방에 입주한 이유로 점차 우리 방에는 보드게임들이 모여들었고 추리게임과 카드게임을 종종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너무 늦었던 것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월은 대학생들에게 과제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10월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교수님들은 우리가 한 과목만 듣는 줄 아시고 많은 과제를 내주신다. 주로 11월에 조별 발표도 모여 있는 경우가 많으니, 즉 바쁜 달인 것이다. 바쁜 것과 상관없이 매우 잘 놀았지만 할 때마다 마음속 천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다.
“우리 공부하다가 알람 맞춰놓고 모여서 게임 한 판만 하고 다시 공부할까?”
하지만 생각보다 그때의 우리는 지혜로운 선택을 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건 미친 생각이겠지?”
다들 아쉽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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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방은 쉬는 타임만 되면 보드게임에 매료되어 신이 나게 했다. 그때만큼은 스마트폰을 버리고 놀았던 것 같다. 하도 익숙해져 있었던 것에서의 탈출을 바로 아날로그의 유혹이 이뤄냈다. PC게임을 잘 못해서 잘 안 하는 편이고 관심이 크지 않지만 보드게임만의 아날로그 감성과 매력이 크기에 PC방만큼은 아니지만 보드게임 방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파 없이 놀 기회가 얼마나 되려나.)
하루 온종일 보고 있던 스마트폰에게 한 시간 정도의 휴가를 주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몸으로 놀았다.
그 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과제가 있고 시험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고 해도, 그때의 시간을 줄여서 더 빨리 일을 끝마쳤어야 했다고 해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즐거운 순간을 잃어버리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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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에 일의 중요도를 따지고 급한 일인지를 따져보며 일의 순서를 정하고 행동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은 정답이고 정말 모범적이고 바른생활이다. 그래서 그것의 결과는 하나같이 다 좋다. 그 이유는 꼼꼼하고 성실하다는 것은 모든 것에 정비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의 순서를 따져보면 룸메이트들과의 보드게임은 아주 저 멀리로 파 묻혀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난 그때로 돌아간다 한다면 또 할 거다.
즐거움을 느끼는 일을 오답이라고 정의하기엔 기회가 아깝지 않나, 이 친구들과 보드게임을 할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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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을 느꼈던 시간이 나에게 더 소중한 기억들이다. 언제 또 이들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후줄근한 차림으로 보드게임을 할까? 이제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돌아와 나와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기는 쉽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드는 일,
그것은 어떠한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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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방학 중 기숙사에 살 때였다. 그때는 본격적으로 오후 9시 야식을 먹고 그때부터 보드게임을 시작했는데 새벽 5시에야 그 게임은 끝이 났다. 이렇게 건전하면서도 방탕한 생활을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지금 이 시절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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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망설여 바보같이
답답해 너의 태도
그냥 좀 해도 돼
한 번쯤 미친 사람처럼
나도 알아 나도 못해
말하면서 어이없어
어려워 사는 게 내 마음대로 안 돼.
어반자카파의 노래 <Get (feat. Beenzino) > 가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