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그녀가 기다리는 것

고무신의 일상

by 분홍색가방

#8 그녀가 기다리는 것


기숙사 앞에는 수많은 연인들이 이 밤을 보내며 아쉬운 안녕을 고한다.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가는 나는 심히 불쾌한 못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어차피 내일 또 볼 거면서 왜 저렇게 기숙사 앞에 진을 치고 있는지,

그들 사이로 들어가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해주는지,

매일 밤 너무 하다고 생각하는 나였다.


그리고 언젠가 룸메이트 중 유일한 커플이자 연장자인 언니가 그 모습을 보고 들어와 말했다.


“부럽다.”


그 말을 들은 모태솔로 셋은 언니를 멍하니 쳐다보며 물었다.


“왜? 언니는 남자 친구도 있고...”

“그러니까... 더... 부럽지. 있는데 볼 수 없으니까.”


그 대답에 남은 셋의 표정은 더욱 구겨졌던 것 같다.


“조용히 하고 들어가자 언니.”

“... 응...”


-


철컥,


열리는 문소리에 거실에 있는 나의 책상에 앉아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문 쪽을 보았다.

누구보다 행복해 보이는 얼굴로 들어오는 룸메이트 언니였다. 언니의 손에 들린 것은 한 편지였다.

나는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 수 있었다.


“왔네요?”

“응응!!”


기뻐 상기된 목소리였다.


-


행복한 얼굴을 보면 따라 웃게 된다.


-


난 언니의 표정에 따라 웃었다. 행복해 보이고 편안해 보여서, 지쳤던 것들에게서 잠시나마 벗어난 것처럼 보여서 말이다. 그녀가 기다리는 것은 편지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내온 편지.


-


언니와 나는 2년 동안 룸메이트로 살아왔다. 그러니 언니의 연애 과정을 처음부터 천천히 알아왔다. 군대에 가서도 훈련할 때에 편지를 보내지 못할까 봐 미리미리 편지를 보내 놓은 그분의 배려를 볼 때마다 진짜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껴왔다. 나의 소중한 룸메이트에게 그런 사람이 같이 한다는 것이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맙게 느껴졌다. 군대에 간 후, 알게 모르게 외로워하는 언니에게 며칠에 한 번씩 날아오는 그의 편지는 위로이자 행복이다.


언니는 ㄱ자 소파의 가운데에 올라앉아 하루의 끝을 편지로 마감했다. 그리고 어떤 편지들은 아껴보기도 했다. 힘들 때 보고 싶다는 언니의 표정은 행복 그 자체였다.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고 자신이 사랑을 주는 것은
그만큼 행복을 데려오는 모양이다.


-


언니가 나에게 부탁을 해왔다. 포토샵을 할 줄 아냐는 물음이었다. 아주 조금 다룰 수 있다고 말했더니 언니가 보여준 것은 자신의 사진이었다.


“근데 갑자기 왜?”

“사진을 자석에 넣을 수가 있더라고, 선물이지.”


컴맹인 언니는 그날 느리게 움직이는 포토샵을 부여잡고 열심히 사진을 보정했다. 언니는 스스로도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모니터 앞에서 움직이는 언니의 눈동자는 초 집중 상태였다. 그만큼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배달되어 온 자석은 다시 과자들과 함께 포장되어 군부대로 보내졌다.


-


내 주위에는 한 명의 고무신이 더 있다. 그녀 역시 나보다 언니이다. 그녀도 교내 우체국으로 과자와 선물이 담긴 상자를 낑낑거리며 갔다. 나는 그녀의 짐 일부를 들어주고 그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의 표정 역시 행복해 보였다.


-


누군가에게 주면서 행복을 얻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 시작은 계산을 하지 않음에서 온다.
한 번 계산하기 시작하면 불어나는 서운함은
어느새 나눌 수 없는 숫자가 되어 버린다.


-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소리에 옆을 보니 룸메 언니의 휴대폰에 뜬 글자 ‘군대 C.M.G’. 그 순간 나는 그 전화기를 들고 휴게실에 나가 있는 룸메 언니를 찾으러 나가는데 다른 룸메를 만나 건네주고, 그 룸메는 또 다른 룸메에게 건네주고 드디어 도착한 휴대폰은 전화 연결에 성공했다.


마치 시트콤처럼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가 그 전화가 연결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던 모양이다.


p.s. 룸메 언니가 보내려는 편지에 우리 룸메이트 셋이 롤링페이퍼를 썼다.


‘언니가 편지를 받으면 소파에 앉아 행복해해요.’


+


이리저리 둘러봐도 제일 좋은 건
그대와 함께 있는 것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내가 가는 길이 험하고 멀지라도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때론 지루하고 외로운 길이라도
그대 함께 간다면 좋겠네

때론 즐거움에 웃음 짓는 나날이어서
행복하다고 말해주겠네

해바라기의 노래 <그대 내게 행복을 주는 사람> 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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