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시
오후 3시에 창가에서 책 한 장을 넘기는 일
오후 3시에 창가에서 책 한 장을 넘기는 일
푹신한 의자에 드러누워 약속시간에 늦은 친구를 기다리는 일
시외버스를 타고 창가 근처에 앉아 작은 빨대로 초코우유를 빨아들이는 일
도로가 꽉 막혀 한참 늦게 도착한 시외버스에서 내리는 일
적당히 비가 오는 날, 거리를 걷는 일
폭우 속 우산을 쓴 채 거리 중간에서 멈춰있는 일
그 많은 재생목록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일
좋아하던 노래를 듣고 이별의 순간이 떠오르는 일
여행을 가기 전 지도를 펼쳐두고 계획을 짜는 일
여행지에서 소매치기 당해 잃어버렸던 지갑을 근처 쓰레기통에서 꺼내는 일
무엇이 행복이냐 물으면
나는 답하겠다
그 모든 것이요
행복은 불안정과 안정의 정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소를 타는 어린 아이들의 눈에 더 잘 보이는 것이다
온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 있었던 날들이 있었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숙소를 둘러쌌던 그때,
누군가 창가에 올려둔 음료수 때문에 창가는 냉장고가 됐다
그거에 꺄르르하고 웃었다
살짝 따뜻해진 방바닥에 미소지었고
오고가는 초콜릿에 마음이 녹았다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음을 강릉에서의 2월에 알았다
살짝 벽에 기대 노을이 지는 불투명한 창문을 보았다
그때 나는 행복했었던 것 같다
아니, 행복했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냐 물으면
나는 답하겠다
모르겠어요
따뜻한 김이 서린 창문에 슬그머니 다가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흩어져 잘 보이지 않던 노을의 빛깔은 색깔이 되어 주었다
내가 보는 창문이 흐려져도 괜찮았다
방 안의 온도는 36.5도였다
P.S 본 매거진에 사용되는 사진들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