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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Apr 09. 2019

어느 하루도 눈이 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눈이 부시게눈부신 순간들을 찾아서 시간여행을 떠나다!



최근 드라마 중에 가장 나의 눈을 사로잡은 작품을 말하자면 JTBC 드라마 <눈이 부시게>이다. 사전제작 드라마인 동시에 12부작으로 편성된 드라마였다. 흔하디 흔한 소재가 되어버린 '시간여행', '시간 이탈 로맨스'라는 키워드를 갖고 나온 본 드라마는 내 모든 예측을 완벽하게 부수며 꿋꿋하게 나아갔다. 참으로 멋진 드라마가 아닌가!



가장 매력적인 포인트는 '시간여행의 대가를 단 두 회만에 보여준 것이다.' 시간여행을 소재로 한 다수의 드라마들은 시간여행으로 과거를 바꾸며, 현재가 바뀌는 그 부분에서의 대가를 주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본 드라마에서는 능력을 사용하면 그에 따른 대가가 바로 드러났으며, 돌린 시간만큼 젊음을 잃는, 등가교환의 법칙을 따랐다. 단숨에 20대이던 주인공은 70대가 되어 버렸다. 젊음, 그리고 시간이란 잃어버리면 돌이킬 수 없는 그 가치를 잃어버린 주인공의 절절한 모습은 격하게 공감을 이끌어 내기 충분하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시간을 돌릴 줄 아는 딸의 선택, 시간을 돌리는 이유마저 확실하게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가에 대해 보여준다. 


또한 70대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대부분 미니시리즈의 주인공들은 20대에서 30대가 제일 많다. 가장 사회생활을 열심히 할 시기이기도 하니, 인물의 활동성이 있어야 이야기가 흘러가는 만큼 적절한 선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다수의 젊은 주인공들 사이, 70대 노인 주인공의 이야기는 새롭다. 더불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영혼과 육체의 시간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초기 설정에서 시청자를 끌어당길 매력이 존재한다. 최근 패스트푸드점의 키오스크 작동법이 노령 인구들에게 어렵다는 뉴스가 등장했다. 노령 인구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시점에, 젊은 사람의 시선에서 살아가는 70대 노인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지점을 짚는다. 젊은이가 노인들을 바라보는 시선, 또 노인들이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시선, 각자의 시선을 영혼은 젊은이지만 몸은 노인인 주인공 ‘혜자’가 잘 표현해낸다. 우리는 서로 잘 모르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세대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20대들에 대한 이야기를 선보인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부유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찾아 펼치는 사람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여타 드라마 속 빛나는 20대들과는 조금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열심히, 또 치열하게 눈부신 순간들을 만들어간다. 오히려 지극히 평범한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공감하게 하는 포인트인 동시에, 다른 세상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을 들게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시간 이탈 로맨스라는 판타지로 시작하지만 본질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다. 그렇다 보니 우리의 현실에 투영해서 볼 수 있는 지점들이 계속 등장한다. 취업에 힘들어하는 모습이나, 진짜 내 꿈이 맞나 싶은 의심들, 꿈을 이루는 줄만 알았지만 실패하는 모습들, 가업을 잇는 모습까지. 어쩌다 동네 골목에서 만났을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판타지였던 것이 판타지가 아닌 순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복선에 대해 아쉬움이 남지만 단순한 시간여행 드라마에서 탈피하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시간을 돌리는 시계는 없었다. 단지 시간을 돌려 과거를 바꾸고 싶었던 한 사람의 바람이 있었을 뿐.


치매 할머니의 시점에서 바라본 '현재', 그리고 '자신의 모습은 이렇지 않을까'하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신선하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치매 노인들의 주변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본 드라마는 알츠하이머 병을 앓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에서 진행된다. 극 후반부 막무가내로 보이는 극 중 '혜자'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노인들의 판타지적 탈출 모습까지 말이다. 유머스럽게 그려냈고, 비현실적이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한다. 과연 노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정의한 젊음이 없다고 하여, 이제 어떠한 일의 선두에 설 수 없는 것일까. 


오늘은 내 남은 생의 가장 젊은 날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오늘은 내가 가장 젊은 순간이다. 본 드라마는 그렇게 계속 힘들고, 버텨내야 할 삶이지만 그중에도 눈부신 순간들은 있었다고 말한다. 문득 떠올려보면 우리는 엄청나게 큰 눈부신 순간들을 원하여 짧지만 소소한 눈부신 순간들을 잃고 있을지 모른다. 스스로 가장 편안하다고 느끼는 시간과 순간이 있다. 오후 3시,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살짝 창문을 열고 책을 읽는 일이다. 하루 중 30분이나 1시간, 그러한 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가 행복해진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은 정말 사소하고, 짧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갖는 일이지 않을까. 마지막 회의 마지막 김혜자 배우님의 내레이션이 본 드라마의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낮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https://tv.naver.com/v/5763892


우리는 모두 눈부신 순간에 있었다고 말이다.




'눈이 부시다'라는 표현이 참 근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상 속에서 생각보다 자주 쓰지 않았던 표현이다. 내가 눈이 부신 순간이 없었던 걸까. 아니라면 못 봤던 걸까. 못 봤을 것이다. 눈 부신 순간은 매일 있었을 테니. 요즘 흔한 말이기도 하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와 같은 것.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좀 더 내 진심에게 다가왔던 것은 화자의 삶은 평범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고된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 화자가 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은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매일매일 눈부시고, 행복한 순간이 있으니 그걸 보지 못하는 '우리'가 잘못된 것이라면 사실 정말 슬픈 말이다. 진심으로 온 하루를 뒤져도 행복한 순간, 눈이 부신 순간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을까. 회사에서 실적이 오르면 칭찬이 아니라 더 높은 목표치를 지정받고, 사회생활을 하며 누군가의 비위를 맞추고, 조별과제 잔혹사를 겪기도 하며, 입시 스트레스로 고통받고, 처음 만나는 친구와의 관계에 목숨을 걸며 나 자신을 바꾸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들은 매일매일 바쁘다. 그리고 꽤 많이 아프기도 하다. 그 순간들 속에서 무조건 행복하거나 눈이 부신 순간을 찾으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찾지 못해도 좋다.


그렇지만, 

그냥, 행복하고, 눈이 부신 하루를 보낼 자격.

이 생을 살아가며 당신이 누릴 수 있는 권리.

과거의 아픔 때문에 보지 못한 순간을 볼 수 있는 시간.

이 모든 것이 이 세상 모두에게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루를 망친 것의 이유를 오롯이 나에게 두지 말자.

가끔은 나에게 관대해져도 좋다. 


'나'에게 눈이 부신 순간들을 선물하는 것도 방법이다.

없다면 만드는 것도 답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면 일단 옆에 앉히고 맛있는 걸 먹이며 좋아하는 거리를 산책하며 같이 떠들어 주리라. 없다면 만드는 것도 답이다.) 



영화 '우리들'을 최근에 봤습니다.

다음 리뷰엔 꼭 담고 싶은 영화인데, 괜히 마음이 너무 아파 글로 적기 두려워지는 영화였어요.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시는 분이라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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