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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Mar 04. 2019

우린 봄이 오기 전에 따뜻하기 전에 한 번 볼까요.

종현 <우린 봄이 오기 전에(Before Our Spring)>

요즘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따뜻할 때 한 번 보자는 말. 

추운 겨울이 지나고, 날이 풀려 옷이 가벼워질 때, 웃으면서 한 번 보자는 말을 자주 한다.

지금의 나에게는 꽤 큰 마음이,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좀 덜 지치고, 어느 정도는 즐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을 뜸했거나 미뤄뒀던 약속들을 모조리 잡는 기분이니 말이다. 그렇듯 나는 지금의 나에 만족하며,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힘들고 우울하거나 슬픈 일들은 있지만 그러한 아픔들 속에서 빨리 회복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내게 온 행운 같은 시기. 


내가 온전히 나로서 조금은 마음에 드는 시기.


새로운 이야기를 써야 해서 과거에 적어둔 글을 모은 '플롯 노트' 폴더를 열었다. 2017년, 매일 짧게라도 글을 써보자며 다짐했던 시기였기에 날짜와 그날 쓴 글의 주제를 파일 이름으로 설정해둔 모양새였다. 결국 그 다짐은 지켜지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폴더에 쓸만한 이야기 조각들이 있을까 싶어 열었고, 그중에 눈에 보이는 아무거나 눌렀다. 글의 주제는 '약함'이었다. 그리고 제목은 '쓰고 싶지 않지만 쓰는 글'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내가 뭐라도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였다. 그 글 속의 나는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관계에서 약자를 자처했던 내가 지쳐있었으며, 수많은 기대들이 무너졌고, 내가 바라는 즐거운 미래가 상상이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허무해했다. 누구한테도 그 마음들을 말하지 못했으며, 그 글을 쓰는 내내, 아무런 목적 없이 하소연하듯 써 내려갔던 그 글 속에 아무런 의미도 없으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했다. 그때, 어떠한 소재도, 이야기도 떠오르지 않아 많이 불안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도 매일 소재를 머릿속으로 생각해보고 여러 이야기를 짜 보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럼에도 그때처럼 힘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이유를 찾을 수 없겠다. 좋은 소식이 있었던 것도 있지만 그전부터 이미 나는 굉장히 괜찮았다. 힘들었던 2017년을 억지로 억지로 버티다 2018년이 됐을 때, 갑자기 내가 변했을까. 한 없이 우울해했던, 힘들어했던 내가 왜 편해졌던 걸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다시 내게 그런 우울과 힘듦이 찾아올 거라는 걸, 그리고 그다음에 지금의 나처럼 스스로 마음에 들어할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걸 말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를 캡처한 사진입니다.

<우린 봄이 오기 전에(Before Our Spring)>은 2018년 1월에 발매된 종현의 솔로 앨범 <Poet|Artist>의 가장 마지막 트랙에 있는 노래로, 예전 날 위로하는 노래 추천곡 리스트에 소개된 바 있는 곡이다. 언젠가 이 노래에 대한 글을 쓰고자 했다. 이 노래는 '행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이 앨범이 나오고 나서 한 달 내내 이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길을 걷든, 글을 쓰든, 자기 전에도. 포근한 멜로디에 자신보다 누군가를 한 없이 걱정하는 따뜻한 마음의 가사는 날 일렁이게 하기 충분했다. '겨울과 봄'이라는 '끝과 시작'을 나타내는 계절의 가운데 불안하면서도 봄이 오길 기다리는 가사를 곱씹으면 더욱 포근한 피아노 선율을 더 짙게 느낄 수 있었다. 앨범이 발표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잘 모르는 분과 PC방에 갈 일이 있었다. 게임에 소질도 없고 관심도 없는지라 PC방을 정말 오랜만에 방문했던 날이다. PC방이 참 좋아졌구나 싶었다. 그분은 내 옆에서 게임을 했고, 나는 소감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PC방에서 문서작업을 하려니 뭔가 집중이 안 되는 기분이었는데, 딱 이 노래를 들으며 소감문을 썼다. 그래서 소감문의 제목도 '우린 봄이 오기 전에'라는 제목을 그대로 썼다. 정말 그때는 추운 겨울이었으니 말이다. 놀랍게도 한 달 후, 나는 정말 행복해졌다. 


항상 우리는 추운 겨울을 피하고 싶어 한다. 추운 겨울바람에 손발이 꽁꽁 얼어서일까. 나도 겨울을 보내는 동안, 어서 봄이 오길 바란다. 말 그대로 날씨든, 지금 내 상황이든 말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흘러가는 시간을 보며 좀 더 나아질 나를 기대하는 시기도 겨울일 거다. 


지난 1월 롱 패딩을 입은 채, 친구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안이었으니 사실 어느 건물이든 들어가 있으면 됐는데 그냥 밖에서 기다렸다. 그날따라 겨울바람을 맞고 싶었다. 두피가 저릿한 겨울바람을 한참 맞았다.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들을 바람에 흘려보냈다. 그저 텅 빈 느낌. 내게는 그런 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약속 시간보다 늦은 친구는 미안하다며 엄청 사과를 했다. 내가 분명 괜찮다고 했음에도 말이다. 평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지각임을 알아서였을 텐데, 정말 희한하게도 그날은 어떤 화도 나지 않았다. 겨울바람이 내게 필요했던 날이니 말이다. 그런 겨울바람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어떻게 무언가를 무조건 피하거나 굉장히 싫어할 수 있을까. 난 그런 적대감이 어렵기만 하다. 마냥 행복하지 않은 순간들, 우리에게 매일 있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사건도 있지만 우울한 사건도 있는 것처럼. 행복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있다. 행복과 우울은 시소 관계가 아니며, 행복과 우울은 공존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우울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행복하면서도 우울할 수 있다. 그저 우리에게 늘 있는 감정들인 것이다. 몸을 꽁꽁 얼려 버리는 겨울이 지나면 등이 따뜻한 햇살이 있는 봄이 올 것이다. 그것은 당연한 순리이며, 그 봄이 지나, 여름, 가을, 다시 겨울, 이것 역시 순리다. 


'쓰고 싶지 않지만 쓰는 글'을 썼던 과거의 나도 나, 지금의 나도 나다. 그때의 나가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겪는 계절의 한 시기였을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우울하고 힘든 내가 잘못되거나 틀린 것이 아니라는 걸 기억했으면 한다. 내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그 시기가 다시 오더라도 과거의 나처럼 나를 미워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공식 뮤직비디오를 캡처한 사진입니다.


‘이번 봄은 예전보다

빨리 온다지요

차갑게 얼은 겨울은

아직 그대로인데

어찌해야 하나 고민 말아요

난 괜찮아요

또 내게도 봄이 오겠죠     

난 네 앞에 나서는 게 두려워

혹시 너에게 옮길까 봐

내 눈물 내 슬픔 잊고

내게도 봄이 오면

그땐 그땐 그땐 그땐’     

https://youtu.be/v9ea5VDQfXg

이렇게 날 행복하게 하고 위로해주는 노래를 들으면,

그런 시기가 다시 온다고 해도 분명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놓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친구를 맞이하는 새벽,
작년보다 좋았던 올해를 보내고,
다가올 새해 2019년을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바랐던 일들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직 실망한 하루가 없는 2019년에
실수하고 아파도 견뎌갈 힘이 존재하길.
어렵고 복잡한 말들을 떠올려, 누구에게 읽힐 글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 수 있게 내가 나의 글, 나의 생각, 나의 언어, 오로지 나를 사랑하게 되길.
뒤늦게나마 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가득한 곳이길. 

내 약점이 아니라 내 장점을 찾아낼 눈을 갖고, 날 사랑하길.
그리고 날 사랑하는 만큼 다른 이들도 열렬히 사랑하길.
(2018년 11월, 2019년 다이어리를 구매한 날)

------

(2019년의 1월 1일)
내가 나를 사랑하여, 다른 이들에게도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가지길. 
2019년 시작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기회들로 가득하지만, 그에 굴하지 않고 변하지 않길.
따뜻함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길. 
한 없이 부드럽지만 내면은 단단해지길. 
추운 겨울, 서로의 온기로 모두의 밤이 따뜻하길.
이러한 바람과 믿음이 깨지더라도, 포기하지 않길.

(큰 마음먹고 구매한 2019 다이어리에 적은 글입니다. 아직 그 다이어리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죠. ㅎㅎ;; 3월엔 진짜 다이어리를 적기 시작해야겠습니다.) 


언젠가 이 노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오늘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쓰고 나니 제가 느낀 위로와 감동을 풀어내기엔 아직 제가 저를 덜 놓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음 글은 봄에 듣기 좋은 노래 추천 리스트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계절이 바뀔 때, 적어볼까 합니다. 이런 소소한 다짐이 이 기록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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