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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홍색가방 Feb 01. 2019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 책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


 '말'이 주는 힘은 굉장히 크다.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 박준 시인의 산문집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을 골랐다. 2017년 여름에 도서관에서 읽고 직접 책을 샀다. 책의 구성을 보면 산문집과 시집의 중간 지점이라고 생각이 든다. 이런 박준 시인들의 기록들을 보고 있으면 계속 무언가, 사람이든, 시간이든 떠나보내고 있는, 이별 장소에 와 있는 듯하다. 항상 떠내 보내는 것은 아프다. 이러한 떠나보냄에 대한 그의 '말'들은 날 감동시켰다. 우리는 매순간 이별하고 있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주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책 속에서)

  최근 반년 만에 만난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반년 사이에 되게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에 말이다. 그 변화를 나 역시 느끼고 있었다. 다양한 불안함들을 속에 쌓아둔 채, 넘기는 것이 아닌, 웃으며 그 불안을 꺼내어 놓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여러 상황들이 전보다 나아졌기 때문도 있겠지만 사실 그보다 '말'때문이다.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면서 '표현'에 대해 굉장히 생각을 많이 하시는 분들을 만났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표현방식을 배우며 더 좋게, 더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들이 '되게 긍정적이신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말들이 쌓여 내가 더 긍정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게 했다. 그래서 요즘에 예전에도 항상 흔히 비속어라 지칭하는 표현들을 지양해왔지만 더 신경 쓰게 된다. 말의 표현이 부드러워지고, 한 번 더 생각하고 뱉을수록 '나'라는 사람이 내게 더 마음에 들었다.


  '나'라는 사람을 완성시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면, 쌓여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인간은 항상 모든 사건들, 시간들에 의하여 쌓이고 쌓여서 죽을 때까지 완성하지 못하는 조각품은 아닐까.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들어내는 모습 이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쌓이는 것 중엔 사람도 있고, 추억도 있겠지만 어떻게 쌓는 것이냐 하면 바로 '말'이다. 내가 뱉은 말과, 내가 들은 말들에 의하며 사람도, 추억, 사건사고도 정의될 것이다. 그러니 진정 우린 '말'로 쌓이는 것이 아닐까.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스스로의 마음을 더 괴롭게 할 때,
속은 내가 속인 나를 용서할 때, 가난이나 모자람 같은 것을 꾸미지 않고 드러내되
부끄러워하지 않을 때, 그제야 나는 나를 마음에 들어할 채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책 속에서)

  내가 떠나보낸 말에 대해 잊지 못하는 편이다. 남의 말보다 내가 뱉은 말이 내게 더 아프게 다가올 때가 많다. 남의 말은 잊으면 그만이지만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닿아 상처를 내거나, 아프게 했을 때의 죄책감이 내게 더 크다. 바로 며칠 전에, 7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용기를 낸 연락이었으나 상대의 입장에서는 아플까 봐 걱정을 했다. 7년 만의 연락이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 연락이 부담스럽고 불편하다면 무시해도 좋다고 전했다. 나의 진심을 전하기 위함이었고, 혹여 사과에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그 친구의 부담이 조금은 덜어지길 바랐다. 고맙게도 그 친구는 그저 좋은 기억만 있다 답해왔다. 그리고 연락은 다시 끊어졌다. 앞으로 평생 그 친구를 기억할 것 같다. 미안함과 더불어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에 대한 경고처럼.


내가 부서지기 쉬운 것처럼, 모든 사람이 부서지기 쉽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모두의 마음에 들 수는 없지만, 또 그렇게 노력할 필요는 없지만,

상처 주지 말자고. 우리가 가장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무기는 바로 '말'이니까.


해남에서 온 편지

배추는 먼저 올려 보낸다.
겨울 지나면 너 한 번 내려와라.
내가 줄 것은 없고
만나면 한번 안아줄게. (책 속에서)

  '안아준다'는 말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어떠한 말보다 실제로 체온을 나눈다는 것 같아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안다'라는 단어의 뜻을 보면 두 팔 벌려 품 안에 있게 하다는 뜻이다. 단순한 행동의 서술인 것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가장 깊은 '품'을 나눈다는 의미가 아닐까. 자신의 따뜻함을 나누겠다는 말은 언제나 옳다. '안아준다'는 말이 가지는 따뜻함을 계속 나눌 수 있기를.


  이 마지막 문장에서 한 동안 머물었던 나는, 그때 간절히 누군가의 포옹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떠나보낸 과거의 나에게 '안아줄게'라는 말을 보내본다.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책 속에서

1. 그늘

    남들이 하는 일은
    나도 다 하고 살겠다며
    다짐했던 날들이 있었다.
  
    어느 밝은 시절을
    스스로 등지고
  
    걷지 않아도 될 걸음을
    재촉하던 때가 있었다는 뜻이다.


2. 그해 협재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오래 침묵했고
    과거를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조금 안도했습니다.


3. 그해 연화리

      늦은 밤 떠올리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나를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본 매거진의 서문을 제외하고 딱 20번째 글이다. 딱 맞는 숫자를 좋아해서 그런지 기분이 참 좋다. 작년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다. 근무를 하는 도중엔 규칙적으로 올리지 못했지만 일을 잠시 쉬고 있는 지금은 자주 올리려 노력 중이다. 무언가를 쌓는 일은 이렇게 나름대로의 성취가 있다.


최근 계속 '친절', '따뜻함', '선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지루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그게 정말 큰 가치라서 놓기가 어렵다. 이런 나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는 것 같다는 말도 옳다. 있는 것도 같다. 근데 나는 그런 내 모습이 좋다. (누구한테는 답답한 사람이겠다.) 나는 부수기보다 같이 부서지는 사람을 택하고 싶다. 그것이 내 정의라면 정의다. 아직 내게 그런 용기가 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사실 지금의 나에게는 남는 품이 많다. 예전보다 내가 가진 품이 넓어져 모두에게 웃을 수 있는, 그런 때다. 극장에서 웃을 때도 웃음이 편해졌었다. 일이 많아 지치는 날도 있었지만 그저 일적으로 웃기보다는 그저 웃음이 나는, 같이 일하는 분들께도 초콜릿을 전하는 일이 쉬운, 그런 때. 좋은 사람이 되기 쉬운 때다. 그래서 계속 '따뜻함'을 잃지 말자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예전보다 마음에 들어하는 '지금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p.s 본 글에 사용된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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