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분홍색가방 Jan 13. 2019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아는 걸 써 톰!”     


같이 공연장에서 일하는 분께서 ‘나비’라는 넘버에 빠져 회전문을 돌고 있다는 소식(한 가지 공연을 여러 번 보는 일)에 같이 가서 보게 된 뮤지컬이다.     


보는 내내 소리 죽여 눈물을 흘렸다. 토마스와 앨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으면 그렇게 찬란했고 또 소소했던 따뜻한 추억들이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이 모두 다 과거라는 사실에 안타까웠다.      




토마스는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다. 하지만 슬럼프로 인해 새로운 작품을 쓰지 못한 지 오래다. 그런 토마스에게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그러나 연락을 하지 않은 지 오래인 앨빈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토마스는 앨빈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송덕문(공덕을 기리어 적는 글)을 적으려 하지만 쉽게 쓰지 못한다. 그런 토마스는 기억 속 앨빈과 함께 앨빈과의 추억을 회상한다. 회상하며, 토마스는 자신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한다.     


간략한 본 뮤지컬의 줄거리다. 

토마스가 놓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     


     


본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서 날 계속 괴롭힌 것은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라 말하는 앨빈이었다. 앨빈은 상당히 괴짜로 등장한다. 학창시절, 토마스가 앨빈을 또라이라고 지칭할 만큼, 특이했고, 특별한 아이였다. 할로윈에 돌아가신 어머니로 분장을 하고 등교하고, 아버지의 책방에서 영혼의 소리를 듣고 필요한 책을 찾아주고, 나비의 작은 퍼덕임이 온 세상을 바꿀 바람이 될 수 있다며 야한 잡지보다 나비에 집중하는, 다른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을 스쳐 지나가지 않는 따뜻한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 사소함을 놓치지 않는 사람.     


작가가 되겠다는 토마스에게 항상 “네 머릿속에 이야기만 몇 천 개야.”라고 말하며,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운 토마스에게 그러한 과정이 아니라 눈꽃 천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멋진 사람.   

   

토마스가 놓친 건 바로 그런 사람앨빈이다

그리고 같이 이야기를 만들었던 자기 자신.     



이렇게 글을 쓰게 만든 대사를 뽑으라고 한다면, 어떠한 주저 없이 고를 수 있다.   

   

아는 걸 써     


우리는 흔히 ‘아는 것’을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다 알고 있다고 말이다. 토마스도 그랬다. 어떻게 하면 주류를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지 잘 알았던 그는, 정작 자신을 주류로 만들어준 글을 누구 때문에 쓰게 됐는지 잊었다. 그것은 바로 앨빈, 앨빈과의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그런 앨빈을 자신의 삶에서 지우니 토마스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또 토마스는 앨빈의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송덕문을 쓰는 것에도 쉽게 쓸 수가 없었다. 앨빈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토마스는 그것의 이유를 찾으려 애썼다. 앨빈은 그런 토마스에게 말을 건넨다. 그건 네가 그 순간을 보지 못했기에 모르는 일이라고. 네가 알 수가 없는 일이라고. 그러니 네가 아는 이야기를 쓰라고. 여전히 장난기 많은 웃음과 어딘가 쓸쓸한 목소리로 말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는 뇌를 가졌다. 하지만 그 기억의 방에는 중요도, 빈도 등에 따라 그 기억을 불러오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뇌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우리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을까.        

우리가 기억함으로써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기억해서, 알고 있을까.     

우리에게 중요했던 ‘나비’를 기억하고 있을까.     



본 뮤지컬에서 메인 넘버라고 한다면 ‘나비’겠다. 그 나비의 가사 내용은 토마스가 대학 입시를 위해 쓴 짧은 단편 소설의 내용이다. 그 ‘나비’라는 존재를 찾아가려면 중학생 앨빈을 찾아야 한다. 중학생 때, 앨빈은 토마스에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 저 편에서 태풍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나비효과’다. 그렇게 ‘나비’를 관찰하는 앨빈에게 토마스는 야한 잡지를 건넨다. 또래 친구들은 다 본다고, 중학생 때는 괜찮지만 고등학생 때는 개성, 그렇게 튀는 건 안 된다고, 또라이 앨빈 졸업 하자고. 좀 묻어가며 살자고     


그렇게 토마스가 보여준 야한 잡지를 본 앨빈은 한마디한다.     


불편해보여.”     


야한 잡지 속 모델들의 의상이 불편함을 뜻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주류를 따라가는 것이 불편해보인다는 말로도 들렸다. 앨빈은 그렇게 나비의 날갯짓을 따라하며, 우리의 존재 가치를 이야기했다. 나비의 날갯짓도 그러는데, 인간의 움직임은 더 큰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지 않겠냐고. 

     

토마스가 놓치고 있는 가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가 아닐까.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출 때 난 하늘 위로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를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

     


토마스와 앨빈의 관계는 ‘우정’, ‘사랑’이기도 하며, ‘추억’, ‘과거’이기도 하다. 정말 실체가 있는 관계이며, 관념적인 관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토마스와 앨빈의 이야기를 보고 있자면 참 따뜻하고, 무대에 재현된 토마스의 ‘기억의 방’이자, 앨빈의 ‘책방’은 아름답다.           


2019년 다이어리를 구매해 첫 장에 적은 글의 일부다.     


아직 실망한 하루가 없는 2019년에
실수하고 아파도 견뎌갈 힘이 존재하길.
어렵고 복잡한 말들을 떠올려, 누구에게 읽혀질 글이 아니라
내가 만족할 수 있게 내가 나의 글, 나의 생각, 나의 언어, 오로지 나를 사랑하게 되길.
뒤늦게나마 나에게 보내는 연애편지가 가득한 곳이길.      


계속 글을 쓸 것

아는 것을 쓸 것

나를 기억할 것.          


+


뮤지컬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의 넘버 ‘나비’ 가사   

  

꽃과 나무 가득한 왕국에서
강물이 수풀 사이로 춤추며 흘렀죠
봄바람 따라 바닷가로     
그 나비는 작은 가지에 내려앉아서
달려가는 강물 바라봤죠
혹시라도 바람에 휩쓸려 갈까 봐
잎사귀 뒤에 숨어 말했죠

나는 나비야 작고 중요치 않아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과 같아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야 중요치 않아

어느 날 그는 강물에게 물어봤죠
저기요 어디로 가나요?
저 폭포 너머 세상에는 뭐가 있죠?
나 좀 알려줘요

씩 웃으며 강물이 대답했죠
바람 따라서 바다로 간단다
넓고 푸른 저 바다는 너도 좋아할 거야
너도 함께 떠나자

나는 나비죠 작고 중요치 않죠
세상의 거대함 앞에 난 티끌과 같죠
팔이 저릴 때 날개를 펴 춤추며 만족해
나는 나비죠 중요치 않죠

근데 나비는 바다를 꿈꿨죠
흰 파도 위를 날고 싶었죠
하지만 파도 같은 건
너무 위험하기에
바람에게 한 번 더 말을 걸었죠

어떻게 그리 빨리 날 수 있죠?
바람은 엄청난 얘길 해줬죠
내 몸의 힘은 공기의 흐름일 뿐
그 작은 날개로 시작돼
네 날개로

너는 강한 나비야 나의 힘이야
네가 춤출 때 난 하늘 위로 날 수 있단다
네 몸으로 공기를 흔들며 그 춤을 출 때면
네 날갯짓에 이 세상이 변해

나비는 팔을 펴서 나무 위의 가지를 떠나
날아올라 가 바다를 봤죠


+


본 글을 쓰고, 2월 12일 공연을 한 번 더 관람했습니다. 이제는 공연이 다 끝난 후네요.

한 달이라는 사이에, 제게도 많은 변화가 있던 시기였습니다.

글을 정말 직업적으로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씀'이 '일'이 되는 그 과정 속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무언가 준비없이 시작한 기분이라 두려우면서도 막연합니다.

그래서 앨빈의 '아는 걸 써.'라는 말이 계속 맴돌고, 괜히 아려왔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 했으면서 괜히 떨리는 기분이 들더군요. 이제 시작이니. 그러한 소중함 앞에 그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성장하는 작가가 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는 요즘입니다. '아는 걸 써', 우리에게는 각자 소중한 이야기들이 있고, 그 이야기들이 누군가를 감동시킬 무언가일텐데 계속 어딘가를 파내려고 하는 제게 본 공연이 더 특별해진 이유입니다. 돌아오면 한 번 더 찾아 그들의 노래에 가슴 속으로 아는 것을 쓰는 것에 성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기회에 최선을 다할 수 있길.



이전 17화 날 위로하는 노래들(두 번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