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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리안 Oct 31. 2019

누구나 그렇게 작가가 된다 7

운명의 90초 



항공사에는 ‘운명의 90초’라는 룰이 있습니다. 비상상황이 발생할 시 무조건 90초 내에 승객들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규칙입니다. 항공기가 추락하면 화염에 휩싸이거나 폭발하는데 평균 2~3분이 걸리므로 탈출을 위한 골든타임은 단 90초뿐입니다. 


그래서 승무원들은 평상시 90초 내 탈출이 몸에 배도록 훈련을 받습니다. 세계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2016년 8월 3일(현지시각) 에미레이트항공 소속 보잉 777-300 여객기가 두바이 공항에 비상 착륙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관제탑 지시로 고도를 높이려다 실패하고 착륙 기어가 접힌 상태라 활주로에 동체착륙 할 수밖에 없었지요. 


여객기에는 승객 282명과 승무원 18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겁에 질려 우왕좌왕하고 짐을 챙기려고 애썼지만, 승무원들은 여객기 뒷문의 비상탈출용 슬라이드를 펴 승객들을 모두 탈출시키고, 마지막으로 비행기를 빠져나왔습니다. 전원이 탈출한 직후 기체는 폭발하면서 불길에 휩싸였습니다.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응이 탑승객 전원을 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고나 사건에서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초반 금쪽같은 시간(1~2시간)을 골든타임이라 지칭합니다. 글쓰기에도 마찬가지로 ‘골든타임’이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번쩍 떠올랐을 때 그 아이디어를 얼마나 구체화시키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집니다. 영감은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영감이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즉각적으로 메모하고, 생각을 확장시켜 나가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승무원들이 몸에 밸 때까지 90초 룰을 익히듯, 작가 역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골든타임을 적극 활용해야만 합니다. 


귀찮아서 간단한 메모만 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나중에 그 메모를 다시 보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조금 더 많은 단어를 사용해서 메모를 해보지만, 이 역시 시간이 지나고 나면 번뜩였던 아이디어는 온데간데없고 ‘소재’만 남게 되는 일도 허다합니다. 


저의 경우 소설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노트를 펼칩니다. (노트북 말고 공책) 핸드폰이 아닌, 노트에 쓰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엄청난 양을 적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중요하므로, 몇 장이 되었든 멈추지 말고 계속 써나갈 것을 권합니다. 


습관이 배어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몇 줄 쓰다가 막히거나, 더 이상 쓸 말이 없어 적는 도중에 그만두겠지만, 익숙해지면 A4 한 장쯤 쓰는 건 일도 아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구잡이식의 메모는 곤란합니다. 메모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합니다. 또 가급적 시놉시스보다는 트리트먼트의 형태로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할수록 작품의 유용한 밑그림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일단,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생각의 꼬리를 잡고 늘어져보세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방대한 스토리가 나올 겁니다. 앞뒤가 맞든 말든, 개연성이 부족하더라도 상관없어요. 그런 건 차후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하면서 하나씩 고쳐나가면 되니까요. 


그렇게 한 장의 시놉시스 혹은 트리트먼트로 쓰고 나서 보면, 이 소재가 소설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눈에 보입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지우거나 없애지는 말아야 합니다. 단독 소재로는 소설이 되기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다른 소설을 쓸 때 하나의 에피소드로 넣을 수도 있거든요. 그냥 버려도 되는 소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법입니다. 





*


우리의 뇌는 신기하게도 낮에는 이성을, 밤에는 감성을 주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밤에는 마음 가는 대로 초고를 쓰고, 다음 날 아침부터 오후까지 퇴고를 합니다. 감성이 놓친 부분을 이성이 알아서 잡아내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아낄 수 있는 작업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개인적인 작업 스타일이지,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이 따로 있을 거예요. 누구는 이른 아침에 머리가 맑아서 잘 써진다고 하고, 또 누구는 오후가 편하다고 하니까요. 


어쨌거나 글쓰기 편하거나,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을 정해서 그 시간만큼은 어떻게든 확보하고 사수하세요. 그것이 글쓰기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만약 내가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에 타인 혹은 어떤 상황이 방해를 한다면 시간을 바꾸지 말고, 장소를 바꾸는 게 훨씬 효과적입니다. 


어디를 가도 방해꾼이 있다고요? 그렇다면 화장실에 들어가서라도 써야죠, 뭐. 잘 찾아보면 분명 글쓰기 좋은 장소는 있을 거예요. 글 쓸 장소보다 시간이 없는 게 더 문제라면,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세요. 이땐 핸드폰에다가라도 쓰면 됩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생각보다 집중도 잘 되고요. 


많은 시간을 투자해 글 쓸 생각을 하면 마음의 부담감이 커지므로, 10분 규칙을 따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하루에 딱 10분만 쓰기로 하고 정해진 시간엔 무슨 일이 있든 10분 동안 쓰는 것입니다. 한 시간을 쓴다고 해도 한꺼번에 다 쓰지 말고, 10분씩 6번으로 나눠서 쓰면 스트레스도 덜 받고 훨씬 효율적입니다. 


*


여명 혹은 황혼의 시간대를 뜻하는 ‘매직 아워’는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하늘은 청색이고 그림자는 길어지며, 태양은 노란빛을 발산하는 시간이 부리는 마술. 건물이나 자동차, 가로등 불빛도 가장 뚜렷해 보이는 동시에 세상 그 어떤 것도 따스한 색감으로 변화시켜 낭만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시간이죠. 


드라마나 영화, 사진 촬영에 있어 매직 아워는 골든타임인 셈이지만, 작가에게 있어서는 ‘뮤즈’를 만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루 중 가장 아름다운 이 시간을 허비하는 건 정말이지,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니 책상에만 붙어 있지 마시고, 하루에 한 번. 가능하다면 매직 아워 동안 산책을 하며 감성을 채워보면 좋겠습니다. 하늘도 한 번 올려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도 관찰하다 보면 또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발견하게 될 테니까요. 




글. 제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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