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반대편에서 온 너와 연애한다는 것.
미국인이겠거니 생각했다. 금발에 파란 눈, 매일 수업시간 마주치는 '미국인'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다. 그런데 인사를 하자마자 그의 억양이 특이하다는 걸 알아챘다. 'Are you originally from here?' 이라는 질문은 안 하려고 했는데, 물어봐야겠다 싶었다.
"No, I am from Brazil."
브라질이라니, 신기하네. 딱 그뿐이었다.
첫눈에 서로에게 반했다거나 알 수 없는 불꽃이 튀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우리가 제대로 된 대화를 한 건 내가 인턴을 하던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브라질리언 재즈 가수가 나를 Thanksgiving 파티에 초대하면서다. 그림 같은 집에 아름다운 대가족이 모이는 파티였다. 홀로 이방인이 될까 걱정스러웠던 나는 주위에 내가 아는 유일한 브라질 사람, 그를 데리고 가기로 했다. 순전히 나의 어색함을 방지하기 위한 말동무 상대로서 말이다.
와인 한 잔을 들고 테라스에 가만히 앉아서 서로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눈이 이렇게 밝은 파란색, 아니 바닷물빛을 닮았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두 달 전 여자친구와 헤어졌다는 그와 불과 몇 주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나. 둘 다 한동안 정신 못 차리고 살다가 이제야 예전의 생활로 돌아왔던 참이었다. 서로의 처지가 참 볼만 하다며 실없는 웃음이 터졌다. 따뜻한 저녁을 먹고 그는 나를 기숙사 앞으로 데려다주었다.
'Good night-' 인사를 하고 헤어지려는데, 그가 멈칫멈칫한다. 뭐지, 포옹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건 너무 어색한데. 그리고 나는 감칠맛나게 그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여유롭게 미소를 날리고 기숙사에 들어와 엘리베이터 안에서 생각했다. 찌질이의 표본을 꼽으라면 그 정답은 내가 될 것이다.
다행인지 그 이후로 우린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그렇게 알고 지낸 지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뿐인데도 5년은 알고 지낸 사이처럼 난 그가 편안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에 녹아들었다. 그는 내가 생각해왔던 '정열적인 브라질리언'도 아니고 '항상 흥이 넘치는 남미 사람' 도 아니었다. 오히려 나보다 조용하고, 얌전하며,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는 호수 같은 사람이었다. 국적과 국민의 언밸런스한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당시 내 좁은 편견의 일부일 뿐이었지만.
그도 나도 미국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인턴십을 시작하느라 바빴고, 그는 미뤄왔던 실험실 일에 파묻혀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시차는 딱 12시간이었다. 내가 저녁을 먹는 시간에 그는 아침을 먹었고, 내가 아침을 먹는 시간에 그는 저녁을 먹었다. 아침에 나를 깨우는 영상통화 한 통과, 메시지, 그리고 자기 전 영상통화 한 통이 우리 대화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생활의 모든 것을 공유했다.
그는 항상 본인이 자고 있을 시간에 언제든 내가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면 확인할 수 있도록 핸드폰 볼륨을 최대로 해놓고 잔다고 강조한다. 새벽 3시가 되었든 낮 3시가 되었든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보고 싶으면 언제든 전화하라며 내게 다정한 말을 건넨다. (자기 전 나의 안락한 숙면을 위해 핸드폰을 비행기 모드로 돌려놓는 내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는 건 비밀로 하자.)
전 세계의 반을 돌아 나를 사랑하는, 내가 사랑하는 그가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 거리가 너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나 손 뻗으면 닿을 거리는 아니어도, 그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오히려 항상 함께 붙어있었던 과거의 연인들보다 나는 더 자주, 빨리 그에게 달려가 대화하고 평화를 찾았다.
우리가 함께 한지 3년이 다 되어간다. 3년 동안 우리가 실제로 함께 있었던 시간은 단 6개월에 불과하다. 우리를 3년 동안 이끌어온 원동력이 무엇이냐 물으면 우린 그 6개월을 제외한 2년 6개월이라 대답할 것이다. 곁에 없어도 사람은 대화를 통해 많은 감정을 주고받는다. 우리가 2년 6개월 간의 대화로 주고받은 사랑은 우리가 함께 지내는 6개월을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그는 1년에 한두 번씩 나를 보러 비행기에 올라탄다. 겨울옷을 입은 채로 여름옷이 가득 든 캐리어를 들고, 혹은 여름옷을 입은 채로 겨울옷이 가득 든 캐리어를 들고 말이다. 한국과 브라질을 연결하는 직항편은 전 세계 어디에도 없기 때문에 한 번 이상의 환승은 필수다. 운이 좋다면 순수 비행시간은 27시간. 운이 좋지 않다면 36시간이 넘는 비행도 감수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만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그는 내게 브라질에서 사 온 선물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혹은 프랑스, 독일 공항에서 사 온 선물까지 건네준다. 세계 온갖 공항에서 사 온 기념품들이 내 책장 위를 채울 때 나는 우리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멀었는지 다시 한번 실감한다.
'남자친구가 브라질 사람이야.'라는 나의 말에 '뭐라고? 브라질?'이라고 되묻지 않은 이는 없었다. 얌전하게 생겨서 의외라는 반응 (이 반응은 내가 제일 좋아하지 않는 반응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글을 한 편 더 써볼까 한다), 로맨틱하다며 부럽다는 반응, 너무 멀어서 힘들지 않냐는 반응까지. 각양각색의 반응들이 나온다. 한국에 브라질 사람과 연애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얼마나 적을지 감이 오진 않지만, 우린 이렇게 시작했고 이렇게 지내왔음을 알리고자 글을 시작했다.
세계 반대편에서 온 그와 연애한다는 것은 항상 달콤하지도, 항상 힘들지도, 항상 새롭지도 않다. 우리는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에게 상처를 준 뒤 수없이 많은 부재중 전화에 절망하기도 하고, 별 것 아닌 사소한 일로 빈정 상해하기도 하며, 사진 속 네 옆에 서있는 사람은 누구냐며 추궁하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와 함께한 3년 동안 새로운 나와 우리를 발견하며, 연인이라는 인연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세계 반대편에서 온 너와 연애한다는 건,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