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한 일상

마지막 방법

by 이보연

퇴원 후에도 일주일에 두 번씩 외래진료를 받았다. 병원에 가면 부족한 피를 수혈받거나 스케줄에 따라 면역글로불린을 맞기도 했고 끝난 줄 알았던 척수 항암도 몇 번 더 해야 했다. 항진균제, 면역억제제, 스테로이드제, 위염약, 영양제, 간 약까지... 매일 먹어야 할 약도 산더미였다.

병원에서 지칠 만큼 긴 시간을 보내고 집에 오면 녹초가 되 쓰러져도 모자랄 체력의 아이는 집에만 오면 신기하게 기운을 내며 책상 앞에 앉았다.

'방사선과 척수 항암을 그리 많이 했는데 머리는 왜 이리 좋은 거지? 뒤처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인데 왜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내년 것까지 선행하고 있는 거지? 저 의지는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모든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너는... 쉬고 싶거나 놀고 싶은 날이 없어?"

물으니
"난 공부가 노는 것보다 재미있어서..."

하며 얼버무린다.


외래 진료가 없는 날이면 내가 청소하는 사이 음악을 들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인터넷 수업을 들으며 '저요 저요' 발표하기를 즐기는 아이를 보며 괜스레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 너는 참 잘하고 있구나. 세상 제일 긍정적인 아이.

5년을 투병하고도 남들과 같아지지 못하고 걸핏하면 응급상황에 몸도 온전치 않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매일을 오늘처럼 사는 이 아이는 그 어떤 위인보다 위대해 보였다. 이 아이의 내일은 더 좋은 하루가 될 거고 5년 후 10년 후면 오늘은 기억도 안 날 만큼 바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 확신했다.


그 며칠 후...

갑자기 눈에 무언가 떠다니며 시야를 가린다고 하여 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하고 mr을 찍었고 mr결과가 나오자마자 당장 입원을 하라는 연락이 왔다.

'뇌출혈'이었다. 뇌출혈이라는 진단에 우리는 병이 재발한 것만 아니면 괜찮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과 협진이 시작되었고 신경외과 교수님은 출혈량이 많지는 않지만 몸을 못 움직일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한 위치였는데 기적이라고 했다. 이 정도 기적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몸은 움직일 수 있지만 오른쪽 시야의 반이 사라졌다. 그동안 그래 왔듯이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오른쪽을 볼 수 없었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심장에 있던 혈전 문제로 피를 묽게 하는 약을 먹고 있었는데 뇌출혈이 생겼으니 그 약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혈전이 만약 뇌 쪽으로 튀면 뇌졸중이 생길 수도 있는 큰 문제였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새로운 문제들을 안고 집에 돌아와 있던 어느 날..

또 갑자기 눈이 잘 안 보인다고 하여 조금 지나도 좋아지지 않으면 응급실에 가자고 옆에 지키고 앉아있었는데 조금 지나자 급격히 이상해지는 아이... 갑자기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하더니 헛소리를 시작한다.

고개를 허공으로 틱틱 반복하여 돌리며 얇고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요. 지금은 토할 것 같아서요. 아무것도 안 먹을 거예요. 그런데 있잖아요."

하며 쏟아내는 이상한 얘기들...

"여기가 어디야?"

물으니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안 보여요"

"내가 누구야? 엄마 이름이 뭐야?"

"모르겠어요."

하기에 놀라서 119에 전화를 하는데 갑자기 경련을 하기 시작하며 숨을 못 쉬는 듯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나에게 기대 있어서 꼭 안고 있다가 경련이 멈춰서 침대에 눕히고 119에서 시키는 대로 가슴을 두드리며 이름을 부르니 힘들게나마 대답을 했다. 조금 지나고

"숨쉬기가 힘들어요~"

하며 말을 하기 시작하기까지 내 아이가 죽을 것 같은데 내가 아무것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그 상황에... 내 무능함에 너무 화가 나고 무서웠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침착했던 내가

"어떻게 해. 어떻게 해."

만 연발하며 머릿속이 새카매진 건 처음이었다.


구급차를 타고 가까운 병원에 갔다가 다시 서울병원으로 옮기는 동안 구급차 운전기사님은 본인의 일인 양 마이크 들고

"응급환자입니다. 마이크 들면 정말 응급인 거예요! 님들 가족이 탔어도 이러실 거예요!! 야 이 새끼야 비키라고!!"

하며 애원하며 협박하며 쌍욕하며 길을 열고 달려주어 40분 만에 응급실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교수님도 퇴근 전이어서 내려오셨는데 응급 ct, mri상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의사가,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병원의 의사가 "모르겠어요." 하는 건 정말 세상 무서운 일이었다.

피가 마르는 며칠을 보내고 '뇌졸중 의증'이라는 병명을 하나 더 붙인 아이는 일단 집으로 돌아왔다.


이식 이후 금방 일상생활을 할 거라 기대했는데 은찬이는 그러지 못했다. 근육 숙주로 팔을 제대로 들지 못했고 위 숙주로 음식을 먹지 못했으며 피부 숙주 때문에 온 얼굴이 벌겋게 뒤집어졌다. 그 숙주를 잠재우려 먹기 시작한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다리 힘이 빠져 제대로 걷지 못했고 '골괴사' 진단을 받았다. 뼈 전체에 작은 구멍들이 가득했다.

못 걷는 아이를 휠체어에 태워 밀고 걷는 날이면 지나가는 사람들 다리만 보였다. 다시 태어난 지 100일 된 은찬이는 진짜 100일 된 아가마냥 걸음마부터 다시 시켜야 할 판인데 허리가 바짝 굽은 80넘은 노인들도 잘만 걸어 다녔다. 제일 부러운 게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었다.

'저분들은 저 나이까지 잘 살아있구나.'

하는 내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부러움...


모든 것에 화난 마음에 진료실에서도 툴툴거렸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밥을 잘 먹지는 못해요. 처방받은 운동을 해도 그다지 좋아지는 느낌은 아니에요."

불만을 늘어놓자 교수님은
"드디어 바이러스가 없어졌어요. 말하는 게 많이 빨라졌네요. 배 소리도 좋아진 것 같아요."

말씀하신다. 항상 제자리인 것 같지만 사실은 느리게 좋아지고 있었다.


보통 이식 후 몇 달이 지나면 외래진료 간격이 일주일에 한 번에서 2주일에 한 번으로 점점 벌어진다. 그런데 은찬이는 여러 이유로 쭉 주 2회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 와중에 조금씩 일상의 루틴을 찾아갔다. 진료가 없는 날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해가 진 저녁시간이면 동네 한 바퀴씩 산책을 했다. 이식한 지 백일째 되던 날은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서 떡을 돌렸고, 병원 완치 파티에도 어김없이 참석해 바이올린 연주를 했다. 이번에는 동생과 함께 듀엣 연주까지 하여 병원 식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5년을 투병하고도 여전히 밝고 여전히 똘똘하고 여전히 숨 쉬고 있는 이 아이는 의료진들에게도 같은 환우들에게도 큰 희망이었다.


크리스마스도 집에서 보냈다.

작년처럼 재작년처럼 두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연주를 준비했고 함께 음식을 만들어 파티를 했다.

이식 후 6개월 검진도 통과하며 조금씩 남들과 비슷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작은 일상에 행복을 느끼던 것도 잠시...

2020년 2월... 아이의 병은 세 번째 재발했다.


그간 우리에게는 세 번째 재발을 해도 방법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중국에 가서 car-t 치료를 하는 것이었다. 담당교수님도 새로운 치료에 적극적인 분이셨기에 당연히 그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상황이 달라졌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전 세계의 출입이 어려워져 있었다. 더군다나 그 시발점인 중국에 나가거나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간 car-t에 대해 많이 공부해 두었었다. 은찬이처럼 여러 번 재발하여 방법이 없는 아이들의 82%를 살리는 놀라운 약이었다. 논문을 읽고 저널을 찾아볼수록 은찬이 같은 경우에 이만큼 좋은 방법이 없었다. 효과가 엄청난 만큼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 '킴리아'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었지만 국내에서는 사용할 수 없었다. 아이를 살릴 수 있는 약이 있는데 국내에서는 법적으로 사용할 수 없고 해외에 나갈 수도 없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교수님은 코로나19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일이라 마냥 기다리기도 어려우니 고용량 항암을 하고 재이식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권했지만 아이의 건강상태로는 이식을 이겨낼 수 없음이 분명했다. 아이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아는 교수님도 더는 권하지 않았고 우리는 코로나19가 지나가기를, 아니면 비행기라도 뜨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기다린다고 해서 병이 기다려주는 것은 아니기에 적당한 항암을 지속해야 했다.

항암주사를 맞으며 입원해있던 어느 날...


창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서있다가

"엄마.. 내가 자꾸 재발하고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그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잘 지낸 것 같아요. 특히 이 병원 와서부터 그런 걸 많이 느꼈어요."


"엄마, 나는 소아혈액종양과가 아니면 소아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기도 해요. 나는 스테로이드제도 엄청 먹어봐서 그때 기분이 어떤지도 알고, 많이 아파봐서 아픈 아이들 마음도 잘 아니까 그쪽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다.


한 날은 옆 병상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응급상황으로 중환자실에 내려가게 되어 아이 엄마가 어쩔 줄 몰라하는 상황을 지켜보던 은찬이가 커튼을 빼꼼히 열더니

"이모~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중환자실까지 갔다 왔는데 지금을 많이 좋아졌거든요."

하는 게 아닌가... 어른인 나도 힘들고 지쳐 남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상황인데 그 와중에도 은찬이는 너무나 훌륭하게 자라고 있었다. 내 아들이지만 존경스러울 정도였다.


아이 얼굴만 보면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 훌륭한 아이를 잃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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