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수

빛날 희 빼어날 수

by 이보연

처음부터 은찬이는 아니었다. 태어나서부터 열한 살까지 부르던 이름은 '희수'였다.

'빛날 희', '빼어날 수'.

희. 수.


할아버지가 손수 지어주신 이름이었다. 미신 따위 믿지 않는다 고집하며 흔한 작명소 한번 가보지 않고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그대로 썼다. 남자 이름 같기도 여자 이름 같기도 한 그 이름이 참 좋았다. 어릴 때부터 새하얀 얼굴에 항상 생글생글 웃고 다니던 아가에게 '희수'라는 이름이 참 잘 어울렸다. '곱다'는 표현을 종종 들을 만큼 예쁘장한 얼굴이라 사람들은 이름을 듣고도

"남자예요? 여자예요?"

되묻곤 했는데 그것조차 기분 좋은 일이었다.


희수는 자랄수록 이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모든 일에 열심이었고 매사에 눈을 반짝이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다. 아가 때부터 그랬다. 가만히 누워만 있던 아가들은 때가 되면 으레 뒤집고 기고, 서다가 걷기 마련이다.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결국 하게 되는 일들이다. 그런데 희수는 그때마다 뭔가 좀 달랐다. 뒤집기 한참 전부터 몸을 반쯤 돌리고 갖은 용을 쓰며 울고불고 난리를 하고서는 몸이 딱 뒤집어지자 '씨익' 웃었다. 그 후로도 새로운 도전을 할 때마다 항상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노력을 하다가 성취해내고는 '씨익'웃고 다음 도전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말이 빠른 편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두 돌 무렵 어느 날..

방 한쪽 구석에서 돌아앉아

"규. 규우. 귤"

하며 혼자 발음 연습을 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다. 아이는 뭐든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 했다. 날 때부터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는 태도를 이미 지니고 나온 듯했다.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었다. 뭐든 새로운 것을 알고 배우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보통의 남자아이들은 밖에 나가 뛰어놀고 모래놀이나 칼싸움을 즐겨할 2~3살 무렵부터 이 녀석은 그런 것들 대신 숫자, 문자를 좋아했다. 걷지도 못할 때부터 기어 다니며 책을 뽑아 앉아서 책장을 넘기고 있곤 했었고, 조금 커서는 숫자놀이, 알파벳 맞추기를 좋아했다. 너무 공부만 하나 싶어서 일부러 바깥놀이를 시키러 데리고 나가면 엘리베이터 숫자를 보고 좋아서 "일, 이, 삼, 사... 이십이, 이십삼" 하며 숫자를 읽는데 심취했고, 밖에 나가면 자동차 번호판이나 아파트 동을 읽고 다니며 흥분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숫자를 익히고 자연스레 문자를 익혔다. 예쁘장한 얼굴에 거칠지 않고 공부를 좋아하며 얌전하게 앉아 책을 읽고 어른과 대화가 잘 통하는 남자아이는 말 그대로 '엄친아'였다. 개성 있고 톡톡 튀는 아이가 되었으면 하던 엄마의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스스로 엄친아가 되고 있었다.


연년생 동생이 태어난 후는 더 신기했다. 21개월 차이로 태어난 동생을 금방 받아들였다. 눈을 찌르거나 때리기는커녕 기저귀를 챙겨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토닥토닥 재우는 시늉을 했다. 엄마가 동생을 안고 젖을 먹이면 다 먹일 때까지 그 앞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곤 했다.


어떤 날은 엄마인 내가 봐도 나와 신랑 사이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

"하나님이 실수로 희수에게 너무 다 주신 것 같아."

라고 말할 정도로 아이는 예쁘고 사랑스럽고, 빛나고 빼어나게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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