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잘못된 기도

by 이보연

7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얼마지 않아 생긴 아이가 처음엔 얼떨떨했지만 곧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우리의 결실...


임신 초기부터 유난히도 입덧이 심해 아무것도 입에 댈 수 없었고 직장생활도 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토악질로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이 녀석 뱃속부터 까칠하네.”

하며 태명을 ‘까칠이’라고 지었다.


까칠이는 3개월 무렵부터 뽀글뽀글 태동이 느껴질 만큼 일찌감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배가 불러올수록 발길질도 심해졌고 막달쯤엔 가만히 앉아있으면 배가 이쪽저쪽으로 울룩불룩 움직일 만큼 발길질을 해댔다. 그럴 때면 신랑과

"얘 이러다가 축구선수 되는 거 아니야?"

하며 볼록 나온 그 발을 꼭꼭 눌러 안으로 밀어 넣으며 깔깔대곤 했다.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다녀올 때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하며 잘 보이지도 않는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고는 아빠를 닮았을까 엄마를 닮았을까 따져보기도 했고, 음악을 잘할까 운동을 잘할까 머나먼 미래를 일찌감치 그려보기도 했다. 양쪽 집안뿐만 아니라 양쪽 친구들 중에서도 첫 아이였다. 많은 지인들의 기대가 느껴질 때면 배를 문지르며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기도하곤 했는데 이미 세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사랑받고 있는 아이임이 분명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아이는 3.4킬로로 건강하게 태어났다. 3.4킬로라고는 하지만 건장한 체격인 아빠의 팔뚝만 한 작디작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커다란 아빠가 안고 있으면 고목나무에 매미가 매달린 듯 우스웠지만 아빠는 아랑곳하지 않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는 연신 아이를 안고 살랑살랑 흔들어댔고, 그 모습을 보는 나도 같은 표정을 하게 되곤 했다.


양가 집안에서도 반찬을 가져왔다거나 장난감이나 옷을 사두었다는 핑계를 대며 자주 우리 집에 들러서 아이를 한참 물고 빨다가 가곤 했는데 그 덕인지 아이는 크게 낯을 가리지도 않았고 사람을 보면 생글생글 잘도 웃으며 따르다 보니 어딜 가도 예쁨을 받았다. 남들 눈에도 이럴진대 엄마인 내 눈에는 그저 작은 천사일 뿐이었다. 요즘 말로 등 센서가 달려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을 만큼 예민한 아이라서 항상 안고 있느라 손목이 남아나질 않았지만 잠든 아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예뻐서 차마 내려놓지 못하고 한참을 안고 들여다보며 배시시 웃고 있곤 했다. 그때부터 아이는 나에게 존재 자체로 행복이었다.


나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은 물론이고 가족, 친구들, 아이를 맡아봐 준 여러 선생님들, 아이와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 할 것 없이 아이를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를 예뻐했다. 더 지나서는 아이를 맡아주는 의료진들부터 병원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나 보호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아이는 사랑을 받았고 어딜 가도 환영받았다. 심지어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옮긴 병원에서 만난 지 얼마 안 된 의료진들이나 재활선생님마저도 아이를 예뻐해 주는 모습을 보며... 심지어 아이가 떠난 후 아이 이야기를 들은 타인들 마저도 너무 예쁜 아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며... 아이가 뱃속에 있을 적에 했던 기도를 후회했다.

‘사랑받는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가 아니라

‘건강한 아이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했어야 했는데...

내 기도를 이렇게도 잘 들어주실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어야 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후회를 지금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