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가장 슬플까
누구도 알 수 없는 슬픔의 깊이
갖은 공을 들여 12년 넘게 키운 아이를 잃었다.
그중 7년은 아이를 죽지 않게 붙잡고 있느라 고군분투했다.
그렇게 아이를 떠나보내고 죽을 만큼 힘들던 때, 우연히 사고로 떠난 아이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그 댓글 중에는
"차라리 아이가 병으로 떠나면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 이렇게 사고로 떠나면 억울해서 어떻게 살아가겠냐"
는 댓글이 있었고,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죽음이 더 슬프다는…
그런데…
'병으로 떠나보낸 나도 억울함이 많은데? 시간이 있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지 못했고 지금은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
문득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겪어본 일, 겪어보지 않고 상상만 한 일, 상상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괴리감.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마흔이 넘은 자식을 떠내 보낸 부모를 보며
'그래도 그 아이는 어른도 돼보고 많은 것을 해봤겠네.’
라는 생각을 했었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떠나보낸 부모를 보며 아이와 깊은 정이 들기 전에 떠났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뱃속의 아이를 잃은 부모의 이야기를 듣고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나는 내 아이를 한 번 안아보지도 못했다고요."
나는 달을 세가며 품고 있던 아이를 잃은 부모의 마음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상상을 해본들. 나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그 일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자녀 사별을 겪은 나 조차, 나와 다른 상황의 사별을 겪은 사람의 마음 깊숙이를 이해할 수 없는데, 비슷한 일을 겪은 적조차 없는 사람이 그 마음을 느끼고 품어보는 것이 가능할까?
단언하건대 절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적어도 이런 아픔에 관한 문제에서 제삼자는 비교하고 판단하려 하지 말고 한 발 물러나 있어야 한다.
억울하고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고, 그 슬픔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은 누구나 같지 않다.
예측할 수 있는 죽음이던, 갑작스런 죽음이던 그 아픔의 종류가 다를지언정 죽음 앞에서 찢어지게 아픈 건 매한가지다.
부디 나의 상상력에 의존해 남의 아픔을 판단하는 오만한 행동은 하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