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마찬가지겠지만 10년 전 그때도 두 돌 쯤이면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였다.
신랑은 1년 중 6개월은 출장을 나가 있는 독박 육아면서 연년생 남매를 데리고 있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젊은 패기였는지 그때는 무조건 유치원 가기 전까지는 내 손으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이집 다니며 감기를 달고 사는 것도 싫고 이런저런 핑계들이 있었지만 사실은 내 아이들의 예쁜 모습들을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잠이 없는 희수 덕에 항상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해 먹이고 청소를 하고 나면 흡사 어린이집과 비슷한 스케줄로 하루를 보냈다.
음악활동, 미술활동, 바깥놀이도 하고 때때로 근처 꽃밭으로 소풍도 갔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내 피아노 소리에 맞춰 두 녀석은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두 손 검지 손가락으로 하늘을 쿡쿡 찌르며 춤을 추다가 노래가 끝나면 쥐 죽은 듯 멈췄다.
"누가 움직이나 보자~~"
하는 내 목소리에 키득키득 거리는 한 아이 옆구리를 간질이면 두 녀석 모두 까르르 웃음보가 터져 데굴데굴 구르다가
"다시, 다시!"
를 외치기를 열 번쯤 하면서도 아이들은 지칠 줄을 몰랐다.
"엄마 이번엔 미술 놀이해요."
하며 자기 몸집보다도 커다란 전지를 질질 끌고 나오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물감놀이라도 시작하는 날이면 두 녀석 온몸에 색색 물감칠을 하고는 전지에서 데굴데굴 구르다 결국 내 손에 들려 욕실로 향했고 욕실에서도 풍덩풍덩 온통 물바다를 만들어놓곤 했다.
어떤 날은 베란다 가득 밀가루 두 포대를 쏟아놓고 푸덕거리며 밀가루 놀이를 했고 어떤 날은 미역 한 봉지를 불려 베란다를 가득 채우고 헤엄을 치고 있기도 했다.
두 녀석 앉혀놓고 영어공부도, 수학 공부도 했다.
그럴 때면 희수는
"우리 집엔 뭐든 다 가르쳐주는 엄마 선생님이 있어."
하며 좋아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베란다 풀장을 열었다.
베란다에 꽉 차는 풀장을 설치하고 미끄럼틀까지 연결하면 미취학 아이들에게는 완벽한 풀장이 된다.
그곳에서 여름 내내 동네 친구들까지 초대해 물놀이를 하곤 했다.
아이들 추울까 봐 커다란 들통으로 따뜻한 물을 끓여 낑낑대고 나르면서도 아이들 깔깔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피로가 가셨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작은 꽃밭은 우리의 정원이었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갈 만큼 알아서 관리가 잘 되는 정원인데도 희수는 자기가 정원사라도 되는냥
"꽃밭에 물 주러 가야 할 시간이야."
하며 작은 물조리개 한가득 물을 담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곤 했고 뭣모르는 둘째 역시
"나도, 나도."
하며 물통 들고 쫄래쫄래 따라내려갔다.
그렇게 매일같이 물을 주고는 마치 관리인마냥 뒷짐 지고 꽃밭 한 바퀴씩 휘휘 도는 모습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어서 매일같이 꽃밭에 함께 나갔다.
꽃밭은 동네 아지트였다.
집에서 하기 어려운 색모래 같은 미술 놀잇감들을 가지고 나가 놀고 있으면 동네 친구들이 모여들어 결국은 여럿이 함께 하고 있곤 했다.
자전거도 타고 숨바꼭질도 하고 여름이면 이름 모를 열매를 줍거나 개미 구경도 하고 스프링클러가 돌아갈 시간이면 물총까지 챙겨나가 동네 꼬마들이랑 뛰어다니며 물총놀이도 했다.
신나게 뛰어놀다가 쉬가 급한 남자아이들은 몰래 구석 나무에 등을 돌리고 서서 급한불을 끄곤 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두 돌 쟁이 둘째 딸이 그 나무 앞에만 서면 배꼽을 내밀곤 "쉬~"해서 온 동네 사람들의 배꼽을 잡게 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그렇게 자랐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때가 힘들지만 가장 행복했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