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을 가득 담아...
강아지와 산책을 나섰다.
올해는 유난히도 겨울이 긴가 싶었는데 역시나 때가 되니 봄이 오는구나.
하루가 다르게 봉우리를 벌리는 꽃들을 보며 길 가던 사람들의 건조하던 얼굴에 잠시 웃음꽃이 피어난다.
모두가 꽁꽁 싸매고 다니던 겨울은 나의 마음과 같아 좋았는데 봄은 영 적응하기가 어렵다.
밝은 빛이 내리쬐는 환한 봄빛에 눈이 부셔 인상이 써질 뿐이다.
강아지와 발길이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우리 집 가까이에 성당이 있었네.
성당 앞에 우두커니 서서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다가 강아지를 안아 들고 성큼성큼 성모상 앞으로 걸어갔다.
성당을 다닌 적은 없지만 어차피 같은 분이라고 하니 할 말이 있었다.
그 앞에 멈추어 성모상 앞에 쓰여있는 글씨를 읽어 내려갔다.
병을 치유하시는 분... 어쩌고... 까지 읽다가 가슴이 요동쳐 읽기를 그만두었다.
왕관을 쓰고 있는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님을 번갈아 노려보다 눈시울이 붉어짐을 느끼고 얼른 돌아 나왔다.
모태신앙이었다.
남편도 나도 교회에 다녔고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을 했다.
은찬이가 처음 백혈병이라는 어마어마한 진단을 받았을 때, 우리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더 겸손하게, 더 착하게 살라는 채찍질일 거라 생각했다.
교회에 가지는 못해도 주님은 마음속에 계시다며 집에서도 찬양을 했고 때때로 설교말씀을 들었다.
아이들도 기독교 유치원에 다니며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었다.
그럼에도 은찬이의 병이 재발하자 화가 났다.
아니, 우리보다 나쁘게 막사는 사람들도 많고 많은데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거냐고 화를 내며 교회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병이 세 번째 재발했을 때 다시 돌아와 주님 앞에 납작 엎드렸다.
아이를 살려만 주신다면 뭐든 하겠다고... 아이는 어떻게 쓰셔도 된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즈음 유난히도 사도바울에 대한 설교를 많이 들었다.
고난에 고난을 겪으면서도 주님을 섬기는 사도바울의 이야기.
이만큼의 고난도 달게 받겠다고, 감사하다고 믿는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렇게도 간절했던 우리의 기도는 공기 중에서 산산이 흩어졌다.
교회생각, 하나님 생각을 할 때 가장 북받치는 부분은 우리가 납작 엎드려 기도했음에도 들어주지 않아서가 아니다.
은찬이가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하던 날.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은찬아, 하나님은 아끼는 사람에게 더 많은 고난을 주신대. 엄마아빠도 은찬이를 위해 매일 기도 하지만 은찬이가 기도를 해야 더 잘 들어주실 것 같아. 은찬이를 아끼시니까..."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 이후부터 아이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했다.
믿는다고, 고맙다고, 낫게 해 달라고....
눈도 안 보이고 몸도 못 움직이는 그 가엾은 아이가 죽어가면서 간절하게 했던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음에... 기운이 없어 떨리는 얇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지 않았음이 한스럽고 원망스럽다.
아이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믿었다.
하나님은 길 가던 앉음뱅이도, 나병환자도 치료하셨다.
그랬다가도 아끼는 제자를 아프게 하기도 그의 자녀를 빼앗기도 했다.
왜? 왜???
어떤 이들의 기도는 들어주어 완치되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응답을 받았다고도 한다.
믿음이 얕은 나는 그 기준을 잘 모르겠다.
왜 우리에게 다음 기회는 주지 않으셨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