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싶은데 안 버려지는 건 편견.....
20층 무균병동에서 한참 항암을 할 때였다.
두 돌도 안된 아기들은 유모차를 타고 작은 복도를
산책 대신 하고 있었고,
중고등학생들은 여전히 본인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않았고,
미취학이나 초등 저학년 정도 아이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아이들처럼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무난한 오후였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웃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져서
휴게실에서 하염없이 앉아 복도를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가 아빠로 보이는 사람과 복도에 나타났다.
양쪽 팔에 문신이 많이 그려진 걸로 보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머리는 또 1990년대 조폭들이 했을 법한 아주 짧은 스포츠머리였다.
아이는 똘망하니 아빠에게 뭐라 뭐라 쫑알쫑알 귀여운데
아빠는 아이와는 심히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첫인상이 매우 짙은 그 보호자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길까
일부러 창문 쪽으로 눈을 돌렸다.
요즘 문신은 패션의 일종이라지만
그래도 내 지인들 사이에는 간단한 타투를 한 사람도 손에 꼽을 정도이니
적응이 안 되는 걸 넘어 거부감이 드는 게 당연했다.
병동에서 그런 보호자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했을까?
백혈병이라는 게 사람을 골라서 발병하는 것도 아니니
다양한 보호자들이 있는 게 당연하다.
살면서 편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은데,
내 노력이 무색하리만큼 큰 효과는 없는 것 같다.
그다음부터는 복도에서 그 부자를 만나면
혹시라도 그 아빠가 아이를 심하게 야단치지 않는지 눈여겨봤다.
괜히 손에 있는 핸드폰을 보는 척하면서 귀는 잔뜩 쫑긋 하고 있었다.
몇 번이나 마주쳤지만
그 어떤 실마리도 발견하지 못했다.
요즘 젊은 아빠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세상 자상하게 아이와 놀고 있었다.
단연 내가 본 아빠들 중 거의 최상에 가까운 육아 달인 같은 모습이었다.
처음 내 생각이 달랐던 걸까?
나보다 병원 생활을 오래 한 친한 엄마에게 물어봤다.
"그 아빠 있지? 문신하고!!"
돌아온 답변은 놀라웠다.
"아~~~ 있지.. 그 집은 부부가 모두 그렇잖아.
지난번에 엄마랑 교대했었는데 엄마도 문신이 막~ 있어"
그럼 그렇지.. 부부가 모두 그런 성향이라니...
약간 누구러졌던 마음이 다시 확신으로 돌아서려던 순간!
그다음 말을 듣고
내가 그동안 했던 오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껄껄껄 웃었다.
"그 집 부부가 같이 문신해주는 일을 한다고 했어.
그 아빠 완전 육아 달인이야.
아이랑 정말 잘 놀아줘~~
아이에 대한 생각이 유별난가 봐.
애 진단받자마자 머리도 같이 빡빡 밀어서 이제 조금 길어 나오던데..."
그런 거였다!!!
문신은 일 때문에 하는 거고, 머리는 아이가 아파서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다.
갖가지 사정을 들으면 오해가 풀리는 경우가 많다.
내가 허탈하지만 즐거운 마음이 들었던 건 그 사람에 대한 오해가 완전히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 아빠가 다소 폭력적이거나, 거칠 거라는 건 순전히 나의 오해였다.
그날 이후로 그 아빠를 다시 보니 듬직하고 매우 자상해 보였다.
오늘도 다짐한다.
편견을 버리자.
나이가 들수록 편견을 버리자.
제발 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