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힘겨운 시간
처음 응급실에 발을 들인 지 무려 50여 일 만에 퇴원했다.
2차 항암을 위해 다시 입원해야 했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일주일뿐이었다.
퇴원이 가까워오자 밖에 나가서 할 일들을 적기 시작했다.
아이는 먹고 싶은 음식 목록을 작성하기 바빴고,
하루 3끼로 다 못 먹을 것 같아서 4끼, 5끼 먹기로 했다.
우리 둘 다 잠시라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이는 ‘군대에서 휴가 나갈 때 이런 기분일까?’라고 했고,
나는 ‘네가 겪은 건 군대보다 훨씬 힘든 일이야. 정말 수고했어.’
라고 말했다.
집에 오는 차창 밖은 5월 말 답게 초록이 깊어가고 있었다.
바깥공기를 얼마 만에 마셔보는 거냐며
아이는 차에 타자마자 창문을 열고 바람과 인사를 했다.
나도 고속도로에 다다르자
답답함이 한순간에 걷히며 기쁨이 퍼져나갔다.
그때까지 나는 몰랐다.
밖은 또 다른 지옥이라는 걸…
동네에 가까워질수록
50일 전 평온했던 일상들이 더없이 또렷하게 기억났다.
그리고 지난 50일 동안 병동에서 힘들었던 일들도 생각났다
우리가 왜 이렇게 집에 온 것만으로 기뻐해야 하는지..
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길에 지나가는 교복 입은 중고등학생들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나고 눈물도 같이 났다.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면 아이가 한 번씩 친구들과 컵라면을 사 먹던 모습이 생각났다.
잠시 마트에 장 보러 가다가 아이 친구들을 만나기라도 하면,
모두들 건강한 모습에 다행이다 싶다가도 ‘왜 내 아이만……’이라는 생각이 수도 없이 났다.
병동에 있을 때 잠시 잊고 있었는데
우리 아이는 지금 다른 아이들에 비해 매우 많이 아픈 게 분명하다.
말 그대로 '현타'가 오면서
마음 한편이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것 마냥 아려왔다.
밤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아침 점심 저녁 아이의 밥을 챙겨주고
집 청소를 하고 잠시라도 비는 시간에는 빠짐없이 약속을 잡았다.
그간 못 만났던 친구들 지인들..
불과 몇 달이 지나면 잊을 것 같은 아무 의미 없는
수다를 떠는 시간이 유일하게 현실에서 도망 나오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놀다가 집에 와야지만 녹초가 돼서 쓰러져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병동에서 보다 몸도 마음도 훨씬 더 힘든 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