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아직 정식 입학식을 하지 않았으니 입학할 것이라고 해야 하나. 고등학생의 학부모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처음 경험하는 것이라 야심 차게 학부모 일지를 써 보리라 마음먹은 것도 잠시.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고등학교 학사일정은 예정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고 나는 글을 언제 시작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시기를 놓쳤다. 아쉽지만 3월에 써 둔 단상을 시작으로 글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일반계고와 특성화고
큰 아이는 올해 일반계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아직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1월, 모임에서 우리 아이와 동갑 아이의 엄마인 지인이 물었다.
"아이 학교 발표 났어요?"
나는 '아직 발표 안 났지, 1월 말에 나잖아'하고 답했다. 지인은 자신의 아이는 발표가 났다고 했다. 나는 의아해하면서 서울은 벌써 난 건가? 혼잣말을 했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지인은 자신의 아이는 특성화 고교에 갔다고 했다. 원서를 내고 면접도 보고 거기서 자기소개서도 본인이 썼다고 했다. 나는 특성화 고등학교 입학 시에 자소서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아이가 일반계 고등학교에 지원했을 거라 생각했던 나의 편견에 놀랐다.
큰 아이가 원서를 쓸 무렵 특성화고와 일반고에 대해 잠시나마 고민했던 것을 잊고 있었다. 아이와 이야기하며 앞으로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좋을지 저울질했다. 아이의 생각보다는 내 의견을 아이에게 어필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시기상으로 특성화 고등학교에 먼저 지원하고 일반계 고등학교는 나중에 지원했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아이도 우리 아이처럼 일반계 고등학교에 갔을 거라 생각한 내 고지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입학 전 준비
1월 말에 일반계 고등학교 배정이 발표되었다. 바로 이어서 예정되었던 2월 초의 예비소집은 코로나 19 사태로 취소되었고 거의 모든 알림 사항은 문자로 전달되었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필요 서류를 다운로드하여 입학 시에 제출하라고 했다.
고등학교 교육비는 올해 2학년부터 무상으로 전환되어 1학년은 교육비를 내야 한다. 내년에는 고등학생 전체가 무상으로 전환된다니 올해까지만 내면 된다고 했다.
2월 첫 주에 입학금, 수업료, 학교 운영지원비, 교과서대까지 50여 만원을 납부하라는 알림과 첫 주 내에 무상 교복 지원을 받기 위해 매장에 방문해야 한다는 알림이 왔다. 고등학교 배정 발표는 꽤 늦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발표가 나자마자 여러 가지 처리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것 같다. 교육비 납부만 하고 교복을 잊고 있다가 주말까지 방문해야 한다는 업체의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교복 매장을 방문했다.
교복 맞추기
교복 매장은 중학교 교복을 샀던 곳과 달라서 찾느라 애를 먹었다. 교복 한 벌을 무상으로 지원하면서 브랜드나 매장을 고를 수 없고 지정된 매장으로 가야 한다는 불편함이 생겼다. 매장은 이전에 가 본 곳보다 훨씬 컸다. 이미 몇 사람이 교복을 사러 와 있었지만 교복을 고르러 온 사람보다 아닌 사람이 더 많아 보였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있어 나와 아이는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분들은 각각 한 명의 학생을 맡아 몸에 맞는 사이즈를 찾아주는 분들이었다. 매장이 크고 학교가 많아서인지 교복을 찾아주는 분들 여럿이 매장에 대기하고 계셨다. 나 같이 어떤 사이즈를 골라야 할지 모르는 학부모에게 큰 도움이 되어 일이 수월하고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분이 다가와 아이의 학교를 묻고, 아이의 대략 사이즈를 말씀하시는데 나는 놀랐다. 사이즈가 그렇게 컸던가? 그분은 교복 사이즈는 일반 옷 사이즈랑 다르다며 당황해하는 나를 안심시켰다. 그랬나 어쨌나, 중학교 때 교복 사이즈가 뭐였나 혼자 헤매는 사이 아이에게 맞을 만한 교복을 골라 탈의실로 안내해 주었다.
옷을 갈아입은 아이의 바지를 보고 내가 너무 작은 게 아니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처럼 입학할 때 사서 3학년까지 입힐 생각에 큰 걸 사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크게 안 입는다면서 이렇게 입는 게 맞는 것이고 아이들도 그걸 좋아한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나는 쉽게 설득당했다. 중학교 때 아주 조금 큰 걸 사는 바람에 훌쩍 자란 3학년 때에는 입어보지도 못한 재킷 생각은 안 하고. 그래도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만큼 많이 크지는 않겠지, 키는 더 크겠지만 품은 괜찮겠지, 느긋하게 생각 하면서.
재킷과 셔츠와 바지는 맞는 사이즈가 있어 그 자리에서 바로 가져 올 수 있었다. 며칠 늦게 방문한 탓인지 조끼는 없었다. 물량이 부족해 추가 생산을 해야 한다고 했다. 추가 구매로 셔츠만 한 장을 사려는데 그것도 나중에 조끼와 함께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렇게 삼 주 후라고 했던 교복은 주문 후 한 달이 다 되어 받을 수 있었다. 코로나 여파로 물류와 배송에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입학도 연기되고 교복도 3월에야 찾게 된 것이다.
입학식 연기
처음에 일주일 연기되었던 입학식이 2차로 연기되어 3월 넷째 주로 결정되었다. 아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과 메신저 단톡을 만들었고 학부모와는 먼저 문자로, 그리고 전화 통화로 인사했다. 아이가 이번 기회에 책을 많이 읽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부모가 아이의 학습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고등학생이다. 내가 고등학생때에도 책 읽으라는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다.
겨울 방학까지는 아이들을 실컷 놀렸지만 3월부터는 뭔가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밀려드는 것은 나도 다른 학부모와 다르지 않다. 학습 공백을 메꾸기 위해 아이들에게 단톡으로 선생님이 EBS 학습이라도 권하시려나 했는데 아직은 그런 이야기가 없다고 했다. 학교 홈페이지에는 과목별로 학습 지원 안내를 올려두었지만 강제로 시키지 않으면 알아서 학습을 하는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나도 며칠은 아이들에게 독려도 하고 강제도 해 봤지만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만큼을 집에서 하기란 불가능하다. 대신 책이라도 읽자고 얘기는 하지만 그것도 며칠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은 다른 학부모도 공감할 것이다.
학교는 개학을 연기했지만 학원은 휴원 권고에도 거의 그대로 운영하고 있다 하니 아이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부모들은 학습 공백이 커질까 더욱 마음이 불안하다. 나도 지금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겠다는 마음에 변함이 없다. 하지만 이 사태가 길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학교에 가도 되려나 하는 불안한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이런 시간이 아이들에게 자양분이 될 거라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믿고 싶을 뿐이다. (2020.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