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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Aug 06. 2020

한 밤중의 고양이 손님

누구냐, 넌


현관에서 덜컥, 소리가 들렸다. 바라보니 우리집 고양이도 현관 쪽을 내다보고 있다. 문에 난 구멍 렌즈로 밖을 내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안심하며 들어왔다. 하지만 곧 남편이 뭐가 있냐면서 문을 열었고 뭔가 시커먼 것이 후다닥 우리집으로 뛰어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뛰어들어온 녀석은 덩치가 큰 고양이였다. 우리집 고양이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녀석이 있었다. 녀석은 우리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곧장 남편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마치 언젠가 와본적이 있는 것처럼. 그러더니 남편의 침대 위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행여나 우리집 고양이와 만나면 싸움이 붙을까 싶어 우리 고양이를 다른 방으로 들여보내려고 했다. 우리집 고양이 새싹이는 한밤중의 침입자에 놀라 꼬리가 먼지털이처럼 부풀어 있었다. 낯선 존재를 경계하느라 나에게도 잡히지 않고 도망을 다녔다. 평소에 좋아하던 장난감을 꺼내어 흔들어도 거기에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남편 방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의를 끌려고 한참을 애쓴 후에야 새싹이를 다른 방으로 들여보낼 수 있었다.


그동안 남편은 낯선 고양이를 방에서 꺼내려고 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하악질(입을 벌리고 위협하면서 캬악 소리 내는 것)을 해대는 통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낯선 한밤의 침입자와 실랑이하던 남편은 그 고양이에게 목줄이 있다고 했다. 길에서 사는 녀석은 아닌 듯 했다. 우리는 동시에 길에서 살던 고양이가 제가 살 집을 간택한다는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남편은 이 녀석 주인 없으면 우리가 키워야 하나 걱정했다고 다. 나도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목걸이에는 주인의 연락처가 있었다. 얼마나 하악질을 해대는지 목걸이에 적힌 번호를 읽기도 어려웠다. 남편이 가까스로 숫자 하나씩 부르면 옆에서 아이가 받아 적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고양이 주인은 전화를 바로 받았다. 고양이를 찾으러 밖에서 헤매던 모양인지 당황한 목소리였다고 했다. 주인은 우리집과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이었다.  금방 와서 고양이를 데려갔다. 침대 위에 얌전히 앉아 있던 녀석은 주인을 보고 캬악 소리 한 번 내더니 얌전히 안겨서 집으로 돌아갔다. 자정이 지나 일어난 고양이 입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갑자기 뛰어든 고양이로 인해 혼이 쏙 빠진 우리 가족은 그제야 상황이 보였다. 우리 고양이 같으면 어디 구석으로 숨어서 잡지도 못할텐데 녀석은 당당하게 침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 집에서 머무는 곳이 그 위치에 있는 방이었을까. 집을 뛰쳐 나왔다가 당황해서 아무데나 뛰어들곤, 제 집과 같은 구조의 집에서 익숙한 자리로 간 것이다.


게다가 목걸이가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게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도 고양이 주인도 난처할 뻔 했다. 아이는 우리 고양이도 혹시 모르니 목걸이를 해주자고 했다. 당연히 그래야하는 걸 알지만 우리 새싹이는 너무 예민해서 인식표를 목에 걸고 있으려 하지 않는다. 어릴 때 목에 걸었던 목걸이는 모두 빼버렸다. 고양이 액체설이라는 걸 인정하면서 우리는 인식표 달기를 포기했다. 못 빼내도록 조이면 너무 답답할 것이고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어떻게 해서든 빼버린다. 하도 난리를 쳐서 요즘은 발톱도 못 깎고 있는데, 목걸이라니 꿈도 못 꾼다. 상전을 모시고 사는 게 맞는 것 같다.




저녁에 아이들이 작은 종이 가방을 갖고 들어왔다. 현관문 손잡이에 걸려 있었다고 했다. 어제 그 고양이 주인이 가져다 놓은 모양이다. '많이 감사합니다'에서 웃음이 났다. 그 고양이가 우리집으로 뛰어들어오지 않았으면 캄캄한 어둠 속에 찾아다녔겠지. 그게 어떤 마음인지 우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새싹이가 우리집에 오고 몇 달 후, 새싹이도 집을 나간 적이 있다. 고양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갑작스레 키우게 된 것이라 고양이가 문을 열면 튀어 나간다는 것도 잘 몰랐다. 눈을 겨우 뜬 녀석을 데려다 키웠기에 천천히 걸어만 다녔지 그렇게 밖으로 뛰어나갈 일은 없었다. 하지만 조금 자라자 마구 뛰기 시작했도 문을 열면 총알같이 튀어 나갔다.


몇 번은 계단에서 잡아왔는데 한번은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간  녀석을 놓쳤다. 우리 가족은 저녁 상을 차려놓은 채로 새싹이를 찾으러 온 아파트를 돌아다녔다. 결국 찾지 못하고 들어와 저녁을 먹고나서 또 찾으러 나갔다. 그냥 포기하자는 아빠 말에 훌쩍이던 작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지하실을 샅샅이 훑다가 녀석을 찾았다. 아직 어린 녀석이라 덜덜 떨며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내가 잡으려고 하는데 도망도 안 가고 순순히 안겨왔다.


잠깐 사이에 흙과 먼지 범벅이 된 녀석을 난생처음으로 물로 씻기고, 놀란 녀석은 발톱으로 나를 할퀴어 깊게 상처를 냈다. 벌써 삼 년 전의 일인데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초조함과 당혹스러움을 우리 가족은 안다. 그래서 주인에게 얌전히 안겨 가는 고양이를 다행스런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많이 감사한 주인의 마음을 진심으로 느낀다.





우리집 고양이 새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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