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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22. 2019

나를 웃게 하는 고양이

고양이 집사가 되면 좋은 것

한낮이 되도록 누워있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이면 고양이는 내가 바라보이는 근처에 누워 있다. 그러다 내가 움직이는 기척이라도 내면 고개를 번쩍 들고 쳐다본다. 내가 일어나 앉으면 저도 몸을 일으켜 앉는다. 두 발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꼬리를 얌전히 앞발 위에 돌려 얹는다. 내 표정을 살피듯 인형처럼 가만히 나를 바라본다. 내가 다시 누워 녀석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녀석은 안심한 듯 다시 자리를 잡고 누워 눈을 스르륵 감는다. 그러다 내가 일어서면 다시 나를 주시하면서 눈을 크게 뜬다. 그런 녀석을 보고 있으면 나를 위로하려는 행동이 아닌 줄 알면서도 내 마음은 위안을 얻는다.


고양이에게는 고양이의 삶이 있다.
나는 가끔 돌아보면서 '귀여워!' 하며 한번 쓰다듬는 순간일 뿐이지만 녀석에게는 그것이 중요한 의미일 수도 있다. 기다리던  재미난 놀이일 수도 있다.
'애완'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예전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의 삶이 이제 '반려'라는 표현을 쓰면서 존중받고 있는 느낌이다. 내가 쳐다봐 줄 때 만을 기다리는 인형이 아닌데, 가끔 고양이의 삶이 내가 돌아볼 때만 돌아가는 것이라 착각하곤 하는 나를 반성한다.





고양이는 3년 전, 작은 아이의 학교에서 데려왔다. 학교 공사 차량에 실려 온 아기 고양이는 어미를 잃고 누군가의 보호를 기다린다고 했다. 벌레든 작은 동물이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무서워하는 내게 집에 람이 아닌 동물을 들이는 일은 천지개벽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아직 보지도 못한 그 고양이가 우리 집에 와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오길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 집에 온 고양이는 실제로 내가 기대했던 방향과는 조금 다르지만 나를 변화시킨 것만은 분명했다.


손가락만 한 젖병에 3시간에 한 번씩 먹이느라 새벽에도 일어나 분유를 탔다. 성장에 좋다는 분유와 영양식을 찾아 먹었다. 뒤늦게 아기를 키우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인지 마치 내 아이처럼 가족처럼 느끼게 되었다. 말 그대로 아깽이(아기 고양이) 시절 온 집안을 뛰어다니던 천방지축 녀석을 보면서 내 아이들에게도 좀 더 뛰어 놀 자유를 주었더라면 좋았을 걸 반성도 했다.  아이들과는 다른 무게로 나에게 체감되는 녀석은,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에는 알 수 없던 감정을 게 해 주었다. 내가 주는 것보다 녀석에게 받는 것이 더 많았다. 그리하여 나는 녀석 덕분에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컴퓨터 주인 없을 때 차지해 잠든 녀석



"우와앙~!"

여운이 길게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들이 방에서 컴퓨터 게임할 때면 녀석은 아이들의 컴퓨터 책상에 올라앉아 있다. 아이들이 집에 오면 거기에만 붙어 앉아 있으니 좋은 것이라 생각하는 걸까. 함께 놀고 싶은 마음인 걸까. 아이들이 움직이는 손을 따라다니며 깨물기도 하고 올라앉아 있던 컴퓨터 본체에서 전원 버튼을 눌러 꺼버리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아웅다웅하다가 급기야 방 밖으로 쫓겨 난다.


그러면 방 앞에 앉아 하염없이 문만 바라보다 애처롭게 울기 시작한다. 그래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문과 손잡이에 뛰어오르면서 발톱으로 긁어놓는다. 하는 양이 우스워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다시 내게 애원하는 눈빛이다. 고양이의 심리는 사람과 달라서 사람이 예측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던데. 지금 녀석의 심리는 무얼까. 알 수는 없지만 내게 웃음을 주는 녀석임에는 틀림없다.





이런저런 연말 모임에 참석한다고 피곤했던지 오늘도 나는 침대에 늦도록 누워 있다. 침대 발치에서 이불이 꿈틀꿈틀. 이불을 들춰보니 고양이. 집안 공기가  차가웠던지 내 이불속으로 들어와 편안하게 누워있다. 얼른 덮으라는 듯 나를 보는 녀석의 표정에 나는 다시 웃는다. 갈수록 웃을 일이 없는 나를 웃게 하는 녀석이 있어서 고맙다.



이불 다시 덮어라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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