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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May 04. 2020

딸기 상자 모종 다섯 개

자라나는 것들의 경이로움


이른바 딸기의 계절이다. 무심코 과일 가게 앞을 지나도 발길을 돌리게 하는 향기. 딸기는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라서 자주 사다 먹는다. 봄보다 먼저 시장에 딸기가 나오면 아이들 생각에 아직 비싼 딸기를 사곤 했다. 이제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 뭐든 잘 먹는 나이가 되니 애정이 조금 시들해지긴 했어도 여전히 딸기는 우리가 사랑하는 과일이다. 그렇게 봄이 다 가도록 우리는 딸기를 먹는다.


문제는 딸기를 담아 놓는 포장 용기다. 딸기는 주로 플라스틱 바구니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다. 한 번 쓰고 버릴 물건이라 살 때마다 망설이게 된다. 환경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다양해지는 요즘 특히 일회용 포장용기에 마음이 쓰인다. 시장이나 마트나 마찬가지다. 과일이나 채소, 육류까지도 소분한 것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두니 용기 빼고 달랠 수도 없고 난감해진다. 특히나 딸기같이 잘 무르는 과일은 단단한 용기가 필수인가 보다. 투명한 사각 용기에 담거나 붉은색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아 위까지 덮어 주거나. 처음에 그런 용기를 보았을 때는 누가 저런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했더랬다. 그러나 이제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생각이 들면 미안함과 죄책감이 함께 밀려온다(사실 환경오염의 주범은 플라스틱을 만들고 사용하는 인간이지만).


이번에 사 온 딸기는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있었다. 다른 때보다 싸게 팔기에 두 상자를 샀다. 작은 상자였고 워낙 딸기를 좋아하니 먹는 것은 문제가 아닌데 버려질 상자가 문제였다. 예전엔 스티로폼 상자의 사이즈가 컸는데 물가가 오르면서 과일을 담는 바구니나 상자의 크기는 작아졌다. 옛날에 엄마가 큰 과일 상자 하나 가득 사서 딸기잼을 만들었던 생각이 난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넣고 딸기를 씻어 끓이곤 했는데. 이젠 그렇게 수북하게 담아 놓은 딸기는 딸기가 출하되는 농장에서나 볼 수 있으려나.


딸기를 씻고 나서 상자를 버리려는데 너무 아까웠다. 두꺼운 스티로폼으로 만든 작은 상자 두 개. 어디 쓸데가 없을까? 오래전에 베란다에서 상추를 키웠던 생각이 났다. 베란다에 자리를 내서 상추를 심어야겠다!

 



상추 모종은 다섯 개 천 원이라고 했다. 가격을 듣고 내심 놀랐다. 그렇게 싸다고? 나는 심으려는 상자가 작아 많이도 필요 없는데. 청상추 하나, 겨자잎 하나, 그리고 적상추 세 개를 샀다.


상자를 채울 흙과 마사토는 합해서 이천오백 원. 상추값보다 흙 값이 더 들었다. 그래도 딸기 상자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과 직접 길러 먹는 상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좋았다.


딸기 상자에 드문드문 구멍을 낸 비닐을 깔고 마사토와 흙을 섞어 깔았다. 아무래도 흙의 높이가 너무 낮아 보인다. 그래도 상추 모종을 세 개, 두 개 상자에 올렸다. 얕게 깐 흙 위에 모종을 놓고 주변을 다시 흙으로 덮었다. 뿌리 부분이 볼록 올라왔다. 다 심고서 보여주었더니 남편이 말했다.


- 흙이 너무 얕아. 그리고 너무 가까이 심은 거 같은데.


이런 식물은 뿌리가 깊게 날 수 있어야 한단다. 노지에 심는 것들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으냐고. 그럼 진작 말했어야지. 도시에서 자란 나는 무슨 싹인지 알려줘야 안다. 모종을 사 오면서 겨자잎이라고 알려줘서 알았고, 내가 치커리냐고 물었던 것은 쑥갓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상추 뜯어먹을 생각만 하고 덜컥 일을 벌였다. 그러고 보니 흙도 그냥 분갈이 흙으로 사 왔다. 화분 분갈이할 때 쓰는 흙을 쓰면 되는 것인 줄 알고. 안 되는 걸까? 상추를 심으려면 흙도 화분도 신중하게 골랐어야 하는 거였나?


예전에 상추를 키웠던 일을 떠올렸다. 화분도 흙도 어떤 것으로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열심히 뜯어서 먹어도 상추가 자라는 속도를 우리가 먹는 속도로 따라가지 못해서 길쭉하게 줄기가 올라갔던 경험. 힘 있고 크게 자라다가 나중엔 얇고 작게 나와서 더 이상 먹지 못했던 기억. 이제야 생각났다. 그럼 이번 상추는 실패인 건가? 생각해도 이미 늦었다. 벌써 모종은 심었고 손은 털었다.




장미 같은 상추 모종


그래도 작고 앙증맞은 모종을 심어 놓고 보니 마음만은 뿌듯했다. 이제 막 피어나는 장미 같았다. 처음 며칠은 왜 이렇게 안 자라는지 안달이 났다. 흙이 얕아서 그런가? 물이 너무 적은 건 아니겠지? 뿌리는 내렸나? 매일 들여다보며 살폈다. 다른 잎들이 자라는 것은 잘 모르겠는데 가운데 제일 작은 이파리를 보면 안다. 심을 때 보일락 말락 하던 새 잎이 조금씩 올라오는 것이 보이자 안심이 되었다.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구나.


며칠 후 겨자잎에 구멍이 숭숭 났다. 처음 심을 때는 멀쩡한 이파리였는데. 잎 뒤쪽을 보니 벌레가 있었다. 벌레 붙은 녀석을 사 온 모양이다. 벌레가 많은 잎 하나를 떼어버렸다. 다행히 다음날부터 더 이상 구멍이 생기지는 않는다. 상추에도 옮겼으면 어쩌나 살펴봤다. 벌레는 겨자잎만 좋아하는 녀석인지 상추에는 옮아가지 않았나 보다.




모종 심고 일주일 후


일주일 후. 잘못되는 건 아닌지 내가 조바심 내는 동안 상추는 나름 열심히 자라고 있다. 매일 볼 때는 모르겠더니 사진을 찍어 비교하니 알겠다. 햇볕 양이 부족한지 적상추 색깔이 옅어 졌다. 잎이 옆으로 자라야 하는데 길게만 자라서 옆으로 벌어진다. 뿌리가 깊어야 위로 설 텐데 뿌리가 얕아서 그런가? 들여다볼 때마다 아쉽다. 미리 살피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꿋꿋이 작은 스티로폼 밭을 고수하고 있다. 머지않아 이 상자를 꽉 채운 상추를 기대하면서. 아이들도 엄마가 심은 상추를 뜯어 고기 싸 먹을 생각에 부풀었다.




그냥 버리기 아까운 스티로폼 상자를 활용해 보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다. 애초에 아주 잘할 것을 기대하지도 않았다. 다만 좁은 땅에 심어 놓은 미안함에 매일 살피고 관심을 가졌다. 그러자 올라오는 새순이 보였다. 소리 없이 자라나는 것의 경이로움이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보았던 새싹이 올라오는 순간의 환희였다. 우리 모두를 키우는 봄의 정령을 본 것 같다. 내가 심은 상추가 자라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니! 아주 천천히 자라는 다육이와 다르게 며칠 만에 쑥쑥 자라는 상추의 생장을 보고 있으면 신비롭고 놀랍다. 혹시나 잘 안되어도 실망하지 않는다. 다음엔 좀 더 넓고 깊은 땅을 마련해 다시 자라나는 것을 심어보고자 한다.


모종 사고 흙 사고 들여다 보고 물 주고. 이런 비용들을 굳이 따지자면 그 돈으로 상추를 몇 봉지 사 먹는 것이 경제적이다. 예전에 아버님이 작은 텃밭에서 농사 지으신다고 치렀던 모종 값이나 비료 값에 어머님은 그냥 사 먹는 게 싸게 먹힌다고 핀잔을 주셨다. 왠지 아버님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작은 딸기 상자에 심은 모종 다섯 개로 인해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마음의 풍성함을 얻는다. 그 작은 것들이 주는 기쁨과 환희는 씨앗처럼 오랫동안 내 마음밭에 남겨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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