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가장 가치있는 것은 건강이다. 누군가 그게 뭐야, 그런거 말고,라고 말한다 해도 지금 내게 '가장'이라고 묻는다면 그 이상의 것은 없다. 돈 100억을 줄테니 감옥에 3년 가 있으라는 제안에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내게는 돈보다 자유가 중요하다. 물론 당장은 그렇지만 오래 생각하면 달라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만약 그럼 건강하게 감옥에 살래, 건강하지 못하게 자유롭게 살래 묻는다면 그건 고민해봐야할 문제다.
엄마가 입원해 계시던 요양병원에는 거의가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우리 엄마는 꽤 젊은 축에 속했다. 처음에 엄마가 있던 병실은 중증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 여럿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침대에 누워만 있는 할머니도 있었다. 엄마를 보러 갈 때마다 그 할머니는 입을 벌리고 누운 채로 콧줄을 통해 죽을 받아 연명하고 있었다. 위장으로 바로 받는 죽을 먹는다고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중증 환자가 아닌가 싶은데 그저 미음죽을 위장으로 넣어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기만 하면 위험할 것이 없는 환자라는 뜻일 것이다. 어떤 다른 치료 없이 죽과 영양제로 연명하는 삶이었다. 당장 죽을 끊으면 죽음에 이를까. 문득 의식도 없이 저렇게 살아 있는 것을 본인은 원했을까 궁금했다. 건강할 때는 누구도 그러기를 원하지 않았으리라.
요양병원의 어떤 할아버지는 입원한지 5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간호사실 앞에 붙어 있는 현황판에 가장 오래 입원한 환자로 기록되어 내 눈길을 끈 그 할아버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했다. 스스로 걸어다니고 링거줄을 달고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건강해보이는 모습으로, 그렇게 오래 요양병원에 머무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이었을까 생각했었다. 그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아까와 같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을까. 적어도 할아버지는 전자에 속하지 않을까. 할머니의 경우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건강하지 못하게 감옥에 살고 있다. 하지만 어찌보면 죽음의 걱정없이 연명하며 육신에 갇혀 살고 있으니 전자의 경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본인의 선택이 아닐테지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라고 생각하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고민해보고 가족들에게 알리는 것도 중요하겠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년이 조금 더 지나 아빠도 돌아가셨다. 아빠는 심근경색으로 수술을 받은 후로 계속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갑작스레 암 진단을 받은 엄마가 먼저 돌아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나에게는 건강염려증이 생긴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몸 안에 어떤 병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불쑥불쑥 올라왔다. 덕분에 2년에 한 번 건강보험에서 하라는 건강검진을 꼬박꼬박 받는다. 거기다 엄마가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기에 대장 내시경도 빼놓지 않고 받는다. 나는 첫 대장 내시경에서 용종을 세 개나 떼어냈다. 그러고 나니 남편이 더 안달이 나서 나를 들볶았다. 은근슬쩍 귀찮은 검사를 2년 넘게 미루려는 나에게 빨리 내시경 예약하라고 다그치곤 한다.
주변에서는 건강검진을 빠뜨리지 않고 받는 나를 이상하게 여겼다. 자기는 병원이 무서워서 안간다면서 오히려 내게 뭔가 뻐기는 것 같은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었다. 자신의 건강을 장담할 수 있다는 뜻인가? 어떤 이는 그래도 젊은 사람인데 벌써 대장내시경까지 받느냐고 놀란다. 내 가족력까지 밝힐만한 사이는 아니라서 나는 그냥 입을 다물고 만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정말로 건강염려증 환자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건강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다거나 체중 조절을 위해 다이어트를 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천성이 게을러서 매일 꾸준한 운동같은 것은 언감생심이다.
올해는 내가 건강검진을 받는 해다. 매번 연말에서야 하다가 올해는 좀 서둘러 얼마 전 건강검진을 받았다. 기본 검진에 때로 이런저런 초음파 검사를 추가해서 받기도 하는데 이번엔 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결과를 보기 전이면 살짝 걱정스럽다. 이번엔 위 내시경에서 안 좋은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특별한 용종은 없었다. 용종은 없지만 혹시 몰라 조직 검사를 한다고 했다. 매번 내시경을 할 때마다 역류성 식도염으로 위장약을 받아 먹곤 했는데 이번엔 이런저런 세균과 염증이 있다고 했다. 당뇨는 커트라인, 고지혈증에, 철분 수치는 또 왜 이렇게 낮은지.
의사는 '철이 없네요. 없어도 너무 없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웃었다. 울수는 없으니까. 의사는 빈혈이 생기면 어지럽고, 머리 아프고 피곤하고 눕고만 싶고...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나 싶게 내 상태를 정확히 말해 주었다. 그런데 철분약은 위장에 무리를 준다고 했다. 위장약을 먹어야 하는데 철분약을 함께 먹어선 개선이 되지 않는다고. 우선 위장약과 고지혈증 약을 먹으면서 상태를 보자고 했다. 대신 음식으로 철분을 보충하려면 돼지고기나 소고기, 선지 등을 많이 먹으라고 했다. 고기는 너무 많이 먹어서 문제인 것 같은데.
사실 문진표에 매주 주량이 얼마냐는 답을 솔직히 적지 못했다. 매주 음주 횟수와 음주량을 적는 문진표를 한참 들여다 보고 있는 나에게 남편이 물었다.
"시험 봐?"
그럼, 시험이지. 어떻게 하면 잔소리를 덜 들을까하는 시험. 그래도 양심은 있는 거니까. 가족력을 적는 문항을 볼 때마다 고혈압, 당뇨, 심근경색, 암 등 굵직한 병들은 다 해당되는 내 자신이 참 민망했는데. 거기다 음주량을 솔직히 적으면 의사가 나를 한심하게 볼 것 같았다. 의사는 내 음주량은 모르고 운동량이 적다는 구박만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운동을 잘 못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음...게을러서..?"
나는 당당하게 말하고 또 웃었다. 건강염려증이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하고 염려만 한다. 하지만 역시나 내게 최고의 가치는 건강이다. 건강을 담보로 병원에 갇혀 여생을 보내지 않으려면 조금 부지런해져야겠다. 그래야 나의 자유롭고 건강한 삶을 지킬 수 있을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