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와 사십 대, 230과 250

마음이 자란다

by 세번째 삶

남편과 마트에 들렀다. 대형 마트에 가면 거의 사는 것만 사는 편이라 건성으로 둘러보았다. 가는 코너만 가고 아는 물건만 골랐다. 후딱 장을 보고 계산대 쪽으로 가는데 한편에 계절에 맞춰 나온 어그 부츠가 보였다. 나는 별생각 없었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겐 이렇게 낮은 털신발이 편하고 좋다며 한번 신어보라고 남편이 부추긴다. 며칠 전 굽이 있는 부츠를 신고 나갔다 양쪽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던 터라 나는 못 이기는 척 신발을 신어 본다. 240을 꺼냈다.


- 너무 작은데.

- 245?

- 이것도 작아. 250 줘 봐. 이것도 좀 꽉 끼는 기분인데.

- 여기 있는 건 250이 젤 큰 건데?

- 뭐야 어린이 신발 아니야? 검은색은 없어?

- 검은색은 없나 본데. 갈색이랑 회색이랑 청색.


남편과 한참을 색상과 사이즈 별로 꺼냈다 넣었다 하다가 결국 250 갈색 부츠를 골랐다. 털이 있는 신발이라 꽉 찬 느낌. 어느새 나는 250이 편해진 나이다.







230.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내 발 사이즈는 230이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럴 리 없으니 '내가 기억하는' 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날이 언제쯤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신발을 사 신을 수 있을 때쯤이니 스무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길을 가다가 마음에 꼭 드는 앵클 부츠를 발견했다. 세무 같은 재질에 발목에 가죽으로 된 검은색 줄이 달려 자연스레 주름이 잡혀 있었다. 값도 싸고 이미 맘에도 들었지만 사이즈는 230 뿐이라고 했다. 그때 내 신발 사이즈는 230이었다. 마침 내 발에 꼭 맞는 230만 있다니 다행이었다. 신어보니 왠지 좀 작은 듯했다. 하나 더 큰 사이즈가 있었더라면 망설이지 않고 그것으로 골랐을까. 포기해야 하나 고민하는 마음에 사야 할 이유가 떠올랐다.

학교 다닐 때부터 나는 키에 비해 발이 작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실내화 신은 발이 너무 작아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그것이 나름의 콤플렉스가 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더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어야지 하는 융통성 같은 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한편으로 작은 발을 자랑스레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전족처럼, 난 너희와는 달라, 하는 허영심. 그러니까 나는 작은 발을 감추거나 부끄워하지 않을 거야, 하는 자존심. 그리고 하나뿐이라는 사실에 발목이 잡혀서 신던 사이즈니 좀 작은 듯해도 괜찮겠지, 애써 내 마음에 변명까지 하며 놓칠세라 그 신발을 사가지고 집으로 신나게 왔다. 싸고 예쁜 신발을 얻었다고 뿌듯해하며.

하지만 마음과 달리 그 신발을 신고 나갈 때마다 발이 너무 불편했다. 알고 보니 나의 가장 긴 두 번째 발가락이 굽혀져서 신어졌던 것인데 그걸 잘 맞는 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놓치기 싫어 우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몇 번 신지도 못하고 그 신발은 몇 년간 신발장에 묵혀두었다가 버렸다. 나는 나이니 신체 치수 같은 것에 늘 흐릿하게 살았다. 내가 몇 살인지 묻는 물음에 태어난 해로부터 덧셈 뺄셈을 해야 답할 수 있었고 속옷 사러 가서 묻는 사이즈에 늘 난감해했다. 키를 물으면 상대가 예측해서 묻는 치수에 그냥 그렇다고 답했으며 신발도 그러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나는 내 발의 사이즈가 235라는 것만큼은 각성하게 되었다.

그런 기억이 무색하게 요즘 나는 신발을 사러 가면 으레 껏 245를 신어 본다. 그러고 나서 너무 크다 싶으면 240을 신어 본다. 예전에 엄마가 나이 들면서 점점 신발을 크게 신는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의 250 사이즈 구두가 내 발에 너무 커서 엄마 발은 왜 이렇게 크냐고 물었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245를 신는다. 아니 가끔 250이 편하다. 어느덧 그때 엄마의 나이가 되어 신발 치수도 그리된 것이다. 나이가 마흔쯤 되어갈 무렵에야 내가 이제는 스물일곱이 아니라 마흔이라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듯이 내 신발 사이즈는 이제 230이 아니라 250이라는 걸 깨닫고 놀란다.








오늘, 큰 아이가 신던 운동화를 신었다. 사이즈 250이었다. 신고 나오는데 왠지 헐렁하고 어색하지만 몇 걸음 걷다 보니 너무나 편안하다. 아이들이 신발을 고를 때면 매번 꽤 큰 걸 고르는 것 같아 많이 크면 벗겨진다고 만류하곤 했다. 그런데 사이즈가 큰 신발을 신고 걷는 기분이 이런 거였나. 남자아이가 신던 신발이라 발볼이 적당히 늘어나 있어서이기도 하리라. 앙증맞게 작은 신발을 신던 아이들이 이제 훌쩍 자라서 나보다 큰 사이즈의 신발을 신는다. 아이의 발이 자라 신발이 작아진 줄 모르고 여행하며 오래 걸어서 아이의 엄지발가락에 시커멓게 멍이 들게 했던 신발. 내 생각만 하느라 아이의 고통에 세심하지 못했던 내게 반성 좀 하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작은 아이는 제 스타일이 아니라고 안 신는 신발을 차마 버리기 아까워 신고 나섰다가 오히려 커다란 신발을 신고 걷는 것이 이렇게 홀가분하고 편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왜 그동안 나는 230에 갇혀 그렇게 답답하게 살 줄만 알았을까. 세상에 안 되는 것들이 너무 많은 나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큰 신발을 신으면 안 된다고,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는데. 늘어난 나이만큼 신발 사이즈도, 내 마음도 조금은 커졌으리라 믿는다. 그랬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