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리번거려도 괜찮아

목표 없이 살기

by 세번째 삶

단체에서 가까운 소도시로 MT를 갔다. 내가 활동한 이후로 처음이다. 우리는 워크숍이니만큼 내년도 활동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끝내고 나니 오후 8시. 저녁을 먹기엔 좀 늦은 시간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먹을 수 있으려니 나섰다. 우리가 묵는 호텔에서 추천한 횟집은 아직 영업 중이라 했다. 걸어서 이십 분 정도.

저녁 산책 겸 걸어가 보자고 했다. 가야 할 곳은 정했고, 지도를 보며 우리를 이끄는 사람이 있었기에 주변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주의 깊게 보지 않고 우리는 삼삼오오 얘기에 집중하며 걸었다.


큰길을 따라 한참을 걷다가 골목으로 찾아 들어간 식당. 사장님이 오늘은 영업 끝이라고 한다. 아까 전화로 영업시간 묻지 않았느냐 했더니 확실히 예약한다는 말이 없어서 이미 마감을 했단다. 우리는 걸어온 거리도 그렇고 더 늦어진 시간도 그래서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랴. 뒤돌아 방금 온 길을 거슬러 걸었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라면 이 시간은 저녁 모임이 한참 무르익을 시간인데. 식당 문을 일찍 닫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도 그랬다. 그러고 보니 걸으며 지나 온 가게들은 거의 다 불이 꺼져 있었다. 앞만 보고 가느라 다른 가능성 같은 것은 간과하고 말았다. 근처의 식당을 검색하다가 이제는 시간이 늦어 영업하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호텔로 가는 길에 적당한 곳이 있으면 밥을 먹기로 했다.


되돌아 걷는 길은 아까보다 멀게 느껴졌다.

배가 고파서였을까. 주변을 두리번거려서였을까.

가도 가도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그렇게 호텔에 거의 다 왔을 때 건너편에 아직도 문을 열고 있는 커다란 횟집이 보였다.

아까는 왜 이곳이 보이지 않았을까? 바로 앞에 있는데.

우리는 파랑새를 찾아온 숲을 헤매다 집에 돌아오니 파랑새가 있었다는 얘기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목표를 생각하며 그것만 바라보고 가다 보니 주변을 볼 틈이 없었다. 돌아볼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목표가 사라지고 어딜로 가야 할지 몰라 여기저기 기웃대다 보니 그제야 주변이 보인 것이다. 가까운 곳에 내가 찾는 것이 있음을 안 것이다.






올해 나는 아무 목표도 없었다.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 목표였달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어떻게 해보자는 마음조차 없었다. 말 그대로 무(無)의 상태였다. 누군가는 안식년이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내게는 더 다양한 기회를 주었다. 이제껏 내가 보지 못했던 출구들이 보였다.

내가 찾아낸 것일까? 아니다.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두리번거렸을 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내 앞에 난 길을 걸었다.


com.daumkakao.android.brunchapp_20191222121716_0_crop.jpeg 운명 카드


타로 운명 카드처럼 내 앞에 문이 열렸다. 내 노력에 의해 열린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열린 문 앞에 내가 서 있었다. 눈여겨 보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지나쳤을 것이다. 열린 문을 향해 살며시 발을 디뎌 보았다. 공동체에 들어가길 꺼리면서도 낯섦에 대한 무모함으로 용기 냈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쉬지 않고 걸어서 어느새 12월.

어느 해보다 많은 것을 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의 성취다. 손에 잡히거나 보이는 결실은 아니지만 '나'를 이만큼 세상 속으로 끌어올린 것만도 커다란 성과다. 그게 아니라면 나는 한 해 동안 내 속에 침잠하여 다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보니 여기에 내가 찾던 파랑새가 있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내가 보지 못한 길, 갈 수 없던 길이 있었음을 아는 것, 혹은 포기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걸 안 것이 큰 수확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확실한 목표를 가졌을 때 쉽게 지쳤다. 올해는 그런 힘을 빼고 걸어서 더 편했을 것이다.


내년에는, 더 많이 두리번거리자. 빠른 길만 찾지 말고, 가지 않았던 길로 돌아가면서. 다만 여기를 떠나는 것이 목적이듯. 내가 찾지 못하고 지나친 출구가 있는지 천천히 더듬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