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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이 자랐거든요

by 세번째 삶

- 저는 아버지없이 자랐거든요

너무나 스스럼없이 흘러나온 말이라 오히려 듣는 우리들이 눈치를 보게 되었다.

자신의 아이를 대하고 돌보는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나온 말이지만 나는 순간 흡,하고 숨을 멈추었던 것 같다.

은연 중에 우리들의 어색함을 느꼈는지 해맑게 괜찮다던 그의 말이 함께 나누었던 그 어떤 얘기보다 길게 남았다.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좀 더 솔직하자면 아빠라는 존재를 싫어했던 나는 그의 말로 인해 이제껏 한 적 없던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가 없는 것이 나았을까.
차라리 없는 편이 나았을까.

이제와 말하려니 그런건지 그렇게까지 가혹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그럴 정도는 아니었다, 고 믿고 싶다.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이 내내 앙금처럼 남아 있었는데 요즘 기사에 보이는 인면수심의 아버지들에 비하면 그저 무능력했고 오로지 자신 밖에 몰랐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고,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으리라고.

어버이날이라고 특별히 무슨 애틋함이 생긴 것은 아닌데.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때문에 5월은 더 힘들다고 매년 들려오는 얘기에 나는 이제 그리 걱정할 일이 없다는데 생각이 미쳤기 때문일까.
엄마 생신은 4월 초파일과 가까워서 올해는 어버이날과 겹쳐졌다.
엄마 산소에라도 다녀올까, 하는데 아빠도 엄마 옆에 계신데 늘 엄마 산소라고 말하는 나를 발견한다.

없는 것이 나은 엄마아버지도 세상에 많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은 부모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새삼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말 할 수는 없지만 이제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용서할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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