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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저 닦기

바보야, 그렇게 닦으면 다 닳아!

by 세번째 삶

우리 집엔 은수저가 네 벌 있다. 결혼 전에 남편이 쓰던 것 하나와 결혼할 때 사온 우리 부부 것 두 벌, 그리고 엄마가 큰 아이 낳았을 때 사주신 것 하나. 작은 아이 낳았을 때도 사주신다는 걸 요즘 누가 은수저를 쓰냐며 사지 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냥 하나 사 달라고 할 걸 싶다. 어린이 수저라서 이제 쓰지는 않지만 할머니가 사 준 자기 몫이 없다는 것을 알면 서운 할까 봐. 엄마도 그런 말씀을 했는데. 그땐 이렇게 빨리 엄마가 우리 곁을 떠날 거라곤 상상도 못 했으니까.


은수저는 신혼 때 잠깐 쓰다가 하루만 둬도 까맣게 변해버리는 것이 닦기 귀찮아 어디 구석에 넣어버렸다. 한참 뒤 아이들이 자라서 어린이용 수저 쓸 때를 지나서야 서랍에서 아이의 은수저 상자를 발견했다. 이제라도 써볼까 하고 나머지 은수저까지 꺼냈다.


아이들은 은 숟가락에서 쇠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다. 은 젓가락은 우리가 쓰던 것보다 무겁고 가늘어 불편했다. 환영받지 못한 은수저는 다시 수저통 붙박이 신세가 되어 시커멓게 변했다. 설거지를 안 해 수저가 없을 때조차 까맣게 변한 은수저는 뒤로 밀린다. 그러다 내 눈에 띄면, 내 맘이 내키면 한 번씩 닦는다. 깨끗이 닦은 기념으로 상에 올리지만 그때 한 번뿐, 다시 반복.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려는데 싱크대 구석구석 묵은 때가 보인다. 그릇 씻는 것만 겨우 하다 보니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에 뽀얀 먼지와 까만곰팡이까지. 손 대면 일이 커질까 미뤄왔던 청소를 새해맞이 핑계로 해 볼까. 팔을 걷고 보이는 대로 다 꺼내어 닦으려는데 시커먼 은 숟가락이 보인다. 나랑 눈이 마주쳤으니 너도 오늘은 목욕을 좀 해야겠어.


은수저는 3M 초록색 수세미로 닦으면 금방 제 빛깔을 찾는다. 수세미에 묻힌 세제에서 난 하얀 거품은 금방 까만 거품이 된다. 은수저의 시커멓던 얼굴이 쉽게 벗겨져 반짝반짝하다. 은수저는 언제 내가 까맸었나는 듯 환한 빛을 내뿜는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은수저가 아빠 것뿐이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 은수저가 까맣게 변할세라 매일 힘들여 닦았다. 행여 계란찜에 숟가락을 넣어서 수저가 까맣게 된 날이면 엄마는 치약을 짜서 마른행주로 그 까만 때를 벗겨 내곤 했다. 나는 은수저가 계란에 닿으면 까맣게 된다는 것에 놀랐고 그럼에도 계란 반찬에 스스럼없이 은 숟가락을 넣는 아빠를 보고 놀랐다.


계란국이나 계란찜을 하는 날에는 아빠가 은수저 말고 다른 수저를 쓰면 안 되나 하는 생각도 했다. 왜 엄마는 계란 반찬이 있을 때 다른 수저를 상에 놓지 않을까? 아빠가 반대했던 걸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러 번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온갖 짐들을 거의 다 버리면서도 아빠의 은수저는 건재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아빠 돌아가실 때까지도 썼지 싶다.


결혼한 뒤 시댁에서 반짝반짝한 은수저를 보고 놀랐다. 어머님도 아버님의 숟가락은 은수저를 쓰셨는데 늘 하얀 빛깔이었다. 내가 결혼할 때 사 온 것은 사용하지 않으시고 쓰던 걸 쓰셨는데도 새 것 같았다. 우리 집 은수저는 늘 시커멓게 변해서 식초 넣은 물에 삶아도 보고 치약으로 닦아도 보았지만 완전히 새 것 같은 색은 안되던데. 검은 얼룩 같은 것이 남아서 한참을 열심히 문지르다가 화가 나서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많았는데.


어머님께 어떻게 이런 광이 나게 닦으시냐고 물었다. 3M 초록색 수세미로 닦으면 금방 닦인다고 했다. 어머님은 그 수세미를 애용하셨는데 모든 걸 그 수세미로 닦다 보니 플라스틱 그릇까지 박박 닦아서 모두 긁혀 있기 일쑤였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엿본 듯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커먼 은수저를 닦느라 고생한 엄마에게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양 알려드렸다. 은수저를 닦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었다고. 엄마는 싱겁게도 이미 알고 계셨다고 했다. 알고 있었다고? 근데 왜 그동안 그렇게 힘들게 닦은 거야? 엄마는 이렇게 답하셨다.


바보야, 그렇게 닦으면 다 닳아!

나는 순간 힘이 빠졌다. 엄마는 은수저가 긁혀서 닳을까 봐 여태 치약으로 팔이 빠지게 닦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의 말씀에는 대부분 그렇지, 아무렴, 하고 토를 달지 않고 살았지만 나는 곧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숟가락 닳을까 봐 그래? 수세미에 긁혀서 은이 닳을까 봐? 얼마나 쓰려고? 백 년쯤 쓰려고? 아무리 닦아도 그 은수저가 엄마 아빠보다 오래 남을지도 몰라. 그거 안 닳게 써서 뭐 할 건데? 만날 팔 아프다면서 그깟 은수저가 더 중요해? 난 그냥 편하게 쓸 수 있을 때까지만 쓸 거야. 팔 아프게 안 닦을 거야.


이런 생각을 어디까지 엄마에게 말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는 그러려니 하고서 이제와 드는 생각일 수도 있다.




오랜만에 까만 거품을 내며 은수저를 닦는 동안 엄마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엄마에게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살았느냐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리라. 아마 앞으로도 오랫동안 은수저를 닦을 때마다 수저를 치약으로 닦던 엄마가 생각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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