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외모에 관심이 많던 동생이 물었다. 엄마는 젊었을 땐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 생겼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외꺼풀 작은 눈의 우리를 위로하려는 말로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마흔이 넘을 무렵 내게 쌍꺼풀이 생겼다. 쌍꺼풀이라기보단 눈꺼풀이 늘어져서 생긴 주름에 가깝다. 처음 몇 년간은 화장하면서 아이라인을 그릴 때 기분이 좋았다. 쌍꺼풀이 생겨 왠지 커 보이는 눈이 맘에 들었다. 몇 년 뒤면 엄마의 쌍꺼풀을 샘내 하던 동생에게도 쌍꺼풀이 생길지 모른다.
문득 엄마의 옛 사진이 궁금해 엄마의 앨범 사진을 보내 달라고 했다. 오빠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잊고 있던 기억이 새록새록. 사진 속에 내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대부분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할머니와 소풍, 외삼촌네와 나들이, 우리 가족의 여름휴가. 카메라 앞에서 어색하게 웃음 짓는 나와 오빠가 있었다.
사진 속에 낯선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공단 한복을 입고 머리는 정수리 위로 불룩하게 틀어 올린 젊은 엄마의 증명사진. 나뭇잎 모양으로 멋들어지게 잘라 인화한 흑백 사진이었다. 내 기억 속의 엄마와 다른, 오히려 나와 더 비슷한 엄마의 얼굴. 턱이 날렵하고 외꺼풀의 눈을 가진 엄마였다. 엄마는 곧잘 당신은 사각 턱인데 나는 엄마와 달리 갸름한 얼굴이라고 말하곤 했다. 인제 보니 나는 엄마와 많이 닮았다. 이제껏 엄마와 생김새가 많이 다른 줄 알았는데.
젊은 엄마의 모습은 내 젊을 때 같고 지금 내 모습은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다. 달걀형에 브이라인인 줄 알았던 내 얼굴에서 어느새 턱선은 사라졌고 쌍꺼풀은 늘어지고 앞니는 자꾸만 도드라지게 나온다. 언젠가 오랜만에 만난 이모들이 날 보고 점점 엄마를 닮아간다고 하더니. 빛바랜 앨범 속에서 발견한 젊은 엄마의 모습에는 내가 들어있다. 엄마는 좋아하고 나는 싫어했던 내 젊은 날 같은 엄마가 사진 속에 있었다.
엄마는 내가 가진 것들이 부럽다고 했다. 손가락이 가늘어서, 배가 안 나와서, 머리카락이 많아서, 발이 작아서 좋겠다고. 엄마도 처녀 적엔 날씬했다고 농담처럼 덧붙이며. 나는 고슴도치 자식 사랑이라 생각해 엄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들어 넘겼다. 엄마가 부러워한 건 내가 아니라 지나간 젊음이었나 보다. 엄마가 젊었을 때 엄마도 갖고 있었던 것들. 갖고 있었지만 살아가는 일에 묻혀 잊어버린 것들. 손에 쥔 걸 미처 깨닫기도 전에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것들.
엄마가 지금 내 나이인 오십 무렵일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아직 세상 무서운 줄도 모르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감도 잡지 못했을 때였고 나 살기 바빠서 엄마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다. 한때 ‘아직은 마흔아홉’이라는 TV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주인공에 지극히 공감하는 엄마를 나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이제 와 엄마의 말들을 이해한다. 그때 내가 갖고 있던 게 젊음이었다는 걸 나도 몰랐으니까. 엄마처럼. 엄마의 젊은 시절 사진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서야 비로소 흘러가 버린 걸 알게 되었으니까.
나는 이제 푸근한 몸집이 되었다. 뱃살은 처지고 손가락은 굵어졌다. 발은 두 사이즈나 늘었고 자꾸만 비어 가는 머리카락이 거슬린다. 엄마처럼 앉았다 일어날 때 나도 모르게 끙 소리를 내고 어깨와 무릎이 아프다는 말을 달고 산다. 이제껏 몸무게나 체형에 신경 쓰지 않고 살던 나도 정신 차려보니 몸이 불어나고 배가 나온 여느 중년의 여자가 되어 있었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고 하자 남편은 이미 알고 있었단다. 어찌 알았냐니까 옛말에 장모님의 모습을 보면 아내의 장래를 알 수 있다고 했다나. 딸은 엄마를 닮아간다고. 남편은 무슨 진리라도 발견한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반박할 말이 없네. 흠.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날마다 엄마와 닮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