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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사람

엄마와 나는 어떤 사이였을까

by 세번째 삶

옆자리에 앉은 여자의 통화 소리가 들린다. 전철 안에는 마스크는 꼭 쓰고 통화는 작은 소리로 간단히 하라는 안내 방송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무슨 통화를 저렇게 길게 하나 싶을 때쯤이었다.


- 응, 엄마. 이따 카톡 할게.


이제껏 조곤조곤 실컷 얘기해 놓고 또 카톡이라니. 남의 사생활에 괜한 어깃장을 부려본다. 나는 엄마와 저렇게 다정한 대화를 해 본 적 있었나. 엄마에게 전화해서 별거 없이 사는 얘기, 하나 마나 한 얘기를 한 기억이 없다. 어디에든 말해야 살겠다 싶을 때 전화해 엄마 얘기는 안 듣고 내가 하고 싶은 말만을 쏟아냈다.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용무 없이 전화벨을 울리지 않았다. 엄마가 항암치료를 받던 기간 동안 어쩌다 안부 물으려 전화를 하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대충 얼버무리다 전화를 끊었다. 응, 엄마. 밥 먹었어? 아프진 않고? 병원에는 또 언제 가? 따위의 말들. 엄마가 요양병원에 입원한 후에야 나는 엄마에게 매일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 엄마는 휴대폰 들고 통화할 힘이 없다고 했고 나는 매일 전화하기를 멈췄다.

당시는 휴대폰으로 문자 보내기가 지금처럼 익숙하지 않던 때라 문자도 안 하긴 매한가지였다. 기껏해야 아이들 사진을 엄마에게 전송해 줄 뿐이었다. 병원에서 엄마는 작은 휴대폰에 저장된 몇 장 안 되는 아이들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엄마도 지금 살아계셨더라면 나와 카톡을 주고받았겠지. 이젠 카톡 메신저로 사진 말고 예쁜 영상도 목소리도 보낼 수 있는데.




나는 엄마와 어떤 사이였을까. 친한 사이? 서먹한 사이? 냉정한 사이? 엄마와의 온도를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에 나는 엄마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게 무엇이든 가장 첫 번째는 오빠였던 것에, 그다음은 나이 어린 동생의 몫이었고 내 순서는 마지막이거나 없다는 것에 늘 화가 나 있었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덕선에게 빠져들었던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극 중 덕선처럼 속 깊고 다정한 딸은 아니었지만.

집안 어디에도 나를 위한 건 없었다. 옷장도, 책상도, 방도, 카세트 레코더도, 컴퓨터도, 새것은 거의 오빠 몫이었다. 여성용으로 구분되는 게 아니면. 삼 남매 중 둘째는 웬만해서 가족 안에 존재감이 없다. 덕분에 승부욕이 넘치기도 한다지만 나는 불행히도 가족 안에서 품은 분노를 승화시켜 긍정적 결과를 끌어오지는 못했다. 다만 차갑게 대하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했다. 내 엄마는 아니고 오빠와 동생의 엄마라고 생각하며 남처럼 굴었다. 아빠에게 무시당하면서도 매일 아빠의 은수저를 닦는 엄마처럼은 안 살겠다고, 나조차 엄마를 무시했다.

내가 고3 때 아빠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해 있는 동안 엄마는 병간호에 바빴다. 나는 혼자 입시상담을 하고 대학 원서를 썼다. 오빠 고3 때는 몇 번이나 선생님을 만났다면서. 그게 엄마 탓도 아닌데 나는 그게 내내 서운했다.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다. 대학을 다니는 동안에도 부모님 덕분에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고마운 마음 같은 건 없었다. 성적장학금도 내 힘으로 탔고 아르바이트해서 용돈을 벌었다. 여태껏 혼자 알아서 이만큼 큰 줄 아니? 엄마가 화나서 나에게 소리쳤듯이 정말 그랬다.

도망치듯 부모님을 떠나 결혼한 뒤에는 엄마와 미지근한 사이가 되었다. 내 삶에서 엄마의 존재는 희미해졌고 확실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엄마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게 엄마가 필요할 땐 따뜻했다가 원망할 대상이 필요할 땐 얼어붙었다. 따뜻함과 차가움의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엄마는 투병을 시작했다. 그 뒤론 차가움보단 따뜻함에 가까웠다. 전의를 품을 일도 없었다. 한 인간에 대한 동정이었거나 아픈 엄마를 곁에서 바라보는 방관자로서, 뜨뜻미지근한 채로.




나는 엄마에 대해 한 번도 뜨겁지 못했다. 내 엄마를 향한 뜨거운 마음. 뜨거운 감사, 뜨거운 사랑 같은. 받는 건 당연했고 못 받은 것만 계산하고 기억했다. 뜨거움은커녕 따뜻함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한 번 안아보자 하고서도 엄마 등에 두른 어색한 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듯이. 엄마가 돌아가신 뒤에 뜨거운 눈물을 쏟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마음을 쓰지 않았나 알았다. 내게도 엄마를 향한 뜨거움이 있었는데. 닳아 없어질 마음도 아닌 걸. 아낀 게 아니라 몰랐다. 원망으로 묶어 가둬 둔 마음을 여는 방법을. 가족 안에서 마음을, 온도를 나누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얼음 같다고 했다. 처음 만나는 이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어렵게 만드는 냉정함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은근히 그런 말을 즐겼다. 거기서 내 존재감을 찾기도 했다. 뭔가 당신들과 나는 다르다는 걸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그런 얘기를 엄마에게 지나가는 말로 했다. 엄마는 나를 얼음공주라고 불렀다. 내 말을 오해했던 걸까.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도 그런 말을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몇 번의 반복된 상황. 나는 끝내 엄마에게 화를 냈다. 진심으로 화가 난 나에게 엄마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엄마도 내가 진짜로 차가운 줄 알았구나. 얼음공주가 되고 싶은 줄 알았구나. 사실은 엄마와 마음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고 싶었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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