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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손뜨개

by 세번째 삶

몇 년간 신생아 모자 뜨기에 동참했다. 한 단체에서 하는 신생아 모자 뜨기 캠페인에 참여해 가을쯤 시작하고 겨울에 모자를 보낸다. 일정 기간 동안 신생아 모자를 뜨는 키트를 파는데 작년 가을엔 깜박하고 시기를 놓쳤다. 한동안 뜨개를 놓아버려서였을까. 그러고 보니 작년엔 손뜨개 꾸러미를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손뜨개를 생각하면 늘 엄마와 함께 떠오르곤 했는데. 몇 년 전 썼던 글을 뒤적이다 이런 글을 발견했다.




작은 아이의 학교 교육과정 중에는 코바늘 뜨기가 들어있다.
아이들 25명을 선생님 한 분이 가르치기는 힘에 부쳐 각 반의 엄마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뜨개 교육을 하는 동안 엄마들이 여러 명 교실에 와서 보조 교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시간이 안되어 보조교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첫 시간. 아이가 작은 실타래와 코바늘을 받아 집으로 가져왔다. 나에게 시작을 어찌하는 것인지 물었다. 나는 예전 코바늘 뜨기 했던 기억을 더듬어 설명하다 아이에게 물었다.


나: 엄마도 너희 반 교실에 가서 가르쳐줄까?


작은 아이: 엄마 코바늘 뜨기도 할 수 있어?


큰 아이: 그럼~ 엄마는 코바늘 뜨기의 고수지~


나: 고수까지는 아니고... 외할머니가 진짜 고수셨지.


큰 아이: 맞아... 외할머니가 우리 목도리도 떠 주셨는데.


나: 그러게. 너희들 조끼도 떠 주시고. 외할머니가 계셨더라면 이번에 정말 잘 가르쳐주셨을 텐데.


큰 아이: 응.... 갑자기 슬퍼진다.




코바늘과 실타래를 앞에 두고 외할머니를 추억한다.


이제 안 계시다는 걸 불쑥불쑥 깨닫는다.


눈물 꾹.





(2015년 7월 7일)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 엄마가 뜨던 목도리를 내게 건네주셨다. 엄마가 갖고 있던 실로 그냥 떴노라고. 조금만 더 뜨면 아이들 목도리로는 쓸 수 있을 거라고. 실은 조금밖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엄마는 마무리를 짓지 못하셨다.


하지만 그 털실은 아이들이 목도리로 쓰기엔 좀 거칠었다. 엄마가 오래전부터 갖고 있던 실이라서. 요즘에 나오는 실은 포근하고 아이들 피부에 자극이 가지 않는 좋은 실이 얼마든지 있는데. 어쩌면 엄마가 갖고 있던 어떤 스웨터를 푼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마무리 지어 아이들에게 해주라고 하셨지만 나는 아직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엄마가 뜨던 그대로 어느 가방에 고이 넣어 두었다. 뜨지 못해서가 아니고 나는 그걸 이어서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그 목도리는 할 수가 없다. 아직 미완인 채로 남겨진 그 목도리는 어느 날엔가 꺼내져 어떻게든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으려나.


엄마는 이것저것 만드는 손재주가 훌륭하셨다. 그 덕인지 나도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했다. 잘 만들기도 했다. 손이 여물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걸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그로 인해 엄마는 당신의 삶이 고달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신의 딸도 그럴까 봐, 내가 뜨개질하거나 수놓는 취미 갖는 걸 탐탁지 않아하셨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까지만 해도 나는 뜨개질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내게 맡긴 뜨다 만 목도리를 받고서도 나는 뜨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뜨개를 다시 손에 들었다.



엄마가 뜨던 스웨터나 조끼가 아닌, 별 것도 아닌 작은 소품들을 떴다. 그러면서 엄마를 떠올렸다.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을 엄마의 마음을 떠올렸다. 그러므로 나도 그게 좋으면서도 싫었다. 그래도 엄마를 떠올리며 할 것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올 가을엔 잊지 말고 신생아 모자 뜨기에 참여해야겠다. 엄마가 물려주신 재주를 좋은 일에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그 일이 조금 더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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