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삶이 고달플 때도 늘 화초를 키웠다. 형편이 어려워져 지하 전세방을 전전할 때도 한두 개의 화분은 꼭 갖고 다녔다. 그때는 집도 좁고 불편한데 왜 굳이 화분을 버리지 않고 갖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엄마의 마지막 취향이 아니었을까. 가족을 위해 엄마의 삶을 희생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걸 포기하고 사는 동안 단 하나 엄마를 위해 갖고 있던. 그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마지막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우리 가족이었을 거라 함부로 짐작하지 않는다. 나를 받쳐주는 힘이 가족이라 말하지 않는대서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엄마가 사랑했던 것, 엄마가 좋아하는 것 중에서 골라 가질 수 있는 게 바로 화초였으리라.
엄마가 마지막으로 살던 집에도 커다란 행운목이 있었다. 오랜 전셋집 생활을 접고 엄마 이름으로 집을 살 때 엄마는 무척 기뻐했다. 작은 집이었고 대출금도 많았다. 그래도 엄마는 그 집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거기서 키우던 행운목은 엄마의 행복한 마음과 함께 무럭무럭 자랐고 내 어깨만큼 긴 잎을 뻗어 올렸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요양병원을 알아보면서 엄마는 집을 팔아야겠다고 했다. 비좁은 전셋집으로 이사하면서도 행운목을 가져갔다. 거실이랄 것도 없는 작은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행운목.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잎을 흔들었다. 차마 버리지 못해 가져온 커다란 화분을 바라볼 때 엄마 마음은 어땠을까.
우리집에는 화분이 없었다. 워낙 식물 키우기와 인연이 없는 내가 초보용 허브 기르기에 몇 번 실패한 끝에 아예 포기해버린 탓이다. 어느 날 엄마는 작은 행운목을 가져왔다. 행운목을 키우면 행운이 온다면서, 이름부터 행운목이 아니냐며 잘 키워보라고 했다.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마지못해 받아놓은 행운목은 엄마의 말대로 행운을 가져왔는지 쑥쑥 잘 자랐고 내게 화초 키울 용기를 주었다.
나는 하나둘씩 작은 다육식물을 늘려갔다. 그때부터 엄마의 취향이 나에게로 전해진 걸까. 잘 자라는 화초도 있었고 금방 죽는 경우도 있었지만 화분이 없으면 허전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꽃을 좋아하고 꽃무늬를 선호하는데 그조차 엄마의 영향이었나. 꽃을 좋아하는 엄마가 촌스러운 꽃무늬를 고르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엄마는 엄마의 취향을 알고 있었을까. 나는 내 취향을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서 선택하는 건 아직도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것 중에 끄트머리만 고를 게 아니라 가장 첫 번째부터 실현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