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글을 쓰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얼마 전 나에게도 버킷리스트가 생겼다는 걸 떠오르는 대로 글로 풀어내다가 쓰면서 알았다. 거창하진 않아도 소소하게 이룰 수 있는 것들. 그중 하나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 마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냈다고 해도 금방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배우의 차기 공연 소식을 들었다. 기간이 어느 정도 남았다고는 해도 쉴 새 없이 일하는 그의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좋기도 했다. 그럼 나는 느긋하게 그날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건가. 내 아들 일인 것처럼 대견하고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런데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가고 싶다는 오래 묵힌 마음과 달리 공연을 보러 갈 때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예매는 물론 해야겠지? 근데 공연장에 가서는 뭘 어떻게 하는 건가? 프로그램북은 어떻게 사는 거지? 각종 안내를 읽어봐도 공연마다 다르고 공연장마다 다르니 뭘 알 수가 있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쭈뼛대는 내 모습이 떠올라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이어 이번엔 티켓 오픈 소식이 들려왔다. 티켓 오픈이라면 또 피켓팅을 해야 하는 건가? 겁부터 났다.
오 년 전쯤, 처음으로 원 없이 덕질을 했던 배우의 팬미팅에 가기 위해 미친 듯이 광클을 해댔던 적이 있었다. 한번 거기에 갇히게 되니 나는 금방 폐인이 되어 몇 주를 보냈다. 그러고도 결국 가고자 했던 팬미팅에는 가지 못했는데 그 후로 다행히 나는 그 미로 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 나서는 가볍게 살기로, 거기에 매몰되어 살지는 말자고 다짐을 했었다. 다시는 그런 것에 기대하고 매달리지 말자고, 피켓팅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말자고 마음먹었었다. 그때 미뤄 두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이번에도 실패하게 되고 또 깊은 실망으로 빠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피어올랐다. 그래도 뭐, 그때보단 공연이 여러 번이니까. 한 번은 가지 않겠나,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가볍게 생각하자.
며칠 후 캐스팅 스케줄이 나왔다. 뮤지컬은 대부분 더블 캐스팅이라서 내가 원하는 배우의 공연을 골라 보게 되는데 이번 티켓 오픈에는 다행히 내가 갈 수 있는 공연이 세 번이었다. 그중 하나 정도는 내 자리가 있겠지. 아직 한 달 넘게 남았잖아. 그런데 웬걸, 한 달도 더 남은 공연의 티켓 오픈을 벌써 한단다. 게다가 영화표 예매와는 차원이 다르게 복잡하고 어려웠다. 무슨 아이돌의 공연이나 유명 공연 예매할 때 공연 예매 사이트가 다운됐다는 얘기를 몇 번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예매 사이트도 많고 게다가 코로나 시국으로 사면 안 되는 좌석은 또 왜 중간중간 있는지. 그냥 안 되는 좌석을 안 팔면 되는 거 아닌가. 어느 사이트에 어느 좌석을 선택해야 할지 감도 안 왔다. 그렇게 티켓 오픈날이 되었다.
평소라면 출근해야 하는 시간에 티켓 오픈이었지만 다행히 오늘은 좀 늦게 출근하는 날이다. 그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 긴장되어서 밥도 못 먹고 출근 준비를 마친 차림을 하고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드디어 오픈 시간, 몇 번 버벅 거리다 좌석을 누르니 그 무서운 '이선좌'라는 이미 선택된 좌석, 다른 고객이 주문 진행 중인 좌석만 자꾸 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뭐라도 눌러서 겨우 결제를 했다. 다른 자리도 있는지 찾아보다 정신 차려 보니 벌써 20분 가까이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내가 보였다. 아, 정신 차리자. 그래도 구석이라도 자리 하나는 차지했다. 그걸로 됐다. 결제한 시간을 보니 오픈하고 겨우 2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그때 주말의 표는 이미 거의 매진이었다니.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평일 2층의 몇 자리를 제외하곤 거의 끝나 있었다. 헛웃음이 났다. 길기만 하던 시간이 5분도 채 안 되었다니. 그래도 다행이야. 또 절망 속을 헤맬 뻔했어. 운이 좋았다. 다음 공연의 티켓 오픈 때도 내게 운이 따라 줄지 모르겠지만, 우선 오늘을 즐겨라.
이렇게 금방 버킷리스트라 말 한 걸 이루게 되다니, 덕질하는 배우에게 고맙다. 그의 열일을 보다 보면 나도 열심히 살게 된다. 덕분에 요즘 뭐든 열심히 하게 되는데, 돈도 열심히 벌어야겠다. 뮤지컬 공연 자주 보러 가려면. 더불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자꾸 말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자, 그럼 이제 다음 버킷리스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