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소시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장 볼 때 작은 소시지 두 개 묶은 것을 사다 놓았었다. 아이는 그걸로 모자란다면서 큰 분홍 소시지가 더 필요하다고 했다. 다시 크고 긴 분홍 소시지를 사 왔다. 요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보고 먹고 싶어 졌단다. 예전에 할머니가 해주신 소시지를 먹어보고 맛있다고 했더니 할머니가 한동안 갈 때마다 소시지를 잔뜩 해주셔서 질렸다고 손사래를 친 후 나는 그 소시지를 사지 않았다. 어느 날 먹어보니 밀가루 맛이 너무 많이 나서 맛이 없기도 했고. 그런데 드라마 덕분에 다시 생각이 났던가 보다.
나는 커다란 소시지의 비닐 포장을 벗기고 얇게 썰었다. 밀가루가 많이 들어서 그런가 썰면서도 자꾸 뭉개지는 게 예전의 소시지 느낌이 아니다. 아니면 내 감각이 변한 걸까. 요즘은 그냥 계란을 입혀도 잘 된다는 소시지도 많지만 그냥은 계란옷이 입혀질 것 같지 않아 약간의 부침가루를 묻히고 계란을 입혔다. 하나하나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올려 노릇하게 굽는다. 계란과 밀가루 소시지가 익는 냄새. 오래전 내 엄마가 부엌에서 해주던 부침의 냄새가 난다. 그때 이 냄새는 얼마나 반갑고 고소했던가. 군침이 돌게 하는 몇 안 되는 냄새였을 것이다. 아이가 주방으로 와서 맛있는 냄새가 난다고 했다.
- 그래? 엄마는 옛날엔 이 냄새가 좋았는데 요즘은 밀가루 냄새가 너무 나는 것 같던데.
- 저는 좋은데요?
아이가 말했다.
- 너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엄마가 해주던 소시지 냄새가 기억나려나?
내가 말하는 동안 아이는 벌써 제 방으로 가버렸다. 겨우 소시지 부침일 뿐이지만, 오랜만에 내가 손수 해주는 반찬을 맛있겠다며 기다리는 모습이 고맙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장에서 사 온 반찬이거나 인스턴트 음식으로만 거의 식사를 해결하던 참이라 찌개니 국도 먹은 지 오래다. 그래도 먹고 싶은 게 있다고 청하고 그걸 또 해 줄 수 있는 것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분홍 소시지 부침을 접시에 담았다. 워낙 큰 소시지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소시지가 높이 쌓였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으려나 싶었는데 아이들은 밥과 함께 맛있게 거의 다 먹는다. 이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에게 고맙고 대견함과 함께 자랑스러운 마음도 커져 있다는 걸 아이들은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