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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Oct 25. 2021

기타 연주를 향한 진심

이틀 만에 기타를 잡았다. 그제 낮 백신을 맞은 뒤로 어깨가 뻐근해 어제는 연습을 쉬었다. 그제 아침에는 주사를 맞고 오면 어깨가 아파서 기타를 못 칠까 싶어 주사를 맞으러 가기 전에 기타 연습을 했다. 기타 연습에 이만큼 진심이었던 적이 있을까? 이러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나도 웃음이 난다.


기타를 처음 배운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 축제에서 기타 치며 노래를 부르게 되었는데 여러 명의 연주자 중 한 명이었지만 새로 기타를 배우고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차근차근 배울 시간 같은 건 없었다. 마침 밴드에서 기타 연주를 하던 동아리 친구가 있어 방과 후에 학교나 친구 집에서 속성으로 기타를 배웠다. 그때는 저녁 보충수업이 끝나고 자율학습을 마치면 10시 반이나 되어야 집에 갔었는데 대체 연습을 언제 할 수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주말에도 친구들의 집을 순회하듯 오가며 연습했던 생각이 난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흐릿하긴 해도 무척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정환이 집에 모여있던 덕선이와 친구들처럼.


축제에서 연주할 노래는 이문세의 '붉은 노을'과 이규석의 '기차와 소나무'였다. 속성으로 코드를 익히고 주법은 칼립소 하나만 연습했다. 나처럼 초보 연주자들을 위해 쉬운 코드로만 구성해줘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 처음 잡는 기타 줄로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배겨 아팠던 것을 제외하면. 손은 느리고 더듬더듬 코드를 바꾸는데 늘 나를 헤매게 하는 것은 F코드였다. 검지를 길게 펴야 하는 이 코드는 나를 시험에 들게 했다. 빨리 바꾸기도 어려울뿐더러 잔뜩 힘이 들어간 뻣뻣한 손가락 때문에 제대로 누르지 못한 줄에서 득득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리 연습해도 안된다며 울상이던 나에게 친구는 속성 비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렇게 약간의 야매(?) 방법을 익혀 F코드를 잡고 무사히 축제에서 공연을 마쳤다.




기타는 오빠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마련한 첫 기타였다. 오빠는 기타를 쳤던가 생각나지 않는다. 마침 그때 사는 바람에 내게는 기타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 후로도 기타는 내 차지였지만 축제의 공연이 끝난 뒤로 계속해서 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곧 고3이 되어 수험생의 신분이었기에 누가 나에게 기타를 더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며 연습할 시간도 없었다. 그렇게 방치된 기타가 다시 나에게 온 것은 엄마가 이사를 하면서였다. 커다란 기타는 먼지만 쌓여 애물단지가 되었고 이참에 버린다고 하길래 내가 가져왔다. 우리 집도 놓을 데가 변변치는 않아서 아이들 육아용품에 밀리고 밀려 지하실에 던져 놓은 후 나는 기타를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에 학부모 기타 동아리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기타를 떠올렸다. 고등학교 때 쳐보고 처박아 둔 기타가 20여 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다. 가까운 악기점으로 가져가서 기타 줄을 갈고 이런저런 손을 봐달라고 했다. 너무 오래 줄이 당겨진 채로 있어서 기타의 넥이 약간 휘었지만 연주는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나는 초보자가 아닌가. 20년 넘게 기타 초보자. 다시 나는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타를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아리는 계속 이어지지 않았고 그 후로도 몇 번 다른 모임에 나가다 말다 했다. 동네에 기타 배우는 교습소에서는 몇 명의 회원을 모집해서 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는데 그 비용이 아이들 태권도 학원 비용에 버금갔다. 취미로 배우는 기타를 위해 아이들 학원비만큼 지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망설이기만 하다 시간이 흘렀다. 초보자만 백 년째 하고 있는데 그게 맞는 건가 싶을 때쯤 동네 공동체의 오래 해왔던 기타 동아리에서 새 회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잘 해보리라 마음 먹고 참여해 일주일에 한 번 연습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배웠다. 이제 그만 초보는 벗어나고 싶었는데 정기공연에 사정이 생겨 참여하지 못한 뒤로 약간 시들해졌다. 설상가상 어깨 근육에 문제가 생겨 기타를 치기 어려워졌다. 오른쪽 어깨가 아파서 기타 위에 손을 올리고 줄을 튕기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다시 기타는 내게서 멀어졌다.




최근 나는 구석에서 곰팡이가 피어가던 기타를 꺼냈다. 내가 좋아하는 어떤 가수 아니 배우가 기타 치면서 노래 부르는 영상을 무한히 반복해 보다가였다. 나도 저렇게 연주해 보고 싶다는 생각, 꼭 잘 치지 못하면 어떠냐는 생각.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기타 치면서 부르고 싶다는 생각. 그런 생각들에 홀린 듯 꺼낸 기타를 나는 두 달 가까이 매일 치고 있다. 처음엔 시간이 되면 치고 아니면 말면서 이삼일에 한번 치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보다는 30분을 치더라도 매일 치는 것이 손가락의 굳은살이나 감각에 더 좋을 것 같아서 출근 전이나 저녁 먹은 후 기타를 꺼낸다. 같은 노래를 매일 치고 이전에 배웠던 다른 노래도 조금씩 연습한다. 예전에 치기 어려웠던 F 코드는 처음 습관이 그렇게 들어서인지 아직도 어렵다. 그래도 어느날 '어라? 예전보다 편해졌는데?' 하는 느낌이 불쑥 찾아왔다. 이제는 검지를 길게 뻗는 어려운 코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아직도 소리가 잘 나지 않고 코드를 바꿀 때마다 버벅거린다. 그래도 못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매일 감각을 기르면 언젠가는 C 코드나 G 코드처럼 줄과 손가락을 보지 않아도 자연스레 잡아지는 날이 오리라 믿는다. '앗? 편해졌네?'하는 순간도.


오늘은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연습했다. 내 가을맞이에 빠질 수 없는 노래다. 아직 어깨는 뻐근하지만 기타를 못 칠 정도는 아니다. Bm 코드나 Cm 코드 같은 어려운 코드는 또 나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다거나 짜증이 나지는 않는다. 30년의 세월이 나를 여유롭게 만들었다. 기타를 치고 싶은 진심이, 내가 좋아하는 어떤 배우에 대한 애정이, 시간을 차곡차곡 쌓다 보면 언젠가는 될 것이란 믿음이 기다림을 가능하게 만든다. 내년 가을 맞이에는 이 노래를 멋지게 연주하면서 부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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