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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11. 2019

이해할 수 없지만 미워하지 않는 엄마

아들의 눈으로 본 나


    “엄마는 수학을 잘해서 좋겠어요.”

    엄마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곧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듯 이렇게 답했다.

    “엄마가 수학을 잘해서 뭐하니? 네가 잘해야지.”

    학교에서 가족들에게 칭찬을 한 마디씩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적어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칭찬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용기 내어 엄마에게 칭찬을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오히려 내게 핀잔을 주었다. 우리 엄마는 칭찬을 잘해주지 않는다. 가족에게 칭찬을 하라는 숙제에 오래 망설인 이유다. 칭찬을 많이 받아보지 못한 나는 칭찬이라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른다. 무엇을 칭찬해야 할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며칠 후 엄마가 내 말의 의미를 같은 반 친구 엄마들로부터 듣게 되었다. 엄마는 내게 그래서 그렇게 말한 것이었느냐고 물었다. 칭찬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나를 엄마에게 들킨 것이 부끄러웠다. 엄마는 아들의 칭찬을 못 알아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평소에 나에게 칭찬을 많이 못해준 것도.    


    남들은 엄마가 수학 선생님이었으니까 너도 수학을 잘할 거라고 말하곤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이 듣기 싫다. 엄마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아이가 열심히 해서 잘하는 것이지 엄마가 잘하는 거와는 상관없다고 말씀하시곤 한다. 내가 엄마에게 수학을 잘한다고 칭찬했을 때 엄마의 대답도 같은 뜻이었으리라. 학교 숙제를 해가거나 시험 본 후 틀린 것을 고쳐가야 할 때는 엄마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나는 아직 엄마와 공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학교에서 형의 작년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지금 나의 수학 선생님이다. 선생님이 복도에서 만난 형에게 동생 수학 공부 좀 시키라고 했단다. 엄마는 “엄마도 너의 시험 점수가 살짝 부끄럽긴 한데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했다.”라고 하셨지만 그게 한 거 아닌가? 나도 잘하고 싶은데 점점 더 부담스럽다.     


    엄마는 우리가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신다. 우리가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그렇다고 했다. 엄마가 했던 라디오 방송도 책을 읽어주는 방송으로 만들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시작했다. 엄마가 나중에 이 세상에 없을 때도 방송으로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방송으론 많이 읽어줄 수가 없어서 집에서도 책을 읽어주신다. 주말 빼고 일주일에 많아야 4일, 하루에 길어야 30분을 넘지 않기에 긴 책을 읽으려면 몇 달이 걸린다. 어떤 날은 읽기 시작하고 5분도 안되어 내가 코를 골며 잔다고 했다. 요즘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어 주신다. 진도가 더디 나가서 노인이 오늘은 고기를 낚아 올릴까 궁금하다.


    며칠 전에도 엄마가 책을 들고 오셨다. 보통은 10시쯤 책을 읽자고 방에 들어오시는데 이 날은 엄마의 애청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하는 날이라 드라마가 끝나고 11시가 넘어서 들어오셨다. 형과 나는 한참 친구와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이것만 하고 끌게요, 하고 계속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화가 나셨나 보다. 딴 날보다 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있어서였을까. 다른 때 같으면 우리가 게임 끝내기를 기다렸을 텐데 엄마는 조금 기다리다가 우리가 듣던 말던 ‘노인과 바다’ 몇 소절을 읽으시더니 그만 끄라고 하셨다. 몇 분만 더하면 끝났을 텐데. 결국 형과 나는 중간에 게임을 껐고 나는 기분이 나빴다. 엄마도 기분이 상했는지 책을 덮고는 그냥 자라고 불을 끄고 나가셨다. 내가 속상할 때 엄마는 왜 그러는지 물어보기도 하는데 오늘은 내가 화가 났는데도 엄마는 묻지 않았다. 내가 더 어릴 때 밤늦도록 자지 않고 엄마에게 뭘  해달라고 조르면 엄마는 “엄마 이제 퇴근했어”라고 하셨다. 엄마 퇴근시간이 늦어져서 화가 난 걸까. 엄마의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태도에 어떻게 맞춰야 할지 어렵다.     







    엄마는 운영하던 카페를 올봄에 정리하셨다. 엄마의 카페는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앞에 있었다. 학교 끝나고 엄마에게 들러서 집에 가는 것이 좋았다. 갈 때마다 손님이 너무 없어 나는 편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카페를 정리할 거라고 했다. 엄마가 학교 근처에 늘 있다가 갑자기 안 계시면 어쩌나 불안했는데 다행이었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한 후 엄마는 카페를 그만두셨다. 엄마는 돈을 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더욱 바쁘게 사신다. 강의를 듣는다고, 글을 쓴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계시는 날이 늘었다. 아빠가 늦게 출근하는 날 아침에는 강의 들으러 가는 엄마를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신다. 나와 형이 학교 갈 때는 부탁하기 전엔 안 데려다주시면서.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그림을 그리고 있거나 기타를 치고 있거나 책을 읽고 있었다. 물론 주무시고 계시다가 부스스 일어나기도 한다. 요즘은 여행을 간다고 아침부터 집을 비우는 일도 가끔 있다. 엄마는 아침을 형과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것에 미안해하기도 하시지만 우리는 상관없다. 며칠 동안 라면만 먹어야 한대도 좋다. 엄마가 약속이 있다고 둘이 저녁 먹으라 할 때도 괜찮다. 엄마가 안 계시는 저녁, 우리는 자유다.


    걸어서 오 분 정도 걸리는 할머니 댁에 엄마와 형과 내가 들르러 가는 길이었다. 마침  근처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형의 친구들을 보았다. 날이 벌써 어둑해지고 있었는데 아직도 교복차림이었다. 형과 나는 공부하는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어 놀랐다. 왜 아직도 교복을 입고 있는지. 엄마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희들도 학원 다니고 싶으냐고 물었다. 우리는 절대 아니라고 했다. 학교 끝나고 학원에 숨차게 가느라 이 시간까지 저녁도 못 먹고 교복차림이라니. 엄마는 가끔 우리에게 그렇게 공부 안 하면 학원에 보내버리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엄마가 “학원에 안 보내는 내가 너희 엄마라서 좋지?”라고 물으면 지금만큼은 진심으로 “네!”라고 답한다. 우리 엄마가 우리 엄마라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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