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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Jan 05. 2020

독립영화 <인사 3팀의 캡슐커피>

KBS 독립영화관

금요일 늦은 밤, TV에서 독립영화를 다. 꼬박꼬박 챙겨보는 편은 아니다. 잠은 안 오고 뭘 할지 모르는 밤에 TV 채널을 돌리다가 마주치면 본다. 처음부터 독립영화관을 챙겨 보기란 확률적으로 어렵다는 뜻이다. 예전에 한참 덕질하던 배우가 나오는 독립영화를 방영한다고 해서 알람 맞춰 놓고 본 경우를 제외한다면.


이번에 본 영화는 <인사 3팀의 캡슐커피>. 영화 거의 마지막까지 캡슐커피가 안 나와서 어리둥절할 수 있다.

제목도 특이했지만 낯익은 배우가 나와서 채널을 고정했다.


주연은 회사 여직원 명이고 한쪽은 류선영 배우. 수십 번은 보았을 드라마 응팔(응답하라 1988)에 보라로 나왔던 류혜영 배우와 자매라는 류선영 배우였다. 다른 곳에서 본 이름이 류아벨이라고 해서 특이하다 생각했는데 이 영화에는 류선영으로 소개되었다. 최근에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도 잠깐 나왔다.


또 한 명의 배우는 이름은 모르겠는데 어딘지 낯이 익어 찾아보았다. 최근 영화 뺑반에 구급차를 몰던 여정 역의 박예영 배우였다. 뺑반을 몇 번이나 봤는데도 헤어스타일이나 말투가 달라선지 전혀 몰랐다. 역할에 따라 새로운 얼굴을 갖는 배우다.




<인사3팀의 캡슐커피> 수아, 류선영

정규직 대리인 수아는 비정규직 2년이 되어가는 민주를 권고사직시키는 역할을 떠맡는다. 껄끄럽고 불편한 역할을 맡은 수아는 민주에게 사직서를 내면 다른 회사에 추천해주겠다고 제안하지만 민주는 사직서는 쓸 수 없다고 버틴다. 민주는 계약직에게 가산점이 있어 공채 원서도 냈다면서 회식자리에서 부장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민주를  도와주겠다던 부장은 어서 '처리'하라고 뒤에서 수아를 다그친다.


<인사3팀의 캡슐커피> 민주, 박예영



2년의 계약 만료기간이 다가오며 압박이 커지자 민주는 노동청에 부당해고라며 진정서를 내고, 부장은 수아에게 노발대발한다. 와중에 민주는 공채 1차 합격했다며 면접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이를 보는 수아는 마음이 복잡하다. 차마 넌 안될 거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그저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말뿐.

그렇게 민주가 떠난 뒤 수아는 캡슐커피머신을 산다. 민주에게 여기서 안 좋았던 점을 물었을 때, 커피 머신 하나 없는 팀이 좀 뒤처진 곳 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


민주가 회사를 나간 후 수아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키는 부장.  수아는 커피머신을 회사 비품으로 신청했다 거절된다. 캡슐커피 머신을 직접 사 가지고 온 수아가 커피를 내리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수많은 계약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아무 이유도 없이 계약 2년이 되어 간다는 이유로 계약직을 해고해야 하는 정규직도 마찬가지로 괴롭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수아는 민주를 추천해 줄 친구가 있다. 조직의 부당함에 대해 맞서 싸울 힘이 자신에게도 없으므로, 해고의 미안함을 대신해 혹은 자신빠른 업무 해결을 위해 민주에게 다른 회사를 소개한다. 수아의 행동은 이기적일 수도, 현명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 안에 우리들 각자의 모습이 모두 들어 있어 씁쓸한 뒷맛을 준다.


수아는 영화 내내 한 번도 웃지 않는다.

반면 민주는 자주 웃는다. 비굴한 웃음, 억지웃음, 가짜 웃음.


수아는 잘한 걸까?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처리했으니 잘한 걸까? 어쨌든 민주를 다른 회사에 보냈으니 죄책감을 덜어내면 될까? 캡슐커피 머신을 샀으니 팀은 더 좋아진 걸까?


민주는 잘한 걸까? 공채 합격하고 싶다면서  회사의 부당함을 진정한 것은 잘못한 걸까? 원하던 회사는 아니지만 다른 회사라도 가게 되었으니 잘 된 걸까?


절대 가치 같은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내가 그들이었다면 뭐 그리 다를 수 있었을까.


비정규직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난 현실은 우리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가 수아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당장 내 문제가 아니라서, 또 민주라면 드러내 놓기 부끄러워서, 달라질 게 있을까 싶어서 이런 문제들을 덮어두고 싶어 한다. 어떤 영웅이 나타나 해결해 주길 막연히 기다리는 우리들의 모습이 답답할 뿐.






결혼과 출산 무렵 나도 계약직이었다. 계약은 겨울까지였지만 가을에 출산하면 휴가를 받아야 하므로 여름에 나는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엄밀히 말하면 부당해고였지만 그때는 그런 것을 생각하기 어려운 때였다. 생각한다고 입 밖으로 꺼내기는 더 어려웠다. 실업급여라도 받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십오 년이 지난 지금이라고 크게 다를까. 오히려 계약직을 살리려는 법에 의해 2년이 되기 전에 권고사직당해야 하는 현실은 더 팍팍해졌다. 변하지 않는 구조는 더욱 견고해졌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구분되어 서로를 경계한다. 구획이 정확하기에 상대가 나에게 상처 입힐까 봐 날카로운 눈길로 끊임없이 경계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구분이 없는, 경계의 벽을 허물어 처음부터 '구분'없는 사회 구조는 이제 불가능한 꿈일까.





사진 출처는 네이버 영화 <인사 3팀의 캡슐커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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