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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Nov 15. 2019

카프카 내 맘대로 읽기

매거진 발행에 앞서

  나는 요즘 카프카를 읽는다. 카프카라면 응당 「변신」이라고 생각했고 그 외의 작품은 알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변신」을 제대로 읽었느냐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이 제목은 익히 알고 있지만 내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카프카 읽기는 어쩌면 카프카에 대해 무지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을수록 이런 이야기들이라니, 이런 이야기의 조각들이라니, 게다가 이러한 연결이라니, 뭐 대충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매주 카프카의 작품을 읽고 나서 에세이랍시고 쓰는 글은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닌데 비장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 그것들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것에는 늘 실패하고 만다. 이야기를 구조화하려는 습관적인 노력은 언제나 수포로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읽는 일이 재미있어졌다. 또 읽고 또 써야 한다는 압박에 괴로울 때도 있지만 단편적으로 부유하는 나의 생각들을 어떻게 조립할 것인가 하는 지적 욕구와 비슷한 것이 생겨나는 것이다. 함께 카프카를 읽는 분들의 도움으로 다르게 생각하기를 배운다.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내 습관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나무들을 엮어서 숲으로 만들어 보려고 누더기처럼 생각을 깁는 나를 발견하면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도 내가 느끼는 것들을 쓰려는 욕망이 생기도록 함에는 이러한 순서로 카프카의 작품을 읽게 해 주신 선생님의 역할이 컸다. 먼저 이런 작품들 간의 연결을 독자가 찾아내게 쓴 카프카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길잡이로서 읽게 해 주시는 선생님께도 감탄한다. 선생님은 답 없는 길, 길 없는 길을 찾아내어 가는 것이 카프카가 말한 '변신'이라고, 우리의 생각을 독려한다.


- 그건 죄라고 생각해.

- 죄? 무슨 죄? 난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어.


- 그건 옳지 않아.

- 옳은 건 뭔데?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거야?


- 그건 비인간적이야.

- 인간적인 건 뭔데? 자연 속에서 인간이란 그렇게 대단한 존재야?

  인간이 아닌 동물은 다 흉측한 거야?



  인간으로 태어난 자체로 우리는 인간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히게 된다. 울타리에서 벗어나려고 애쓸 것인가, 벗어나면 어떻게 살려고 하는 것인가, 인간이 아닌 다른 것으로 살고 싶은 것인가. 끊임없이 물어오는 카프카에게 대답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카프카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답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카프카의 작품 「유형지에서」에는 처형 장치에 묶인 죄수에게 쌀죽을 흘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아무도 그 쌀죽을 마다하지 않는다. 고통 속에서 시시각각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까지도 아주 작은 칭찬이라도 있으면 결코 포기하지 않는 우리 시대의 욕망에 대하여, 인정 욕구에 대하여 생각한다. 더불어 내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나를 판단하는 기준을 남에게 주지 말라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이고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우리는 죽을 때까지 남들의 판단과 기준에 갇혀 산다. 언제까지 남에게 인정을 구걸하며 살 것인가. 스스로 울타리를 만들지 않는다면 아무도 나를 가둘 수 없다. 울타리 안에 갇혀 살면서 갇힌 줄도 모르는 사람들 중에 나도 있을까 봐 무섭다. 그래서 떠오르는 생각의 조각들을 브런치 매거진 '카프카 내 맘대로 읽기'에 실어보려고 한다. 울타리에 나 자신을 가두지 않기 위해. 혼자 읽을 때보다 함께 읽을 때,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들으며 또 다른 길이 보이기도 하니까. 앞으로 내가 만들어 갈 답 없는 길에 누군가 한 명이라도 함께 걷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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