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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02. 2019

카프카와 홍주성 산책하기

프란츠 카프카, 「법 앞에서」

    홍주성에 다녀왔다. 홍주성은 충남 홍성에 있는 작은 성곽이다. 함께 산책하기로 한 일행이 먼저 다녀왔다며 주차장에 서서 간략히 설명해준다.


    "쪽으로 가면 계단을 올라가야 하고요, 오른쪽으로 가면 좀 돌아가지만 완만한 산책길이에요." 


    우리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말에 생각할 것도 없이 완만한 산책길 쪽을 택했다. 홍주성이라는 곳에 간다고 생각했고 멀리 보이는 문이 홍주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주차장을 지나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니 옥사를 재현해 놓은 곳이 보인다. 그리고 우물터가 있다.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그곳이 안인 줄을. 아까부터 바라보면서 걸어온 문 앞에 홍주읍성의 안내 지도가 그려져 있다. 우리가 둘러보고 지나온 옥사와 우물과 비석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하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 문의 방향과 반대로 그려져 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문으로 다가갔다. 문의 현판에는 홍화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충남 홍성 홍주성 홍화문


    문을 지나 읍성으로 들어가야지 하고 문 너머를 보니, 밖이었다. 그대로 계단을 내려가면 읍성의 바깥이었다. 우리가 걸어온 길이 읍성의 내부였던 것이다. 문 옆에는 문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제야 문 앞에 그려진 안내 지도가 이해되었다. 직접 지나왔고 지도를 보면서도 그곳이 홍주읍성의 안쪽이라는 걸 몰랐다. 내 안에서 읍성이란 모름지기 집도 있어야 하고 뭔가 더 많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나 더 커야 한다고 여겼나 보다. 예전에 가 본 '해미읍성'의 모습이 나에게 '읍성이란 이런 것'하는 편견으로 남았 보았다. 내 생각이 눈을 가려 보고도 그대로 믿지 못한 것이다. 처음부터 계단 쪽으로 갔더라면 우리는 쉽게 읍성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계단을 올라 문을 통해 들어갔을 테고 문으로 들어간 곳이 안이라 생각했을 테다. 그런데 우리가 돌아 걸었던 길이 읍성의 내부, 문의 안쪽이었다는 것을 문에 도착하기 전까지 눈치챌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지나온 길에서는 성의 울타리가 보이지 않았기에, 안과 밖을 몰랐던 것이다. 문을 지나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속인 것이다. 옛 성곽의 일부를 재현해 놓은 것뿐인데 당연히 경계가 있을 것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다. 나의 근거 없는 믿음 때문에 왜 안과 밖의 경계가 불분명한가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야 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경계가 분명한 세계에 사는 나는 어느새 거기에 익숙해져 있었다.






    거기서 나는 카프카의 「법 앞에서」를 떠올렸다. 글에는 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하는 시골 사람과 그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게 지키는 문지기가 나온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법의 문 밖일까, 안 일까. 시골 사람은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문지기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안을 들여다보기만 한다. 문지기는 문을 등지고 서서 시골사람을 막고 있느라 문 안을 들여다보지도 못한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법의 집행은 누가 하는 것일까. 문 앞에 서 있는 시골 사람과 문지기는 문 밖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문 안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홍주성 앞에 있던 나는 마치 그 시골사람 같았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이미 그곳이 성문 안이었다. 그 시골 사람도 이미 법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만든 울타리, 그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허락을 구하는 순간 만들어진 문. 누구도 그 문을 지나야만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는데 오직 그 문을 지나기 위해 일평생 문 앞에서 기다린다. 그렇다면 가 더 자유로운 것일까. 문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일까, 문 앞을 지키는 사람일까. 앞이 가로막힌 시골사람에 비해 문지기는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둘 다 자유롭지 않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 문지기는 언제까지나 시골사람을 막고 있어야 하니까.  

    나는 울타리 안에 있는 걸까 밖에 있는 걸까. 누구도 아닌 내가 만든 울타리. 홍주성 안내지도를 보고도 모른 것처럼 카프카가 내게 친절하게 지도를 보여주는 데도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는 것만 같다.  울타리의 안과 밖 중에 어느 쪽이 더 자유로운 것일까. 그리고 자유는 무엇일까. 카프카와 만난 홍주성 문 앞에서 오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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