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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07. 2019

토요일 아침, 도서관에 갔다

Nobody가 되어

    토요일 아침, 도서관에 갔다. 아이들이 합기도 심사 가는 날이라 일찍 일어났다. 아이들을 아침 먹여 보내 놓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잠이 막 들려는데 화장품 할인 이벤트  문자가 왔고, 이어서 정형외과 예약 톡이 왔다. 폰 확인 후 다시 잠들려고 자세를 잡는데  다음 주까지 써야 하는 에세이 생각이 났다. 함께 강의를 듣는 분들은 카프카에 대한 다른 책들까지 찾아서 읽는데 나는 과제로 정해진 책만 읽기에도 바빴다. 이제 15주의 강의가 끝나가고 곧 마지막 에세이를 써야 한다. 나도 다른 책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검색해 보니 가까운 도서관에 몇 권의 책이 있다.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아침 한파가 온다고 했다. 그게 대수랴 싶어 한참 걸어가는데 얼굴을 때리는 작은 알갱이. 오늘이 대설이랬나. 싸라기눈이었다. 눈인가 먼지인가 자세히 봐야 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하나 더 툭. 이런 날씨에, 그것도 토요일 아침, 게다가 도서관이라니.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한 것이 카프카라는 것에 놀랐다. 카프카가 나를 변화시켰다. 물론 일회적인 일일 것이다. 그래도 뭔가 뿌듯했다. 내가 더 많이, 깊게 알아보고 싶은 지적 욕구로 주말 아침 꿀잠을 포기하고 도서관에 오게 하다니.


    내가 가는 도서관은 열람실이 따로 없고 자료실 옆에 벽을 따라 몇 개의 좌석만 있다. 올 때마다 늘 자리는 공부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여기는 적어도 카페는 아니니 뭐라 할 수는 없지만 몇 개 안 되는 자리에 커다란 가방을 놓고 자기 집인양 공부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주말이고 비교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자리 하나가 남아 있었다. 봐 둔 책을 빌리고, 하나 남은 자리에 앉았다.


    책을 보며 틈틈이 옆 사람들을 관찰한다. 카프카처럼. 카프카는 누군가를 관찰할 때 직접 뚫어져라 쳐다보며 할 수 있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나는 얼굴을 돌려 바로 옆사람을 노골적으로 쳐다볼 수는 없으니 검은 눈동자는 책에 두고, 흰자위 양 옆의 사람들을 흘낏거렸다. 왼쪽에 앉은 남자는 아까부터 무언가 쉬지 않고 공책에 써내려간다. 어떻게 저렇게 술술 쓸 수 있을까. 내용이 무엇이든 쉬지 않고 쓴다는 것이 부러웠다.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책을 보다 창 밖을 보며 소리 없이 중얼거린다. 뭔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다. 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생각을 읽자>라는 만화책을 읽고 있다. 내가 읽었던 카프카의 작품과 비교하면서.


    문득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화단 흙에 싸라기눈이 얇게 덮였다. 보이지도 않게 한두 개씩 내리던 눈이 그대로 사라지기 아쉬워 흙 위에 잠시 머물렀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사람들 속에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도 잠시 그들 속에 머물렀다. 나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곳. 무심하고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 그 속에 나는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소외되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 누구도 아닌 모습으로 nobody가 되었지만 잠시나마 그들 속에서 they 혹은 we가 될 수 있었다.


    모두가 사회적 규범을 지키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누군가와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을 어려워하고 '함께'를  두려워하기까지 하던 나는 어느새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규범 안에 있는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어떤 이해관계도 없으며 서로에게 바랄 것도 상처 줄 것도 없는 이 순간이 참으로 평화롭다고 생각했다. 카프카처럼, 어차피 인간 세상의 질서를 벗어나서 살 수 없으니 그 안에서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안식을 최대한 만끽해 보고 싶었다. 나는 somebody에서 nobody가 되는 이 순간이 해방처럼 느껴졌다.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규범 안에서 나는 누구도 아닌 자가 되어 그들 속에서 잠시 편안했다. <실종자>의 카알도, 자신을 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오는 족쇄를 벗어버리고 nobody가 됨으로써 자유를 느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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