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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Dec 10. 2019

카프카가 던진 낡은 쪽지

내가 만난 카프카

어쩌다 만난 카프카


카프카를 만난 건 우연이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는 강좌는 바닥에 가라앉은 나를 끌어올려줄 터닝 포인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오래지 않아 무모하고도 어리석은 판단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카프카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나는 왜 여기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는 걸까? 「낡은 쪽지」에 나오는 북방의 유목민처럼 카프카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들려줄 뿐이었다. 나는 그를 다시 몰아낼 방법을 알지 못했다. 다만 카프카처럼 천천히 그의 작품을 관찰했다.

카프카 작품을 관찰하며 새로 시도한 것은 여러 편을 비교하며 읽는 것이다. 카프카는 작품들 사이에 ‘이스터 에그’를 숨겨 놓았다. 그런 점으로 미루어 카프카는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썼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소소한 재미를 숨겨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으면 누구나 자신만의 이스터 에그를 찾아낼 수 있다. 나는 작품 간에 비슷하게 연상되는 등장인물(동물)을 보았다. 「소송」에서 요제프 카의 두 감시원은 「성」에서 K의 두 조수를 연상시킨다. 「사기꾼의 탈을 벗기다」에서 주인공 ‘나’와 함께 있던 사기꾼은 「실종자」에서 카알이 만나게 되는 로빈슨과 들라마르쉬를 떠올리게 한다. 가장 재미있는 것은 서로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을 같은 인물로 연결해 상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카알이 옥시덴탈 호텔에서 추방당한 후 함께 살게 되는 브루넬다는 사실 서씨족의 여가수였다. 쥐의 종족에서 사라진 여가수 요제피네는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원숭이 페터처럼 인간 브루넬다로 살아간다. 원숭이 페터는 오클라하마 극장의 유명한 배우이고 카알은 그의 매니저가 된다.’라는 엉뚱한 상상.

새로운 출구라 할 수 있는 재미를 찾으니 급기야 나는 뭔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또 다른 출구를 찾는 원동력이 되었다. 카프카를 알게 되고 이미 나는 하나의 출구를 나왔다. 그를 모르던 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카프카를 이해하려 할수록 손에 잡히는 것은 없었고 여전히 벽에 부딪혔다. 나는 카프카의 작품들 속에서 '성'이라는 완벽하게 견고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기대했다.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오는 절대 진리와도 같은 것을. 나는 「성」의 K처럼 성에 다가가려 할수록 멀어졌다.

「가장의 근심」을 읽고 ‘오드라데크’가 뭔지 몰라 습관대로 단어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오드라데크가 존재한다는 글 속의 말을 믿었다. 실존하는 것이라 믿었지만 실체를 이해하지는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세계에 없는 존재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내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세상의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 탓이다. 길들여져 있다는 것은 그것에서 벗어나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서 ‘길들여짐’은 어린 왕자가 사막여우를 길들이는 것처럼 낭만적이지 않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슬픈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내가 속한 세계 전체다. 이미 벗어날 수 없는 범주에 있는 것들이다. 카프카는 그 세계 너머를 보라고 말한다.
 




이유 같은 건 없어


처음엔 ‘「변신」의 그레고르는 왜 갑충이 되었을까, 「소송」의 요제프 카는 왜 소송당했을까’ 같은 이유가 궁금했다. 카프카는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카프카를 읽으며 왜 나는 이해도 못하는 카프카를 읽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쩌다 카프카를 만났을까? 나를 바닥에서 건져 올리려고? 말도 안 된다. 이유 같은 건 없다. 우연히 던져졌다. 카프카가 던져둔 낡은 쪽지 하나를 우연히 내가 줍게 된 것뿐이다. 덕분에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나의 태곳적부터 내가 갇혀 있던 벽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거기서 산책하고 관찰하는 법을 배우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출구를 찾아내길 기대한다. 카프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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