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번째 삶 Dec 16. 2019

타인의 시선에서 끊임없이 떠나기

카프카, 「돌연한 출발」

"주인 나리, 말을 타고 어디로 가시나요?"
"모른다" 하고 나는 말했다.
"다만 여기를 떠나는 거야. 다만 여기를 떠나는 거야. 끊임없이 여기에서 떠나는 거야. 그래야 나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네."
"그러시다면 나리께서는 목적지를 아신단 말씀인가요?" 그가 물었다.
"그렇다네." 내가 대답했다.
"내가 이미 말했잖는가. '여기에서 떠나는 것', 그것이 나의 목적지일세."
"나리께서는 어떤 예비 양식도 갖고 있지 않으신데요." 그가 말했다.
"나는 그 따위 것은 필요 없다네." 내가 말했다.
"여행이 워낙 긴 터라 도중에 무얼 얻지 못한다면, 나는 필경 굶어 죽고 말 것이네. 예비 양식도 날 구할 수는 없을 걸세. 실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 여행이야말로 정말 엄청난 여행이라는 걸세."

 - 프란츠 카프카, 「돌연한 출발」 중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고 잘 해왔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관계 맺음이 없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어떤 것이든 관계가 형성되면 그 안에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호 간에 영향을 주는 관계일 때는 그래도 상처가 적다. 일방적인 관계가 될 때, 혹은 기울어진 관계가 될 때 서운함이나 상처가 쌓여 자꾸만 타인의 시선에 나를 비춰보고 자기 검열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안 되면 결국 폭발하거나 침묵으로 관계가 영원히 끝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친구가 별로 없다. 친구가 없어도 불편하지 않았고 어떤 약속이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자유롭게 느껴졌다. 그러나 삶에 여러 방향으로 변화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이 지속되고 적당한 거리를 고민하게 되었다. 일로만 만나는 관계는 편안하게 멀리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과 상관없는 것까지도 알고 참견하는 것이 권리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관계의 역사가 길수록 거리는 당연히 좁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시간이 지나도 멀리 있는 나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 이방인이 돼있기 일쑤였다. 그래서 불편했나? 돌아보면 그것도 괜찮았다. 문제는 일로 만난 관계가 아닐 때다. 다양한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마냥 이방인인 것을 내가 못 견뎌할 때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관계의 단절이 반복된다.


어쩌면 조금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다. 늘 괜찮다고, 괜찮다고 했으나 사실은 괜찮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나를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일 수 있다. 늘 괜찮다고 하다 보니 나는 그냥 뭐든지 괜찮은 사람이 되었고 사람들 사이에 존재감이 사라졌다. 나 스스로 존재감을 지운 것이다. 어느 한 편으로는 내가 원했지만 한 편으로는 원하지 않았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밀려 다니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돌연한 출발」에서 '나'의 하인은 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여기서 하인은 바로 '타인'이다. 타인에게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하고 부탁을 해도 아무 도움도 주지 않는다. 이 하인은 카프카의 다른 작품「법 앞에서」에 나오는 문지기와 같다. 시골 사람을 법 앞에 끌어다 앉히고 자신의 시선 앞에 머물게 하려는 문지기처럼 ‘여기’에서 떠나려는 '나'를 멈춰 세우고 그의 시선 앞에 머물도록 붙잡으려 한다. 그의 기준에 맞게 옳다 그르다 판단하려고 한다. 시골 사람이 들어가려 했던 ‘법’은 타인의 시선, 타인이 정해 놓은 기준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 안에 갇히도록 이미 허락한 것이다. 그 법 안에 있기를 허락한 시골사람은 문지기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 앞에서 죽음을 맞는다.

    「법 앞에서」의 시골사람과 달리 「돌연한 출발」의 나는 ‘타인의 시선’에 둘러싸인 '여기'를 떠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곳,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언제 도착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런데도 내 삶에서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떠나는 것만이 나를 구원하고 나에게 자유를 준다. '엄청난 여행'이 된다. 타인의 시선은 나를 자신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가두려는 사람들의 기준이다. 한 사람의 시선을 벗어나면,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이 기다리고 있다. 겹겹이 둘러싸인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누가 나를 결정하거나 판단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 자유다. 그들의 판단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도 나를 구속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들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타인들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익숙한 것들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떠나는 것은 오래전부터 내가 이루고 싶었던 일이고 매년 12월이면 하는 결심이다. 새로운 해가 되면 나를 아는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야지, 이번엔 실행해야지, 마음먹는다. 그러나 실패하길 몇 째. 생각만큼 쉽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떠날 것인가?

모든 관계를 끊으면 ?

오래된 관계를 잘라내면 ?

카프카처럼 '여기에서 떠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가능해질까?

  

매거진의 이전글 카프카가 던진 낡은 쪽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