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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번째 삶 Nov 22. 2019

넌 오직 방향만 바꾸면 되는 거야

프란츠 카프카, <작은 우화>

  벌써 12강. 지난 늦여름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을 읽기 시작한 지  3개월이 흘렀다.

  첫 수업이었나. 카프카의 장편(손바닥만 한 글?)'작은 우화'를 읽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도 같고 처음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아아, "하고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만 해도 세상이 하도 넓어서 겁이 났었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마침내 좌우로 멀리 벽이 보여 행복했었지.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마주 달려오는지 어느새 나는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모퉁이엔 내가 달려들어갈 덫이 놓여 있어." - "넌 오직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되는 거야"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 <작은 우화> 전문


  처음 읽었을 땐 어리둥절했다. 뭔 소리야? 방향을 바꿨더라면 고양이에게 안 잡아먹혔다는 거야? 아니면 어차피 고양이한테 잡아 먹히겠지만 방향을 바꿔 할 수 있는 데까지 도망을 가보라는 거야? 쥐로 태어난 이상 고양이를 피할 수는 없다는 거야?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아리송했다. 너무 짧아서 다 읽는데 1분도 안 걸리는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내 생각을 뒤엉켜버렸다. 그렇게 카프카와 만났다.






  그 후 3개월이 지나고 드디어 카프카 작품의 진수라는 <성>을 읽었다. 여전히 마구 섞어 놓은 레고 조각 같은 생각의 조각들을 어떻게 조립해야 할지 난감하다. 내 생각이 맞는 건가? 누구한테 확인이라도 받고 싶었다.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는 답답함은 정답만을 찾던 우리의 습관에 어긋남으로 인한 것이었다. 정답이 어디 있느냐고, 니 맘대로 읽어도 좋다고, 카프카는 말했을 텐데.

  <성>의 측량사 K가 처음 도착한 마을은 눈 속에 묻혀 있었고 성이 있는 언덕은 안개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며 성의 불빛조차 없었다. 지금 <성>을 다 읽고 난 나도 안개와 어둠 속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것 같다. 이 막막함. 이 허무함. 읽은 사람과 읽지 않은 사람이 같다니.

  그런 마음으로 다시 처음에 읽었던 <작은 우화>를 읽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읽힌다. 아, 내가 쥐였구나. 처음 카프카의 세계에 발을 딛고 세상이 너무 넓어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해 겁이 났었는데. 자꾸 읽다 보니 어렴풋이 이런 거였구나, 알게 되었다. 나를 가두고 있던 벽이 보였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카프카의 대표작 <성>에 왔다. 보이지도 않고 실체도 없는 '성'을 향해 K와 함께 가던 나는 마지막 방에 다다른 것이다. 이 막막함 속에서 나는 방향을 바꾼다. 다시 처음으로. <성> 안에 담겨 있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찾아 실마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끝은 이미 정해져 있다. 어차피 언젠가는 고양이에게 잡아 먹힐 것이다. 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그래도 그 방 안에서 내가 가보지 않은 다른 경로를 찾아보려 한다. 고양이를 피해 다른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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